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여 안녕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13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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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분명 열 몇살의 소녀때 였을 것인데, 그것이 열다섯 무렵이였는지, 열 일곱 무렵이였는지 확실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제 막 열다섯이 된 조카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소녀시절 읽었던 책이였으며,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질 않지만, 소녀가 읽기에 무리가 없는 성장기 였다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였다. 무심코 인터넷 서점을 통해 조카에게 책을 보내고, 책꽂이에서 함참을 뒤져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한 후, 나는 이 소설이 열다섯살 소녀가 읽기에 좀 무리가 있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욕망에 충실한 바람둥이 아빠 때문만은 아니겠는데, 열일곱 살의 주인공 세실은 술도, 운전도, 담배도 서슴치 않는 이른바 '불량소녀'로 보였기 때문이였다. 그래도, 그렇긴 하지만 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읽다가 결국 인터넷 서점의 배송을 취소하고 말았는데, 그것은 세실이 스믈여섯의 청년과 육체적 쾌락을 탐닉하는 장면에 맞닥드리게 되면서 였다.
물론 지금의 나는 성적인 것을 이 소설의 주안점으로 읽지 않을 만큼 성숙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세실이 새엄마 후보인 안느에게 갖는 컴플렉스나, 외딸을 키우며 사는 홀아비로서는 적당치 않는 세실 아빠의 성생활에 초점을 두고 책을 읽었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그렇더라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겠지만 어쩐지 나는 조카가 세실을 자기와 동일시 하다 못해 남자 친구와 몹쓸 모험이라도 버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이제 나도 생의 안정을 갈구하는 '안느'와 같은 부류가 된 것이다.

프랑스와즈 사강. 매혹적인 작은 악마. 
<슬픔이여 안녕>의 스토리는 마치 사강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유한 실업가의 막내 딸로 태어나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수도원에서 성장했다는 사강 그 자신이 바로 세실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실제 그녀의 아버지가 이미 욕망에 충실한 모습이였기 때문에 사강조차도 욕망을 쫓는 삶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김영하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제목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인간은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던 사강의 말에서 차용된 것이라니, 더더욱 놀랍다. 이십대의 그시절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주문처럼 외우며 무던히도 휘청댔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은 내 생애 최초의 모험이였고, 자유로워지고싶은 몸부림이였으며, 내 자신에 대한 파괴의 시절이였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무너짐에까지도 나는 완전하지 못했다. 늘,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했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다른 성장배경이 있었다면, 한번쯤은 완벽하게 사강처럼 처절하게 바닥까지 무너져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죽음도 불사하지 않는..
번역가 김남주는 <나의 프랑스식 서재>에서 청춘의 절정에서도 사강과 같은 기개를 갖지 못했던 자신으로서는 사강을 선망하지 않을 수 없다 했는데, 나 역시 그렇다. 어느 곳에 매복해 있다 내 발목을 잡을 지 모르는 '삶(죽음이 아닌 삶)'에 철저하게 나를 저당잡힌 채로 살아온 것이다. 나에게는 '안정'이 무엇보다 우선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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