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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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미술가인 위에민준의 작품 중에 <처형>은 처형당하기 위해 늘어선 사람들과 처형을 위해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이 모두 다 같이 웃고 있다. 이 작품은 소더비 경매에서 중국 현대미술 작품 중 최고가로 낙찰되기도 하였다.

 

처음 위에민준의 작품을 본 것은 우연히 들른 지방의 한 미술관에서 였는데, 웃고있는 얼굴이 너무 기분좋아 서핑을 통해 그의 그림들을 찾아보았다. 사이트를 통해 찬찬히 들여다본 여러 그림들속의 남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박장대소하고 있었지만, 처음 우에민준의 그림을 발견했을때만큼 유쾌하지는 않았다. 웃고있지만 그 웃음은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한듯 인위적으로 느껴졌다. 저렇게 활짝 웃고있는데도 말이다. 웃을 상황이 아님에도 웃는 사람들, 그 부자연스러움에 등골에 자르르 전류가 흐르고 점점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위에민준의 '웃음 시리즈'는 배반하는 현실을 비웃음과 동시에 폭력적인 현실에 눈을 감는 자아의 표현이다. 현대 중국사회에 대한 조롱과 기존 가치관에 반항하는 냉소적 시선이 숨어있는 그의 작품세계는 냉소적 사실주의라 불리운다.

 

 

<허삼관 매혈기>를 읽으며, 위에민준의 '웃음 시리즈'가 멈추지 않고 떠올랐다. 허삼관 개인의 내적 갈등과 문화혁명을 거쳐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사회구조와의 충돌에서 비롯된 냉소 같은 것을 발견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만 살기 위해 피를 팔아야 하는 한 가장의 지칠줄 모르는 생의 의지가 웃고있지만 웃는게 아닌 남자들의 얼굴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웃고있는 얼굴을 보며, 나는 한없는 염세주의에 빠지는 경험을 위에민준의 그림에서도,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에서도 꼭같이 느꼈기 때문이다.

 

새벽 세시. 마음만 먹었다면 그 새벽 이 책을 줄곧 읽어 끝낼 수도 있었지만 일락이가 간염에 걸려 상하이로 실려가고, 허삼관이 상하이 가는 길에 사나흘 걸려 한번씩 피를 뽑는 장면에서는 더이상은 책을 읽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친자식은 아니지만 자기 자식임이 분명한 일락이를 살리겠다고 대신 목숨을 거는 그 우직한 무모함에 슬픔보다는 화가났기 때문이다.

' 한 번 피를 팔면 삼십오 원을 받는데, 반년 동안 쉬지 않고 땅을 파도 그렇게 많이는 못버는데'

허삼관과 거대한 세상의 톱니바퀴가 이토록이나 자연스레 잘 맞아떨어지는데 대해, 나는 그것에 대해 화가났던 것이다. 세상에는 피를 팔아야만 사는 사람이 있고,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 밖에 없는 사람에게서 그조차도 내 놓으라고 피를 사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화가 났던 것이다.

농촌 생산대로 떠난 둘째 아들 이락의 부대 생산대장이 방문해 허삼관이 피 판 돈으로 차린 상을 거덜내고, 피를 뽑아 심신이 지친 허삼관에게 몸은 상해도 마음은 상하면 안된다며 상대방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기멋대로 자꾸만 술을 권하는 생산대장에게 화가 나고, 일락의 친부라고 여겨지는 하소용을 위해 곡을 하라고 생떼를 쓰는 하소용의 아내에게 화가나고, 문화대혁명의 와중에서 허삼관의 아내 허옥란에게 기생의 누명을 씌워 비판을 일삼는 붉은 완장들에 화가나고, 극심한 가뭄으로 모두가 허기에 허덕일때 혼자서만 뒤룩뒤룩 살이 오른 이혈두에게 화가나고 화가나고...

 

급한 일이 있을 때마다 돈이 필요해질 때마다 피를 뽑는 허삼관의 이야기는 다행히도 희극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역시 희극이지만 비극적인 결말이다. 왜냐하면 삶은 달라지지 않으니까.

더이상은 피를 팔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된 허삼관이지만, 피를 팔려고 해도 이제는 아무도 허삼관의 피를 필요로하지 않을만큼 허삼관의 생은 말미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것을 '해피엔딩'이라고 보아야 할까.

 

작가 위화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것은 평등에 관한 이야기 라고 했는데, 나는 이말을 잘 이해 못했다. 책을 다 읽고나서도 여전히 잘 이해가 안된다.인간은 죽음으로써 평등해진다. 그런말을 하고싶었던 것일까? 아니, 인간이란 존재는 도대체 평등할 수 없는 존재들이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육십이 넘은 허삼관이 매혈을 거부당하고, 세 아들에게조차도 온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을 때 승리반점에 마주앉아 허삼관을 위로하는 허옥란에게 허삼관은 말한다.

'좆 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란단 말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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