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고백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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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간에게도 저마다의 드라마가 있고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으며 제각각의 특수한 사정이 있다고 어른들은 생각하지만, 청년은 자신의 특수한 사정을 세계에서 유일한 예인 것처럼 생각한다. -나의 편력시대/미시마 유키오

 

미야베 미유키는 <솔로몬의 위증>에서 '인간은 거짓말을 한다'라고 단언했다. <가면의 고백>을 읽고 나는, '인간은 연기를 한다.'라는 것을 깨닫았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가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춘 '내 모습'을 연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종내에는 진정한 내 모습이란 어떤 것인지, 어떤 것이 연기이고 가면인지 스스로조차도 알 수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정상적으로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이지 않거나, 혹은 일반적이여서는 안된다고 여겨지는 모습들을 흔히 '비정상적' 범주에 두며 안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에서 비정상적인 모습을 감추거나 지우려하는 것이다.

 

미시마 유키오의 자전적 소설 제목이 <가면의 고백>인 것은, 정상성을 연기하는 일상의 모습을 미시마는 가면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만큼 책 속에서 그의 고백은 진솔하다. 그 솔직함의 도가 지나쳐 책을 읽는동안 나는 자주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였다. 소설 속에 '나'로 표현된 주인공은 이성에 대해 육체적 욕망을 느끼지 못한다.(어쨌든 미시마 유키오는 결혼하고 자식까지 두었으니, 그가 동성애자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보여진다) 

그가 '악습'이라고 이름붙힌 최초의 마스터베이션은 구이도 레니의 성화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본 직후였다.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3세기 중엽 로마 군대의 친위대장으로, 기독교에 귀의해 사형선고를 받았다. 구이도 레니의 성화 속 세바스티아누스는 천 조각으로 허리 아래를 가리고 나무에 묶인채로 두발의 화살을 맞은 모습이다. 탐미주의자인 미시마는 이 그림 속의 세바스티아누스에게서 사형수의 처참한 모습이 아닌 고통으로 비틀린 육체에서 나른한 아름다움을 보았다.

 

태생부터 약체였던 탓에 주인공 '나'는 또래이거나 젊은 남자들의 강건한 모습에 매료되는 한편으로 도대체 이성에게서는 어떠한 육체적 매력도 찾아내질 못한다. 자전적 소설이라 하였으니, 자전적인 요소와 함께 소설적 요소도 포함된 것이므로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 픽션인지 알수 없지만, 어쨌든 미시마는 건강한 육체를 탐하므로써 삶을 갈구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평생 죽음의 그림자를 동경해 온 것처럼 보이고, 끝내는 할복으로 마흔 다섯해의 삶을 마감한 미시마는 건강한 육체의 파멸을 상상하면서 죽음에의 두려움을 승화시킨 것이 아니었을까. 때문에 소설 속의 그는 동성애자이기 보다는 성행위가 불가능한 사람으로 보는편이 더 맞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성행위도 결국은 삶을 갈망하는 행위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삶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본성이기보다는 후천적인 교육에 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인간은 본시 죽음을 갈망하는 존재이지만, 그래서는 종족 번식의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므로 죽음은 두려운 것으로, 삶은 축복으로 여겨고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삶이 만족스럽지 않고, 때로는 버거운 고통이기도 한 것인데, 모두가 다 같이 죽음을 두려움이며 슬픔으로 치부하는 것이 새삼 이상스럽게 여겨지는 것이다. 후세를 기약하는 종교적 관점에서는 더더군다나 그렇지 않은가.

미시마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고, 그에게 종교가 있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어쨌든 그는 죽음을 두려움으로 여기진 않았던 것 같다. 그에게 죽음은 언제고 이루어 낼 당면 과제 였던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나라면 총알에 맞아도 아프지 않을 것(113)' 이며, '나만은 절대 죽지 않는다(129)' 는 주술에 대한 확신을 믿지 않던가.

 

 

 

성도착증으로까지 보이는, 자신조차도 정상적인 범주로 여기지 않는 성적 기호를 다만 추억함으로써 가면을 벗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한때의 취향으로 치부될 지라도 자신을 진솔하게 남기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면의 고백>을 썼을 당시 미시마는 그만큼 자신의 맨얼굴에 대해 자신이 있었던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태생이 밝은 사람이라는 평을 듣곤 하는 나는 언제쯤이나 이 많은 가면 중에 진짜 내 얼굴을 발견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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