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그릇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8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병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때는 한국정쟁의 종전과 더불어 전쟁특수호황기가 끝나가는 시점의 일본이다.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떠오르는 신세대 문화가이며, 권위로 똘똘 뭉친 오래된 것들은 그것이 문화이든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공개적으로 경멸하는 새로운 세력인 '누보그룹' 중의 한 명이다. 권위적 욕망을 거부하는 '누보그룹'의 모습을 마냥 찬양하는 대중 속에서 그는 새로운 권력을 형성하고, 그 맛에 취하며 더 높은 것을 향한 욕망에 길들여져 가는데...

 

도쿄의 한 기차역에서 첫차의 출발 전 점검 중 얼굴이 뭉개진 시체가 발견된다. 사체는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참혹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그마저도 기차에 의해 절단되길 노린 점으로 보아 원한에 의한 살인이라고 경찰은 추정하지만, 일정기간이 지나도록 사건의 실마리는 물론이고, 피해자의 신원조차도 불분명한 상태로 사건은 미궁에 빠지려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중견 형사 이마니시 에이타로는 형사다운 끈질긴 근성으로 사건을 추적하고, 범인을 추정하며, 그에 맞는 증거를 찾고, 결국 사건을 결말 짓는다.

이마니시는 처음부터 형사의 직감을 들어 한 사람을 범인으로 추측하는데, 때맞춰 증거들은 속속 그의 앞에 엎드려 준다. 범인의 피묻은 옷을 처리해준 것으로 추정되는 이가 그의 동네 아파트로 이사를 오는가 하면,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는 신문 기사를 보고 사건과 연결시키기도 하고, 이마니시가 추측한 범인의 내연녀는 동생의 아파트에 세들거나 하는 식이다.

범인을 정해 두고, 사건을 몰아가는 구성 방식이 너무 뻔하고, 한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정황이 없지 않기에 다소 거북스러웠다. 아무리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의 노력이라지만, 인권침해의 요소가 없지않고, 근성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형사의 끈질김이 내 정서에 맞지 않아 소설 자체가 시시하게 여겨질 무렵, 의외의 사실이 밝혀진다. 과연 형사의 직감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며, 괜히 마쓰모토 세이초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기는 했지만, 여하튼 뒷맛이 개운치는 않다. 권위를 부정하는 누보그룹의 새로운 권력이라니, 혹여 '모래그릇'을 쓸 당시의 마쓰모토 세이초는 떠오르는 새로운 세력에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사상누각. 제목인 '모래그릇'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그 점 아니겠는가. 사회적 차별이니, 편견에 대한 고발이라고 거창하게 해설되어 있지만, 뿌리없고 근본없는 모래성은 단 한번의 매서운 파도만으로도 무참히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매서운 파도는 외파가 아니라 근본없는 자신을 보잘 것 없이 여긴 바로 자기 자신의 내부 불안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근본없음을 불안하게 여기게 된 것은 역시 사회적 맥락이 아니겠느냐고 한다면 그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음, 마쓰모토 세이초는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물의 대모인 미야베 미유키의 정신적 아버지로 불릴만큼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이며, 효시로까지 볼 수 있는데, <제로의 초점> <짐승의 길> 등 몇 권의 작품을 읽어본 결과 그가 그처럼 거장으로 추앙받는 이유를 아직은 잘 모르겠다. 트릭이나 범죄 자체에 초점을 두기보다 사건이 일어나게 된 사회적 동기에 더 중점을 두는 사회파 소설을 좋아하지만, <모래 그릇>의 경우는 꼭 사회적 배경이나 환경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다라고 보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이미 범인은 어린 나이부터 자신의 본 모습을 숨겨왔고, 그래야만 출세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모두가 범죄자가 되지는 않는다는 뻔한 논리이지만 역시 그렇게 주장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이 소설은 신문에 연재된 것 때문인지 상황이나 이야기가 중복되서 설명되는 경우가 많아 더더욱 긴박감이 떨어졌다. 다만 이 소설이 씌인 1960년대 일본의 '누보그룹'과 같은 문화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과, 자신이 많은 여행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평소 여행서적을 즐겨 읽었다는 마쓰모토 세이초가 <제로의 초점>과 같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일본의 여러곳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은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