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 - 임동확 시인의 시 읽기, 희망 읽기
임동확 지음 / 연암서가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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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를 읽고 싶은 이유는, 정서적으로 풍부하고 싶어서. 감동적인 언어를 내 속으로부터 끌어내기 위해. 깊은 눈빛의 영혼이고 싶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읽지 못하는 이유는,지루하기 때문에. 시인의 언어가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없어서. 꼬인 마음으로 부터 시작되는 꼬인 상상 때문에.

 

내가 시를 일상으로 즐기지 못하는 이유는 이 책 지은이의 딸들 처럼 시를 그저 공부로 익히고 배웠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정확히는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나의 의미로 전환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만큼 나는 시적이지 못한 삶을 살도록 훈련되어 왔고, 나는 거기에 잘 적응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끔 시적인 언어의  부드러움이 그립고, 내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시인의 풍부한 감성이 부러워지곤 한다. 아마도 시적이지 못한 삶에 잘 적응해 왔다라는 생각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무의식 중에 알고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정혜윤의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를 읽다가, 콘스탄틴 카바피의 '이타카'를 발견했다.

 

 

네 생각이 고결하고

네 육신과 정신에 숭엄한 감동이 깃들면

그들은 네 길을 가로막지 못하리니

네가 그들을 영혼에 들이지않고

네 영혼이 그들을 앞세우지 않으면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닐까. 내 육신과 정신에 고결하고 숭엄한 감동이 깃들도록, 그리하여 그 무엇으로부터도 내 영혼을 침범 당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의 발로가 '시'를 읽는 것으로 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지은이의 주장처럼 정말 나는 시인으로 태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일상속 나의 언어가 세속적이고, 통상적인 것으로 무뎌진 것일뿐.

시인은 일상을 낯선 사물과 풍경으로 전화할 줄 아는 감각을 지녔다. 때문에 시인의 감각에 맞춰 발을 딛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시는 다소 피곤하게도 읽히는 것이다. 조금 더 시를 쉽게 이해하고 싶었다. 그것이 이 책을 선택한 이유이다. 낯선 언어를 접할때 통역이 필요한 것처럼 시인의 말을 좀 알아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시인과 나 사이에 해석자, 중간자의 역할은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시인이 무엇을 노래하듯 결국 내 느낌은 나만의 독자적인 것일테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자, 이미 널리 알려진 유명해진 작품들을 지은이 나름의 해석으로 접근해 풀고싶었다는 지은이의 노력이 버겁기도 했다. 시인의 감성을 느끼되, 해석자의 해설도 이해해야 했으니까. 더구나 임동확의 해석은 시보다 더 자주 난해하기까지 했다. 이런 곤란함으로 '시'가 주는 난해함에 이어, '해석'을 이해하려는 피곤함이 겹쳐 책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지은이의 해석을 고스란히 내 것으로 삼기보다는 나와 다른 감성을 가진 지은이의 해석은 지은이의 그것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쉽지않은 책이지만, 인간은 본시 시인으로 태어났으며 그렇기 때문에 시 세계의 풍부함과 다양성을 이해하려는 노력, 생명의 거룩과 준엄함을 노래하는 시인들과의 대화를 잇고자 하는 소망과 바람만은 높이 사려한다.

 

 

 

 

 

널리 알려진 이육사의 시 '광야'에서 조국 광복의지나 저항 정신을 찾아내고,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서 식민지 청년의 순수한 자아와 고뇌를 읽어내는 것이 전적으로 그른 해석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전기 비평적이며 역사주의적 비평의 치명적인 약점은 다름 아닌 인간과 세계에 대한 해석이 이미 주어져 있다는 점이다. (들어가는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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