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아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3
기 드 모파상 지음, 송덕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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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은 출세하겠어, 이 악당은.' (468쪽)

주인공 뒤르아가 다니는 신문사 <라비 프랑세즈>의 사장인 왈테르는 납치를 해서라도 자신의 딸과의 결혼을 성사시키려는 뒤르아의 치밀한 계산을 넘겨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이 녀석은 출세하겠어..'

뒤르아가 딸 쉬잔과의 결혼을 꿈꾸기 이전에 몇명의 정부가 있었고, 그 중 왈테르 자신의 아내가 있었던 것도 물론 왈테르는 몰랐다. 다만 뒤르아 자신의 성공을 위해 현직 장관과 뒤르아의 아내인 마들렌의 부정 현장을 덮친 것은 쉬잔과의 결혼을 위한 기획이었음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정도 배짱이라면 뒤르아는 국회의원도, 장관도 될 야심있는 인물이며, 그렇다면 자신의 사윗감으로 손색이 없지않느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탕달의 <적과 흑>의 쥘리엥처럼 여자를 이용해 돈과 계급상승을 꿈꾼 이 남자 뒤르아에게서는 일말의 동정도 생기질 않았다. 쥘리엥과 뒤르아는 출신계급에 따라 자동으로 주어진 운명을 거부했다는 점에서는 꼭 같았지만, 그 결말은 달랐다.

쥘리엥은 마지막 자존심은 팔지 않고 차라리 죽음을 택함으로써 순종 대신 열과 성을 다해 운명에 반항하는 정신이 고결한 하층민으로 가엾게 여겨졌다. 그러나 뒤르아의 경우, 쥘리엥과 꼭같이 동정의 여지가 있는 상황이였음에도 그는 비열했다. 자신의 매력적인 외모로 사교계의 부인들을 꼬여내고 버리기를 반복했으며, 그러고도 반성을 몰랐고, 고결한 정신력이라는 것도 없었으며 신념이라고는 오직 '돈'이나 '출세'뿐이였다. 물론 배경이 된 19세기 프랑스의 상류사회는 '돈'과 '권력'과 '방탕'이 판치는 장이긴 했지만, 뒤르아는 자신이 저지른 온갖 부정과 방탕에 대한 죄값을 치르지 않고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결말로 <벨아미>는 끝난다. 

그 후 뒤르아가 줄곧 성공만을 했는지, 재산가인 어린 아내와 처가를 쥐락펴락하면서, 그 후로도 몇명의 정부를 바꿔가며 인생을 끝까지 즐기기만 했는지의 여부는 독자 상상의 몫으로 남겨진 것이다. 진부하게도 나는 뒤르아가 뒤 늦게라도 죄값을 치렀으면 하는 심정이다. 

 

뒤르아에게 무엇보다 화가 나는 것은 '고마움을 모른다는 것'이였다. 친구 포레스티에를 통해 신문사에 취직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 안정된 위치에 이르렀으며, 결국 포레스티에의 아내와 결합함으로써 신분상승을 이루어내었지만, 그는 그 무엇에도 고마움을 느낄줄 모른다. 오히려 더 높이 오르고 더 많은 것을 갖기위한 욕망으로 두려움을 모르는 점에서 자기 자신과 꼭 같은 마들렌을 새로운 결혼을 위해 몰락시킨다. 영리하고 재빠르며 통찰력도 뛰어나 남편들의 뒤에서 신문기사를 쓰며 여론을 움직였던 마들렌 포레스티에가 뒤르아에게 뒷통수를 맞고 마는 장면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어쨌든 세상은 강한 자의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뒤르아를 이용했던 마들렌이니 만큼 마들렌 역시 기회가 있었다면 뒤르아를 내팽겨쳤을테니 피차 마찬가지라고 해야할까.

어쨌든 뒤르아의 승승장구가 못내 속상하다. 의리도 없고, 신념도 없으며 오로지 신분상승과 돈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뒤르아 같은 인간이 잘 나가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며 바로 그 점이 영 못마땅한 것이다. 

 

모파상은 이 소설에서 개인적 감상이나 선과 악에 따른 권선징악을 보여주려했던 것이 아니라 19세기 당시의 프랑스 상류 계층의 추악한 모습과 투기와 권력 남용의 사회상을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다한다. 그렇다면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출세와 권력과 욕망을 쫓아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자들의 것이지 않은가. '저지르는 자 세상을 갖는다'라고 했던가.

저지를 줄 모르는 나는 오늘도 문학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는다. 나는 적어도 이렇게 살지 않았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진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흠, 그런데 기회가 있고 기회를 알아차리고 잡을 줄 아는 머리가 있다면 인간은 누구라도 권력과 돈을 쫓아 이렇게 추악해질 수 있는 것일까? 그래서 인성교육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본다.

그렇기에 인간이란 너무 슬픈 존재이며, 결국엔 아무것도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허탈한 존재이기도 하다. 누구도 영원히 살 수는 없는 것이니까. 결국엔 뒤르아도 쥘리엥처럼 죽고말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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