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거기, 머물다 - 공경희 북 에세이
공경희 지음, 김수지 그림 / 멜론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풍의 힐링책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문제가 무엇이든 개인으로 시작해 개인으로 끝나는, 그래서 지쳐 쓰러지더라도 책임을 다하고 끝끝내 희망을 잃지말라는 둥의 나긋나긋한 강요가 버겁기 때문이다. 고달프고 힘들겠지만, 그건 너 뿐만이 아니며 어떻든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노래하는 그야말로 예쁜 이야기가 그러니 '너도 정신차리고 살라'는 설교로 들리곤 해서 피곤해진다. 그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실제로 행하지는 못할 때, 이상은 높되 현실이 받쳐주지 않을때는 차라리 애초에 나와는 맞지 않는 것이라고 애써 부정하고 싶은 그런 심정으로 힐링서들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에게는 나름의 취향과 작풍이 있듯 번역가에게도 그런 것이 있는 것 같다. 무엇을 번역하든 인문서를 읽는 것 같은 김석희의 번역이 있고, 뉘앙스와 분위기, 조근조근 느낌을 풀어주는 김남주의 번역이 있듯, 말하자면 공경희는 바른 정신 바른 생활을 모토로하는 '힐링풍'의 책들을 주로 번역한다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어떻는 엄친아이며, 엄치아의 엄마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은가. 때문에 인생에 대한 부드러운 찬미를 즐기지 않는 나는 공경희 번역의 책들은 많이 읽지 않았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공경희 번역의 책들을 모아 보았다. <무지개 물고기>, <파이 이야기>,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템플 그랜든>, <굿바이, 찰리 피스플>, <우리는 사랑일까>,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역시 많지는 않다. 그렇지만 읽은 책은 이보다는 많다. 그녀가 번역작가로 정식 데뷔한 첫 번역작이라는  시드니 샐던의 <시간의 모래밭>을 비롯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세상의 모든 딸들은 어머니가 된다>, <프린세스 다이어리> 등등...  그리고 그 유명한 <마시멜로 이야기>까지.

책 좀 읽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 두권 쯤 공경희 번역의 책은 읽어보았을 만큼 대중적이면서, 오랜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책들을 끊이지 않고 작업해온 번역자 중 한 사람임에도 단지 좋아하는 분야의 번역자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공경희 번역의 책들은 많이 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꼭 인생을 찬양하는 분위기의 아름다운 글들 만을 번역했던 것은 아니였다. 책 뒤에 실린 그녀의 번역서 목록을 보다 보니 다소 당황스러운 책들도 있었다. 조이스 캐럴 오츠의 <좀비-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거나, 존 그리샴의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와 같은 스릴러부터 유아용 그림책까지 넓게 포진해 있었던 것이다. 아, 글쎄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들을 그녀가 번역했다는 것에서는 정말 놀라고 말았다. 어쩌면 그녀는 분야를 아우르며 작품을 선택하되, 그녀만의 독특한 작풍을 유지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무엇을 읽든 자기만의 독특한 감상을 남기듯, 번역 또한 역자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테니까. 그래서 번역은 또 하나의 문학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녀의 북 에세이 역시 그런 느낌의 글이다. 번역한 책 중 오십권 가량을 골라 각 책에 실린 '옮긴이의 글'을 옮기고, 그에 대한 현 시점의 감상을 적었는데, '옮긴이의 글'이라지만 딱딱하지 않고, 그녀 특유의 느낌을 살려 번역자로서의 전문성보다는 독자로서의 감상에 치중한 글들이다. 전문적인 서평보다 개인적 감상글을 좋아하는 나는 갓구워나온 말랑하고 부드러운 식빵을 손으로 찢어먹는 것처럼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인 저널리스트 앨리스 스타인바흐가 모든 일상을 뒤로하고 떠난 <앨리스, 30년 만의 휴가>를 번역하는 동안 그녀는 '부럽다'라는 느낌을 반복해서 받았다 했는데, <아직도 거기, 머물다>를 읽는동안 내내 나 역시 '부럽다'라는 생각이 반복해서 들었다.

부럽다... 우연히 들어선 길이라고 고백했지만, 다행히도 번역작가라는 일이 그녀와 잘 맞아서 이십 오년 간 쭈욱 쉬는 날 없이 일하고 있다는 것도 부럽고, 큰 고비없이 물이 흐르듯 그렇게 유유히 흘러온 그녀의 인생도 부럽다. 책상 위에 펼쳐놓은 책을 보고 지나가던 남편이 한마디 한다. '너도 번역작가 하지 그랬어? 잘했을 텐데.' 툭 던지고 가는 그 한마디에 공경희라는 역자가 내게는 끝끝내 부러움으로 남게 되었다.

 

책을 읽다 불현듯,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읽고 싶어졌다. 처음 읽었을 때는 세간에 알려진 만큼의 감동이 없어 조금 실망했던 책이었는데, 독자들은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는 부분에서 대부분 감동을 받지만, 역자인 자신은 착취하지 않는 인생에 대해 집중했다는 공경희의 말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해서 잠시 책을 접어두고,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오년만에 다시 읽어 보았다. 아, 그때는 왜 몰랐을까.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정말 좋은 책이라는 것을. 죽음을 앞둔 노학자에 대한 어설픈 동정과 아직은 죽음이 멀었다고 여겨지는 내 삶에 대한 안도가 아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골똘한 물음의 책이라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역시 '옮긴이의 글'은 본문과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개별적인 글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원서로 책을 처음 읽고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하는 번역자는 그저 글자만을 옮기는 단순노동을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역자가 감동하지 않은 글은 독자도 감동할 수 없는 법이다.

 

출판사에서 외국 출판사와 에이전시와 어렵사리 계약한 책을 나를 믿고 번역 의로하고, 몇 달이나 기다린 끝에 원고를 받아 책으로 엮어내는 일, 그 책이 세상으로 나가 독자에게 찾아가서 그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일. 그 여정 중 어느 한 부분이라도 어그러지면 나는 그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할 수 없고, 독자 여러분과도 만날 수 없다. 수개월에 걸친 그 과정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과 다름없는 기적이다. 거기에는 기대가 있고 믿음이 있고 약속과 성실이 있다. 불면의 밤도 있고 성취의 기쁨도 있다. 때로는 무력감을 낳고 피로가 쌓이고 낙심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설렘과 부끄러움과 보람이 있다. 그러니 모든 과정의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어느 밤의 작업'은 분명 기적이다. 나의 몸과 마음의 건강이 허락해서 그 시간,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수 있으며, 글 속의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가 여러 인물과 만나며, 거기 담긴 모든 것을 우리 글로 담아 독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내게는 기적이다. 크나큰 기적.(172쪽)

 

그녀가 번역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잘 알 수 있었던 부분이다. 번역한 그녀의 책들이 마치 자식과 같다 라고 표현하는 그녀는 번역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기적'으로 이해한다. 나는 그녀의 말을 오롯이 그대로 마음에 담아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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