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 열심히 일해도, 아무리 쉬어도, 그 무엇을 사도,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정희재 지음 / 갤리온 / 2012년 9월
평점 :
판매중지


만약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면

정말 아무거도 하지 않을 테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지워 가다 보면

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 드러나겠지.

피로에 젖도록 몰아세우며

얼마나 오래 '되어야 할 나'를 쫓아 왔던가.(228쪽)

 

하루에도 열두번씩 감정의 널을 뛰는 소녀의 비밀 일기를 담은 책 같기도 하고,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사람의 유치한 고백을 담은 책 같기도 한, 디자인이 예쁜 이 책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넘어 권리를 주장하는 어울리지않게 조금은 저돌적인 책이다.

구구절절한 지은이의 사연을 다 읽지 않고,  목차만 훑어 보아도 그만 속이 뻥하고 뚫리는 것처럼 시원해지는 책이다. 그러니까 내용인즉, 푸념처럼 혼자 되뇌곤 하지만 어디서도 내놓고 주장할 수 없었던 내 멋대로, 내 맘대로 버팅기거나, 해치울 수 있는 권리들에 관한 이야기다. 푹 쉴 권리, 욕망에 끌려다니지 않을 권리, 보험을 들지 않을 권리, 나이값 하지 않을 권리, 사랑받으려 애쓰지 않을 권리, 사교적이지 않을 권리, 스마트하지 않을 권리, 광고를 보지 않을 권리를 넘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에 이르고나면 나는 그만 '악'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

 '그래서 이 험한 세상 어찌 살려구!"

 

장래 희망을 '바쁘지 않은 사람'이라고 쓰는 아이를 보면 깨물어 주고 귀여워 했다.(74쪽)

나도 그랬다. 장래 희망이 바쁘지 않은 사람이라니. 그 조그마한 머리통 속의 세계는 얼마나 심오한지...  그러나 바쁘지 않은 사람을 희망하는 그아이가 더이상 귀엽게만 느껴지지 않는 지점은, 그 아이가 바로 내 아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바로 거기였다.

생물학적으로 내가 낳은 아이라는 것 말고는 특별히 귀여울 것이 없는 이 아이가 짐짓 걱정이 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거기서 부터였다. 정말 그래도 괜찮은 걸까, 바쁘지 않게 살아도 살아질 수 있는거야? 내아이, 정말 이대로 세상 살아갈 수 있겠어? 나는 정말 심각하게 아이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왜? 남과 같은 보통의 꿈을 꾸지 않기 때문에?

그러나 어쨌든 뭐든 상큼하고, 시원하게 한방에 끝내지 못하고 왠 실수가 그리 잦으냐고 퉁박을 주는 제 어미에게 실수하지 않으면 뭐가 잘못인지 알 수 없잖아, 라고 당차게 주장해주는 내 꼬마가 사실은 너무 예쁘다.

 

지은이 정희재가 주장하는 권리들은 너무 매력적이다. 가난해도 기죽지 않을 권리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돈없으면 기죽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니 차라리 솔직하게 돈없어서 기죽는 순간을 쿨하게 받아들일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니, 이쯤이면 지은이의 주장들이 생떼라거나 오기라고 보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사실, 지은이가 주장하는 권리들은 누군가 딱히 허락해줘야 가능해지는 권리는 아니다. 세상살이에 내 스스로를 맞추다 보니 어느덧 저절로 자기착취를 일삼고 있는 것인데, 그저 그것을 멈추기가 쉽지않은 것이다. 정희재의 <아무것도 하지않을 권리>는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한다. '왜 그래야 했지?, 왜 멈출수 없는 거지?, 왜 그래야 하지?'

 

책을 읽다보니 문득, 한글 파일을 켜고 주장하고 싶은 내 권리들을 주욱 써나가 보는 것도 꽤 괜찮은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일이 아니어도 늦잠 잘 수 있는 권리, 내 마음을 일일히 설명하지 않을 권리, 남의 주장을 흘려 들을 권리, 머리카락이 상했어도 기죽지 않을 권리, 보다 싼 것을 달라고 당차게 말 할 수 있는 권리, 읽고 싶지 않은 책은 읽지 않겠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 싫은 사람에게 너 싫다라고 당당하게 말 할 권리, 하고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권리, 권위에 복종하지 않겠다고 엉길수 있는 권리, 그러니까 결국엔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릴 권리.... 쓰다보니 좀 과격해지는 면이 없지않지만, 어쨌든 나는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하고싶은 것을 할 권리, 좀더 인간다워질 권리를 되찾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말하고 싶다. '네가 좋은 것을 해' 라고.

음... 그러고보니 예쁘장한 이 책, 꽤 위험한 책이잖아!

 

드높은 가을 하늘을 보며 오늘 하루쯤은 사막의 날로 삼아 볼까, 중얼거려 본다(사막의 날이 어떤 날인지, 책 속에서 만나시라).

그냥 마음가는 대로 하리라. 어떠한 죄책감도 갖지 않은채로.

 

모든 것에 대해 불만족하고 자신에 대해 더욱더 불만족스러운 지금 이밤, 고독과 적막 속에서 나는 스스로 기력을 되찾고 자신을 조금 사랑하고 싶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의 영혼들이여, 내가 찬양하던 사람들의 영혼들이여, 나를 굳세게 해다오. 나를 지탱할 수 있게 해다오. 내가 이 세상의 허위와 부패로부터 멀리 있게 해다오. (110쪽,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 새벽 1시에 중에서 지은이가 인용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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