등대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6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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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에 등장한 그녀 버지니아 울프를 기억한다. 아마도 시인은 <목마와 숙녀>를 쓸 때 울프의 <등대로>를 염두해 두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시인은 이어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라고 노래하기 때문이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시간 속에서 인간은 스러져가지만 돌맹이 하나를 비롯한 자연들과, 온갖 사물들을 포함한 인간의 창작물들은 오래도록 살아 남아 인간의 통속성을 비웃듯 지긋이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등대로>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것, 인간의 통속성에 대한 것이 아니였을까, 나름 생각해 본다.

 

등대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제목이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없었다. 내가 알지 못할 어떤 심오한 뜻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첫 페이지를 열고 나의 기대가 영 엉터리 였다는 것을 알았다. 등대로, 가 의미하는 것은 말 그대로 심연의 바다를 밝히는 '등대'로 향하는 방향성이였던 것이다.

여섯살의 제임스는 등대에 가고 싶어한다. 언뜻 생각에 등대에 가는 것이 무엇이 그리 어려울까만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등대는 배를 타고 험난한 파도를 넘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어린 소년에게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과 같은 곳이다. 소년이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잔잔한 파도와 배를 움직여줄 부드러운 바람이 함께 필요한 것인데, 그런 날을 만나기란 쉽지않기 때문에 등대로의 원정이 제임스에게는 이룰수 없는 꿈과도 같은 것이다. 

아버지 램지는 그런 제임스의 바램을 여지없이 깨뜨리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그는 사실주의자이며, 과학적 사고를 추구하는 철학자로 어린 아들이 삶을 덧없는 희망으로 덧칠하는 것을 용서치 않는 것이다. 아니, 자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삶의 가혹함을 깨닫기를 더더욱 바랬을 것이다. 램지에게 삶이란 고통의 연속이며,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것이 어린 제임스의 희망을 꺾고 아버지에 대한 마음속 분노를 키우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램지도 사실은 그 누구보다 타인으로부터 공감의 마음을 갈구하는 사람이였다는 것이다.

 

반면, 램지 부인은 제임스에게 내일은 날이 맑아 반드시 등대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반복해서 주입하는데, 어린 제임스는 어머니의 말을 마치 천사의 언어라도 되는양 흡족하게 받아들인다. 그럴수록 아버지에 대한 반감은 커져만 가고, 어린 제임스는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으며 성장하게 된다. 일찍이 프로이트는 다섯살 무렵의 사내 아이는 아버지를 경쟁 상대로 보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시기를 거치게 된다고 했는데, 제임스 역시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임스에게 아버지에 대한 반감은 한때 지나치고 마는 성장통이 아니였다. 제임스는 사춘기 무렵에도 아버지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계속하게 되며 3부에서 드디어 제임스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에도 아버지에 대한 반감을 버리지 않는 것으로 표현된다.

한편 램지부인은 자신의 아들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영향이 미치기를 바라는 그런 부류의 사람으로, 자신의 행동이 주변 사람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결국 어떻게 되는 걸까? 사람들은 어떻게 판단하고,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이것과 저것을 더해서 좋아한다고 느끼거나 싫어한다고 결론을 내리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리고 결국 이런 말들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44쪽

그러나 나로서는 램지 부인의 그런 태도는 영 못마땅했는데, 세상 이치란 것이 혹은 사람의 일이란 것이 요리 레시피처럼 딱딱 들어맞는 그런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서다. 어떻든 그런 램지 부인에게도 어느날 불현듯 죽음이 찾아오고, 죽음은 자못 위대한 사람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였던 앤드류에게도 아름다운 외모로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될 것으로 기대되었던 프루에게도 예외없이 찾아든다.

 

'당신'과 '나' 그리고 '그녀'가 지나가고 사라진다는 것, 그 무엇도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 그러나 단어들이나 그림은 그렇지 않다는 것. -292쪽

고전이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니며, 청소년기에 고전을 많이 읽는 것은 자칫 허무주의나 냉소주의로 빠질 수 있다라 주장을 펴는 지인을 알고 있다. 그는 고전을 많이 읽다보면 인간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깊어질 뿐만 아니라, 최선의 선택은 자살 뿐이라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펼치는 것인데, 나 역시 그의 말에 공감하지만 그렇더라도 살아야 할 힘 역시 고전에서 얻게 되더라고 반론하고 싶다.

생의 무의미, 어떻게 살더라도 결과는 죽음뿐이라는... 그러나 그렇더라도 매번 죽음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이 인간일지라도, 우리는 등대를 향해 자신만의 노 젖기를 포기하지 않을 이유를 책 속에서 찾을 수 있다라고 나는 믿는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은 <등대로>가 처음이다. <등대로>는 울프의 다른 작품들과도 다른 기법으로 씌인 소설이라는데, 등장인물의 의식의 흐름을 쫓는 것이 바로 그것으로, 책을 읽다보면 자칫 내 의식이 흐려지는 경우가 없지 않아 읽기 쉬운 소설은 아니였다. 그러나 부드러운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의 일렁임을 따라가듯 펼쳐진 단어들의 나열을 쫓아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말 속에 녹아있는 관계와 의미를 유추하고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2부, '시간이 흐르다'는 1차세계대전 기간 동안 황폐해지는 램지가족의 별장의 모습에 대한 묘사는 마치 서사시를 읽는 듯한 즐거움을 주었다. 마치 집이 생각을 하듯 시간이 흐르는 과정이 물흐르듯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또한 이어지는 3부에서 제임스가 어린시절의 로망이였던 등대원정을 아버지의 권위에 이끌려 반강제적으로 찾아가는 과정 또한 흥미로웠는데, 이 과정에서 소년이 아버지를 넘어서 진정한 성인으로 성장하게 될 것을 기대하게 된다. 가만, 그럼 <등대로>는 성장 소설인 것인가? 음, 죽음 또한 성장의 한 과정이라고 본다면 <등대로>를 성장 소설로 규정한데도 그렇게 틀린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시인 박인환은 '목마와 숙녀'의 종결 부분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죽음은, 성장의 한 과정이라는 내 생각이 꽤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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