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사람들 - 세계 최고의 독서가, 책 읽기의 즐거움을 말하다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주헌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책의 뒷표지에는 '<책 읽는 사람들>은 '독서의 기술'에 관한 명상록' 이라는 추천글이 있다. 책을 다 읽고나서도 나는 이 말이 무슨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책을 읽는 행위에 마치 어떤 조직화된 기술이 필요한 것처럼 표현된 이 말 자체에 이미 반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다는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독서는 텍스트로 들어가, 개인적인 역량을 총동원해서 텍스트를 탐구하고 재창조해 다시 회수하는 능력(328쪽)'이라는 알베르토 망구엘의 주장이 단순히 '기술'이라는 단어로 함축할 수 있는 '기교'가 아니라는 부정과, 독서라는 행위가 숙련될 수 있는 기술로 폄하된 것 같아 그에 따른 불쾌함이 도저히 참을 수 없다라는 기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저 읽는다는 단순한 행위는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해독하는 기술로서 배우고 익혀 숙련할 수 있는 기술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니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독서는 그런 단순함을 넘어서는 것이다. 독서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기 위한 '스스로 깨달음', '자발적 배움'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망구엘의 이 책에서 확인한 것이다.
 
독서는 창조적인 활동 중에서 가장 인간적 활동이다. 나는 우리가 근본적으로 뭔가를 읽는 동물이며, 독서를 넓은 의미로 받아들일 때 독서하는 능력이 우리 인간이란 종을 정의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난 모든 것에서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려 한다. 풍경, 하늘, 타인의 얼굴에서는 물론이고 우리가 창조해 낸 이미지와 글에서도 이야깃거리르 찾아내려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읽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만이 아니라 경계 너머에 존재하는 사회까지 읽는다. 또 그림과 건물까지 읽고 해석하려 한다. (7쪽)
 
1991년부터 2009년까지 알베르토 망구엘이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한 글과 강연록 등 39편의 글을 '독서'라는 매개로 묶어 출판한 책이니 만큼 책에서 전체적인 개연성을 찾기는 힘들다. 1부의 첫장, '체 게바라의 죽음' 부터 꽤 몰입해서 읽을 수 있을만큼 망구엘의 글은 사람을 끄는 힘이 있었다. 오오, 조국도 이념도 아닌 인간애에 겨워 게릴라가 된 투사라니.
그런데 1부 첫장을 읽고나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체'의 죽음이 과연 책읽는 사람들과 무슨 상관이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글을 읽는 즐거움, 책을 손에 쥐고 있다는 즐거움이다. 또 확실하지 않은 이유로 어떤 구절에서 깨달음을 얻고, 경이로움이나 섬뜩한 기운, 또는 포근한 감정을 느닷없이 느끼는 즐거움도 있다. (9쪽)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책은 '독서의 기술'에 관한 책이라기 보다는 책이 인간이라는 종에게 필요한 이유 즉, 책을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 평범한 것에 만족하지 않으며, 상식적이고 착한 사람이라는 칭찬에 만족하는 수동적이며 억눌린 성인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의 책읽기에 관한 주장이다. 불의가 지배하는 긴 밤의 역사 속에서 비판하고, 때로는 경계를 넘을 줄 아는 상상하는 사람으로 스스로 설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책 읽기라는 것을 주장인 것이다. 깊이가 있어 사색이 필요한 세계, 그것이 독서의 세계다.
 
책을 읽는 즐거움에 관해서라면 이보다 더 잘쓴 글을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즐거운 책이다. 책을 읽음으로써 얻는 직접적인 감각적 즐거움 외에도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세세한 기쁨, 책을 읽고 글을 써서 밥벌이 하기를 원했던 꿈까지 어쩌면 그렇게 나와 꼭 같은지 이 망구엘 할아버지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지금은 한마디로, '부럽다!'
헨리 제임스라는 사람은 한 작가의 전작에서 비밀 암호처럼 반복되는 주제를 가리켜 '카펫의 무늬'라고 칭했다 하는데, 망구엘의 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무늬는 아마도 '책'이라는 씨실과 '읽는다'는 날실로 짜인 '독서'라는 무늬가 될 것이다. 그저 종이와 잉크로 된 인쇄물인 책, 즉 물질을 넘어 내용과 내용 사이를 흐르는 강과 같은 무늬를 조심스럽게 짜넣는 망구엘식 카펫. 그리고 나는 망구엘이 짜놓은 카펫의 기호를 내 나름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해석해 나만의 무늬를 바로 나의 카펫에 새기고 있다.
 
책을 덮고, '나는 무정부주의자가 되어도 좋다'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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