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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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영국의 저명한 저택 달링턴 홀에는 당연하게도 달링턴 경이 살았고, 달링턴 경과 달링턴 홀은 세계대전 전 후 동안 격동의 중심에 서있었다. 이 달링턴 홀에서 평생을 보낸 집사 스티븐슨은 달링턴 경, 달링턴 홀과 함께 자신  역시 유럽의 역사를 움직이는 중심축에 매우 가까이 섰던 한 인물로 자신을 평가한다. 그에게는 바로 이런 역사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남모르는 긍지가 있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달링턴 경의 행동이 영국뿐만 아니라 인류에 매우 무익한 행동이였음이 밝혀졌더라도, 스티븐슨은 달링턴의 행위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으며, 그나름의 선의가 무시되어서는 안되고, 더불어 집사인 자신이 그간 달링턴 나리께 보였던 충성심 또한 저평가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바로 그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름의 선의, 혹은 잘못된 판단으로 인류에 해를 끼친 존재에 대한 역사적 심판은 가능한 것인가. 또한 충성심에서 비롯된 행위가 결과 여하에 따라 비난받는다는 것은 과연 온당한 일인가.
 
격동의 시대가 지나고 달링턴 경은 세간의 비판 속에 비참한 최후를 보내고, 달링턴 홀 마저도 미국에서 온 새로운 주인을 맞게 된다. 집사 스티븐슨은 달링턴 홀의 거래당시 '일괄 거래의 한 품목'으로 새 주인에게 양도된다. 그 후 새 주인의 미국행 여행계획에 맞춰 스티븐슨에게도 6일간의 휴가여행이 주어진다. 그러나 집사로서의 성실함을 놓지않는 스티븐슨은 이 여행마저도 지난 시절 달링턴가에서 같이 일했던 여자 관리인인 켄턴 양을 만나, 다시 달링턴 홀에서 일할 생각이 없느냐는 의사를 타진해 보겠다는 일의 연장선으로 여행을 계획할 정도로 스티븐스는 자신의 집사 업무에 충심을 다해 봉사한다.
그는 집사 업무에 대한 자신의 충심을 '사적인 실존을 넘어서는 전문가적 실존의 위대함'과 '자신의 지위에 맞는 품위'로 해석하는데, 자신은 계급적, 직업적 위대함이나 품위에 걸맞는 집사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모셔온 나리 달링턴에 대한 충성심인 것인데, 그는 달링턴  같이 현명하고, 유럽 사회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위대한 신사들에게 완전하고 훌륭하게 봉사함으로써 자신 또한 위대한 중심에서 한 몫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렇게 주인과 자신의 업적에 대해서 동일시하는 스티븐슨은 달링턴 경의 노력이 잘못되었고, 어쩌면 어리석기까지 했다라는 역사의 심판 앞에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나누어 질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저 집사로서의 역할에 충심을 다했을 뿐이며, 이는 자신의 지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라고 믿는다. 또한 자신은 '집사로서 주인에게 보여야하는 당연한 충심'이라는 불변의 진실을 따랐을 뿐이며, 자신과 함께 독자 역시 세상의 거창한 문제들을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은만큼 현명하고 존경스럽다고 판단되는 주인에게 복종하고 충심을 다하는 것은 만고의 진리라고 항변하는 것이다. 이러한 항변은 히틀러 치하에서 유대인의 체포와 강제 이주를 지휘했던 친위대장 아이히만을 떠올리게 한다.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아이히만은 자신의 직무에 성실했던 한 직업인이며, 또한 평범한 한 가장이였다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악의 평범성'에 대해 논한다. 사유없는 무조건적인 충심에만 천착할 때 우리중 누구라도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는 '경고'였던 것이다.
집사 스티븐슨을 보면서 아이히만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책의 후미에 역자 김남주 역시 아렌트와 이시구로의 접점에 대해 논하는 것을 발견하고 내가 지은이의 의도를 잘 읽어내었다는 기쁨과 함께, '마술에 가까운 솜씨'라는 찬사를 듣는다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에 또한번 탐복하게 된다.
 
스티븐슨의 무조건적인 충심에 대한 직업적 품위는 여행중 만난 농부 해리 스티븐슨의 인간으로서의 자각적 품위에 맞닥드리게 되는데, 해리 스미스는 품위는 높은 지위와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자신이 자율을 지닌 인간이라는 것을 자각하는데서 나온다고 말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집사'로만 한정하는 스티븐슨은 해리 스미스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스티븐슨은 직업적으로 훌륭한 자실, 품위, 위대함 따위에 빠져 정작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며,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킬수 있는 이른바 '나리'들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망각함으로써, 또는 알지 못함으로써 자신을 충성스러운 개와 같은 지위로 격하시켰던 것이다. 그것을 직업적 위대함이라고 볼 수 있을까. 
평생 자신을 '집사'라는 존재로만 인식해온 스티븐슨으로서는 자신에게 '사랑'의 기회가 왔음 조차도 알지 못한채로, 지나간 날보다 남아있는 날이 길지 않은 오늘에 이른 것이다. 스티븐슨은 지나간 날에 더이상 연연하지 않고, 남아있는 나날을 위한 새로운 노력에 희망을 걸지만, 그 역시 새주인을 위한 새로운 노력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 새로운 노력이란, 계급을 벗어야만 가능한 '농담'이라는 새로운 도전이라는 것에서 우리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이로써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 중 세권을 읽었다. <나를 보내지마>와 <창백한 언덕 풍경>, 그리고 <남아있는 나날> 이 세권 중, 어떤 책이 더 좋았다라고 말하기 힘들만큼 세권 모두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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