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가공선 창비세계문학 8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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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다. 1929년 일본의 게 가공선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면서 노예와 같은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부를 늘리는 사업에 자신들이 기여하고 있다는데에 일종의 자부심을 갖기도 했으며, 어쩌다 지나가는 제국군함의 자국국기만 보아도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러나 조악한 식사와 비참한 위생환경, 과도한 노동과 도를 넘어선 폭력으로 병들고 죽어가는 노동자가 생기면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우와 댓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목숨조차 '게'만도 못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그러던중 폭풍우 때문에 조난당했던 일부 노동자들이 러시아인들을 만나면서 세상의 틀에 도전할 방법을 배운다. 일하는 사람은 위대하며, 일하지 않는 사람이 뻐기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 일하는 사람은 다수이고 일하지 않으면서도 큰소리치는 사람은 소수이기 때문에 정작 일하는 사람들이 함께 싸운다면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단결한다. "살해당하고 싶지 않은 자는 오라!" 라고 외치며.

즉, 이 책은 노동자들의 궐기를 촉구하는 궐기문과 같은 단편 소설이다. 때문에 문학적 성과보다는 대중의 각성을 위해 씌여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작가 코바야시 타끼지는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의 대표적 작가이며, 일본 공산당원 이었다. 일본은 1929년 전국적으로 공산당원을 일제 검거하여 339명을 기소하였고, 코바야시 타까지는 1933년 체포되어 고문으로 사망하였다.

 

자본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며, 그것은 자본주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때문에 1929년 게 가공선의 비참한 노동환경은 신자본주의시대라는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책의 뒷편 부록에는 일본의 반빈곤운동가와 원로 평론가의 글을 실어 1929년의 게 가공선이 어떻게 오늘날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일본에서는 경기침체로 프리터니 니트족이니 히키코모리가 등장하였고, 이를 계기로 잊혀졌던 코바야시 타끼지의 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소설 속 이야기의 결말은 태업을 주도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교섭에 나섰던 몇몇 선각자들이 자신편이라고 믿었던 제국의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고, 그후 노동자 각자들이 각성하고 다시한번 떨치고 일어나는 희망적인 내용이지만 배신자, 단 한 명의 배반도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현실의 노동운동은 글쎄...?

 

게 가공선의 노동환경은 비단 1920년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조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던 1960~80년대의 구로공단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다 잘 살게 된 것처럼 보이는 지금 현재 비정규직들의 절규에도 그 처참함은 묻어나고 있으며, 이는 비단 일본이나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자본이 절대권력이 된 신자유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일이건만 다중은 애써 그를 모른체 하며, 나만은 더 나은 노동환경을 보장받고자 게 가공선의 그들이 담배 한대에 양심을 팔았던 것처럼 눈을 감곤 하는 것이다. 인간은 본시 이기적 동물이라고 얼버무리기엔 너무나 비루한 현실인 것이다.

공산당이라고 하면 일단 빨갱이로 몰아치고, 마치 나라를 망칠 악마의 종자라도 되는 양 여기는 우리나라에서 코바야시 타끼지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읽힌다니 세상은 정말 변하고 있는 것이 맞지만, 큰 틀에서 보면 그다지 달라지는 것이 없는 것 같다. 문제는 소설 속에서 발견하는 희망이 아니라 내 눈앞에 이익인 것이다. 노동자이면서도 감독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 연대해 본 일 없고, 궐기해 본 일은 더더욱 없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는 더 쉬운 일처럼 여겨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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