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파이 이야기>를 쓴 작가 얀 마텔이 자국인 캐나다의 수상에게 문화와 예술을 사랑해 달라는 의미로 보낸 101통의 구애편지다. 이 편지들은 거의 사년 간, 격주로 추천 도서와 함께 수상 집무실로 보내졌다.

얀 마텔의 편지와 책 선물을, 주기적이며 일방적으로 받아야 했던 캐나다 수상은 마지막 101번째 편지가 도착한 이후로도 이에 대해 어떠한 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드물게 수상 집무실의 문서담당관으로 부터 짤막하고 피상적인 감사의 인삿말을 담은 짧은 편지가 보내지기는 했다. 101통의 편지 중, 총 7통의 대리 답장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한나라의 수반인 수상이 한가하게 책이나 읽고 노닥거릴 여유가 없다는 뜻이였을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제안되는 독서는 하지 않겠다는 뜻이였을까? 아니면 수상은 원래 책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관심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수상이 침묵하지 않았더라면, 얀 마텔과 수상간의 활발한 논의로 일방적인 책 추천이 얼마든지 바뀔 여지가 있었고, 또 근본적으로 책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수상이라면 자국민의 주기적이고 장기적인 이러한 노력에 아주 작은 성의라도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아무래도 수상이라는 직책은 독서할 짬이 나지 않는다는 쪽으로 나는 추측한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작가가 수상에게 권하는 책이 어떤 것이였을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추천도서 목록에서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와 <깊은 밤 부엌에서>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우리 아이가 무척이나 좋아해 중학교 1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버리지 않고 간직하는 바로 그 모르스 샌닥의 그림책이 바로 수상을 위한 추천도서 목록에 있었던 거다.

얀 마텔은 아들의 탄생을 기념하는 뜻에서 두 권의 그림책을 고른 것인데, 무엇보다 문학의 힘이 '상상력'에 있다고 믿는 그는, 따분하고 편협만 마음을 가진 어른은 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직책 때문에라도 늘 경직되어있을 수상에게 어린시절로 돌아가 마음껏 상상력을 펼쳐 볼 것을 권하는 의미였던 것이다.

얀 마텔이 수상에게 문학을 권하는 이유는 이 두권의 그림책을 고른 이유로도 충분히 설명된다. 물론 정치는 한 개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독자적인 의견으로 하는 것은 아닌, 여럿이 함께 모여 나누어야 하는 가장 사회적인 행위이다. 따라서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며, 어쩌면 가장 덜 창의적인 분야이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상상력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풍부해질 수록 이성과 감성에서 모두 유능해질 수 있으며, 무엇보다 나를 내려놓고 남과의 타협을 이끌어내려면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는 상상력이 없다면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수상에게 보내진 책들은 소설과 희곡, 시, 동화와 만화, 그림책과 몇편의 논픽션이 있었으며, 놀랍게도 '할리퀸 로맨스'까지 포함되어있었다. 이 역시 그림책과 마찬가지로 쪼그라들지 않는 상상력을 위한 추천서였다. 과연 수상은 얀 마텔이 보낸 책들을 몇 권이나 읽었을까? 또 만약 읽었다면 얀 마텔의 기대대로 조금이라도 더 현명해졌을지 살짝 궁금하다. 그랬다면 그렇게 끝까지 묵묵부답으로 둘만의 특별한 독서클럽을 끝내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캐나다에 대해, 그리고 수상 스티븐 하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얀 마텔에 의하면 캐나다의 수상 스티븐 하퍼는 자신의 원칙과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며,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기만을 기대하는 원칙주의자이다. 얀 마텔은 나라의 지도자에게 이런 모습은 바람직 하지 않다라고 생각한다. 현시스템에서 '나'라는 개인은 국가의 영향을 받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라의 지도자인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꿈을 꾸며,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가 그의 학력이나, 경력, 재산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또한 책을, 문학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서 바른 생각과 깊은 사색을 기대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이유로 얀 마텔은 수상에게 둘만의 특별한 독서 클럽을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시도가 얀 마텔의 짝사랑으로 끝나고 말았다.

 

시작은 일방적인 것이였더라도 만약, 작가와 수상의 특별한 독서 클럽이 주고받는 관계속에서 이어졌더라면, 이는 어쩌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사례로 오래도록 역사에 남을 기념비적 사건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어떤 작가라도 박근혜 대통령께 둘만의 특별한 독서 클럽을 제안해 보았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박근혜 대통령이 캐나다 수상처럼 작가와 노닥거릴 짬이 도저히 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떠냐고 묻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한나라의 수반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지만, 그저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한사람의 독서광으로 얼마든지 특별한 독서 클럽에 흠뻑 빠져들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인데 말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추천서들 중 캐나다 작가들의 작품이 많았다. 그중 캐나다 자유당 당수를 지냈다는 마이클 이그나티에프의 <덜 악한 것>이 우리말로 번역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아프리카인과 유럽인의 만남이 불행한 방향으로 흘러간 이유는 어느 한쪽이 열등했기 때문이 아니라 둘 모두가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427)이라고 쓴 치아누 아체베의 <모든 것은 산산이 부서지다>를 꼭 읽어야 겠다. 어리석은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나는 더 현명한 사람이 되려 한다.

87번째로 보내진 책 <정다운 고향 시카고>에 관한 에피소드는 오래 생각하고 싶다. 얀 마텔은 문화 친화적인 페스티벌에서 <정다운 고향 시카고>를 쓴 작가 애슈턴 그레이로 부터 직접 이 책을 샀다. 애슈턴 그레이는 이 소설을 자비로 출판하고 페스티벌에서 직접 판매까지 했는데, 얀 마텔은 이 책이 결함도 많고 무엇을 말하려는지도 불분명한 소설이라고 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상에게 이 책을 추천한 이유는 작품의 질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려는 애슈턴 그레이의 열망에 감동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작가에게서 태어난 이야기는 병을 탈출하려는 요정처럼 누군가에게 공유되기를 원한다는 얀 마텔의 설명도 근사했지만, 무엇보다 애슈턴 그레이가 다음해인 2011년 캠핑도중 급사했다는 작가 이력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무명의 소설가이거나, 한 나라를 넘어 세계를 움직이는 지도자이거나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릴 수 있는 똑같은 생명체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며 미친듯이 일만하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왜 사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채 어느날 그렇게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것이다. 책을 읽거나 읽지않거나 어느날 갑자기 그렇게 나는 사라질 수 있지만, 살아있는 동안 나는 삶을 절실히 느끼고 싶다. 관대하고 싶고, 겸손하고 싶다. 물론 책을 통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장장 600쪽의 장서였지만,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좋은 책이였다. 다만 아쉽게도 소소한 오타가 너무 많아서 속상했다. 철자의 실수에 대해 너그럽지 않은 얀 마텔인듯 한데, 정작 자신의 책이 한국이란 나라에서 이렇게 오타 투성이로 출판된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내심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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