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0
니꼴라이 고골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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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골은 인간의 약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인간의 약점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속물성이다.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속물성에 대해 고찰해 보자. 속물성은 자주 웃음과 혐오를 유발한다. 고골은 자기 인물들의 속물성을 곧 그들의 도덕적 결점으로 인정하였다.  속물성은 상투적 생각, 즉 독자적인 내면적 지향을 지니지 못한 인물들의 특징이다. 그것은 창조성과 무관하며 일반적이고 상투적인 생각의 집합일 뿐만 아니라 진부한 표현과 속물적 언어의 사용으로 나타난다. 속물성은 중간계급의 보편적 산물이며 순응주의자들의 속성이다. 그것은 집단적 성격을 반영하고 있으며 모든 것이 가짜다. 그들의 속물적 일상성은 세계에 대한 주체적 인식과 적극적 발언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는다. 속물적 인간들의 주요 관심은 주로 세속적인 욕망으로 衣, 食, 住, 性, 富, 명예, 승진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한 물욕에만 관심을 두고 진부한 표현과 속물적 언어를 구사하는 시장과 지방 관료, 그리고 홀레스따꼬프는 대표적인 속물들이라 할 수 있다. -201쪽, 작품해설 중.

러시아의 소도시에 암행 검찰관이 뜬다는 소문을 들은 시장과 관료들은 여관에서 돈이 없어 떠나지 못하는  홀레스따꼬프를 검찰관으로 여기고 자신들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극진히 대접하며, 돈까지  바친다. 한편 거짓말쟁이, 사기꾼, 바람둥이 홀레스따꼬프는 자의는 아니였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순순히 이용해 한몫 단단히 챙긴후 마을을 뜬다. 그리고 이어서 마을에는 진짜 검찰관의 도착 소식이 울려퍼진다.

재미있는 것은 이 희곡을 읽는 동안 거짓말쟁이 사기꾼 홀레스따꼬프의 사기 행각이 발각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생기더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민초들을 이용하는 부패한 관리들에게 따끔한 맛을 뵈주었으면, 싶은 바램이 있었기 때문이다.되는대로 막 지껄이는 홀레스따꼬프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신들의 틀 속에 재단하는 부정한 관리들은 홀레스따꼬프의 황당한 거짓말에 두려움의 진위를 판단할 이성조차 잊은채로 두려움을 느낀다.

사기꾼 홀레스따꼬프나 부패한 시장은 같은 종류의 인간들이다. 때문에 나라나 법에 의해 처벌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종류의 속물적 인간에 속아넘어가는 시장과 관료들의 어처구니 없는 행실에 실소하며 통쾌함을 느꼈다.

 

홀레스따꼬프의 속물성은 홀레스따꼬프시치나(홀레스따꼬프주의)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홀레스따꼬프시치나는 자기 비하와 자기 경멸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홀레스따꼬프의 거짓말은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무한한 경멸에서 출발한다. 때문에 거짓말 속에서 그 자신은 말도안되는 여러 인물로 둔갑할 수 있는 것이고, 홀레스따꼬프와 가장 많이 닮은 인물이랄 수 있는 시장 및 그밖의 인물들이 홀레스따꼬프의 황당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 갈 수 있었다.

또한가지 중요하게 볼 점은 고골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풍자적 웃음은 언제나 '누군가를 비웃는 것은 자신을 비웃는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검찰관>의 부제는 '제 낯짝 비뚤어진 줄 모르고 거울만 탓한다.'라는 속담이라고 한다. 이 희곡을 읽으며 실소하고 통쾌해 하는 독자조차도, 제 속물성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씁쓸하다. <검찰관>에 등장하는 속물적 인간들의 모습은 부정하고 싶지만 바로 내 모습일 수 있으므로.

독자적인 내면의 깊이를 완성하기 위해, 적어도 순응주의자는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책을 읽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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