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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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아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었다. 사강은 브람스를 좋아하냐는 물음 뒤에는 반드시 말줄임표를 써야 한다고 했다는데, 어쩌면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냐는 물음의 대상은 브람스가 아니라 묻는 대상이라는 의미가 아니였을까.

<슬픔이여 안녕>은 소녀 시절 읽었던 책이고, <한달 후, 일년 후>와 그녀의 자전적 에세이인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를 읽은지도 이미 오래지만, 언젠가 드라마 제목으로도 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만큼은 겨우 오늘에야 읽을 수 있었다. 김남주의 <나의 프랑스식 서재>에 힘입어.
 
사강을 말할 때 흔히 불꽃같은 그녀라고 했던가, 매혹적인 작은 악마라고 했던가. 어떤 성장 배경을 가졌기에 사강은 그토록 삶에 두려움이 없을 수 있었던 것일까, 불량스럽게 보이던 그녀의 전생이 완전하게 부럽기만 한데... 그런 그녀도 역시 노쇠나 죽음을 두려워 하긴 했던 것일까. 아니, 내가 보기엔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조금 놀아본 언니로서 관조와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약간의 경멸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마지막까지도 삶을 낭비하듯 쏟아부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였을까. 완벽하고도 완전하게...

'욕망을 실현한다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때, 더 이상의 만남이 불가능해지는 때, 머릿속에서 분방한 생각들이 오가는 가운데 아침 추위로 이가 딱딱 부딪치는 때, .... 지금 유일하게 안타까운 것은 읽고 싶은 책들을 다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뿐.'이라고 노년을 함축했다는 사강의 말은 젊은 애인 시몽을 사랑하지 못하고 지레 지쳐버린 연상의 그녀, 폴의 심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런데, 노년을 앞두고 있다기엔 서른아홉은 너무 지나치게 젊은 나이 아닌가? 하긴 열네살 연하인 시몽에 비한다면야 지나치게 무르익은 나이이긴 하다만.
그리고 사강이 이 작품을 쓴 나이는 스믈넷. 열아홉 살에 <슬픔이여 안녕>을 써 일약 스타가 된 그녀는 스피드광으로 22세에 자동차 사고로 이미 죽음의 문턱을 밟았으나, 기적적으로 회생했다고 한다. 그랬기때문에 자신은 정작 스믈넷이면서도 서른아홉 여인의 젊음에 대한 추억과 노쇠에 대한 갈망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익숙한 것과 결별하지 못할 때, 새로운 사람, 새로운 만남, 새로운 장소, 그런것들이 두려워지는 바로 그때가 생물학적인 시기와는 관계없이 노년의 초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강은 너무 일찍 삶을 알아버린 듯도 하고... 또 병으로 세상을 뜬 그녀의 나이가, 69세 였으니 생각보다는 오래 산듯도 하고... 아무렴 천재들의 박명은 익히 알려진 바이고 하니 오히려 69세까지 살 수 있었던 사강은 장수한 것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하고...

나라면 어떨까. 이미 습관처럼 익숙한 로제를 완전히 잊고, 낯설기에 오히려 매력적인 시몽을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었을까... 역시, 사랑은 자신에 대한 투영인 것. 완벽하고도 온전하게 사랑하는 것은 나 자신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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