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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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중 교수의 책이라면 일전에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며 도움을 받은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가 있다. <안나 카레니나>를 먼저 읽었는지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를 먼저 읽었는지, 기억이 선명하진 않지만 어쨌든 두 책을 연달아 읽은 셈인데 석영중 교수의 책으로, 안나와 톨스토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석영중 교수의 러시아 문학 강연이라면 일부러라도 찾아 가고 싶은 심정이다. 또한 아닌게 아니라 요즘 부쩍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고골, 체호프에 관심이 많아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연>도 점찍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이책이 반가웠다.
푸슈킨의 소박한 부엌, 곤차로프의 죽음에 이르는 요리, 투르게네프의 마이너스 식사, 톨스토이의 소식·채식·절식, 고골과 뱃속의 악마, 체호프의 끝없이 범속한 수박, 도스토예프스키의 생명의 빵, 올레샤의 썩지않는 소시지, 자먀틴의 미래의 음식, 파스테르나크와 시인을 위한 가정식 백반, 불가코프의 개밥과 불타는 레스토랑, 솔제니친의 위대한 식사가 석영중 교수가 이 책에서 꼽는 러시아 문학의 코드인데, 그러니까 이 책은 음식을 통해 보는 러시아 문학의 개괄이며 이해인 셈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은 음식을 먹어야만 살 수 있지만, 사실 인간이라면 '살기위해 먹기'보다는 '먹기위해 산다'는 표현이 그다지 틀리지 않을만큼 살기위한 영양분의 섭취뿐만 아니라 음식의 차림과 분위기, 그리고 먹는 행위까지도 즐긴다. 때문에 음식은 문학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예술 등 삶과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중요한 코드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가장 최근에 읽은 러시아 문학 중 <안나 카레니나>에서 귀족들이 어째서 그렇게 프랑스말과 음식, 프랑스인 가정교사 따위에 집착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호나 취향이 아닌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행위의 연속선상이였던 것이다.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 이후, 러시아에서는 모든 러시아적이 것은 촌스러운 것, 타파해야 할 구시대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석영중 교수는 이를 옛 음식과 새 음식의 대립이라고 까지 확장해서 보았는데,  남의 것은 좋고 내 것은 부끄럽다는 이러한 표트르 대제를 비롯한 러시아 귀족들의 생각은 한때 개방과 서구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던 우리의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다만 그것이 '한때'로 기억되는 성질의 것이 아닌,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에 그 씁쓸함이 더하다. 이처럼 이 책은 문학 속의 음식을 통한 러시아의 이해이지만 사실은 우리의 사회와 문화를 들여다보는 작업인 것이다.

19세기 중엽 농노제도하의 러시아에 한 귀족 지식인의 무기력한 삶을 통해 보여주는 소설 <오블로모프>와 엄청난 식욕을 부끄러워해 그 마지막은 굶어죽기를 택했다는 천재작가 고골의 <옛 기질의 지주>, 반복적 일상의 범속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국어선생>을 읽고싶은 책 목록에 적어둔다.

 

해마다 꽃바람과 함께 부는 다이어트 열풍을 타고 일명 '해독쥬스'가 요즈음 인기다. 해독쥬스는 몇가지의 삶은 채소와 과일을 갈아 만드는데, 한 여성 연예인의 다이어트 성공담으로 더더욱 그 인기가 높다. 더군다나 이 해독쥬스는 다이어트 뿐 아니라,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암과 같은 병의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얼핏 생각에도 고지방 고열량 음식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채소나 과일의 꾸준한 섭취는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어느날 아침 불현듯 발견한 일간지 특집기사로 나역시 '해독쥬스'를 마셔볼까 하는 유혹을 느끼고 있는 찰라에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만난 이름도 생소한 여러 음식들 앞에 '해독쥬스'는 나에게 그저 강건너 남일이 되고 말았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먹는 즐거움에 대한 포기가 지금의 나로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대와 사회의 가치를 담는 것이 문화이며 문학이라면, '해독쥬스' 또한 오늘날 우리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코드가 될 것이며, 어떤 작가는 '해독쥬스'를 코드로 우리의 문화를 풀어내는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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