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1979년, 브랜다이스 대학 체육관에서 과 대항 농구 경기가 벌어지고 있다. 우리 팀이 뛰자, 학생들은 한 목소리로 응원 구호를 외친다. "1등은 우리 것! 1등은 우리 것!" 모리 교수님이 부근에 앉아 있다. 그는 이 구호에 어리둥절해 한다. 그래서 "1등은 우리 것!" 하고 외치는 중간에, 벌떡 일어나서 그는 소리친다. "2등이면 어때?" 학생들이 그를 바라본다. 그들은 구호 외치기를 멈춘다. 선생님은 앉아서 승리에 찬 미소를 짓고 있다. (204쪽)
이 책을 그저 자기계발서나 힐링서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베스트 셀러를 좋아하지 않아서도 그랬지만, 저 둘 중 한 종류의 책이라고 생각해서 오랜시간 기피한 책이였다. 5년 전 이 책을 처음으로 읽었다. 병으로 죽어가는 노은사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처음 이 책을 읽었던 그때도 고운 시선으로 온전히 책을 읽지 못했다.
공경희의 북 에세이 <아직도 거기, 머물다>를 읽다 다시 읽고 싶어진 책이라 책꽂이를 오래 뒤져 찾아내었다. 처음 이 책을 읽었던 5년 전의 그때는 몰랐었다. 이 책은 노학자의 죽음을 통해 어떻게 살까를 생각하는 힐링서이기도 하지만, 한 사회학자가 바라본 사회심리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 어느 사회분야 책보다도 훌륭한 공동체 문화에 관한 책이라는 것을. 노은사가 죽기전에 유언처럼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읽어보니 특히 감동적인 부분은 모리가 십대 시절 아버지가 일하는 모피 공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보고, 다른 사람을 착취하며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 부분이였다. 이것은 요즘의 내가 고민하는 일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착취해야만 생존 가능한 자본주의 시대를 처절하게 살고 있다는 자각을 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년 전에는 책에 그런 내용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는데, 역시 그때그때의 상황, 감정, 그간 알게 된 것들에 비례해서 책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보고싶은 것만 보는 것처럼.
해서 나는 같은 책을 여러번 읽기를 즐긴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누가 그랬던가, 다시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은 처음부터 읽을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가수인 미치의 아내가 화석처럼 굳어가는 모리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에서 코가 시큰했다. 돌처럼 굳어버린 육체 안에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모리의 정신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했기 때문이다.
'모두들 죽게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기가 죽는다고 믿는 사람은 없어.'(109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것은 한 참 먼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삶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언제 어느때고 덮쳐 올 수 있는 것이 죽음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면, 그 많은 욕망들을 포기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죽음'을 먼 일로, 욕망에 전력투구 하는 동안에는 절대 덮쳐 올 수 없는 것으로 여기도록 사람들을 세뇌한다. 누구든 자신이 언제고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 어쩌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부드러워지고 삶은 더 나긋나긋 해 질터인데.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맞는 말이지만, 좋은 환경이 반드시 좋은 사람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모리를 통해 확인한다. 그의 아버지는 자식들을 끌어안지도, 말을 걸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8살때 병사했다. 모리는 어린시절부터 따뜻한 사랑을 그리워해왔으며, 자신은 자식이 생기면 그를 끌어안고 키스해주는 아버지가 되주마고 맹세했다.
어떠한 자극(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속에 성장하든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사람은 전혀 다르게 성장할 수 있다. 자긍심, 자존감은 다른 사람이 심어주는 것이 아닌 자기 내면에서 길어올리는 우물과 같은 것이다. 모리는 자신을 믿는 마음과 주변 사람들을 믿는 마음을 끊임없이 길어 올려,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주변의 도움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온전히 함께 하는 시간이 있다고 믿네. 그것은 함께 있는 사람과 정말로 '함께 있는 것'을 뜻해. 지금 자네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난 계속 우리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만 신경을 쓰려고 애쓰네. 지난 주에 나눴던 이야기는 생각하지 않아. 이번 금요일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아. 코펠과 인터뷰 할 일도 생각하지 않고. 혹은 먹어야 되는 약 생각도 안 해. 나는 자네와 이야기를 하고 있어. 오직 자네 생각만 하지."(175쪽)
온전히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이 사람이든 음악이든 책이든 함께 하는 대상과 오롯이 함께 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다. 음악을 들을 때는 물론이고, 책을 읽으면서도 머릿속은 금방 딴 생각으로 채워지기 쉽상이다. 하물며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중간중간에도 내 머릿속은 그순간에 전혀 필요치 않은 온갖 것을 찾아 헤맨다. 그러면서도 상대와 함께 있노라고 입은 줄곧 말하는 것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도 내 머릿속의 다른 생각들을 밀어내고 온전히 함께 했다면, 모리 교수의 진심을 더 일찍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왜 모리와 같은 스승이 없었을까. 내 이야길 들어주고, 내 생각을 물어봐 주는 그런 스승이 내 삶에는 왜 없었을까. 설사 그가 병에 걸려 띄엄띄엄 말할지라도 눈빛과 목소리로 나를 깨워 줄 수 있는 스승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정말 없었을까? 혹시 내가 마음에 문을 꼭꼭 걸어두고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야무지게 다짐했던 것은 아니였을까?
오년 만에 다시 모리 교수와 함께 일요일을 보내며, 내 삶에도 모리와 같은 스승이 있었다면 좋았겠다 하는 부러움을 느낀다. 그나마 책으로 라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감사 할 일이긴 하다. 아, 책으로는 몇 번이고 반복할 수 있는 만남이니 더 감사할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