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누군가에겐 복숭아꽃 살구꽃 피는 시골이 고향이겠지만, 내겐 현대식 백화점이 세워지고, 새로 개통한 지하철이 들어서던 그곳이 고향이었다. 금강산의 비경보다, 벚꽃이 빽빽이 들어찬 아파트 단지 풍경에서 더 뭉클한 감동을 느끼는 나 같은 아이들은 놀이터와 주변 상가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유년기를 보낸다. 내게 압구정동은 시인 유하가 '바람부는 날엔 반드시 가야 한다'고노래하던 욕망의 집착지가 아니었다. 우리 동네. (159쪽)

 

나는 압구정동의 옆동네쯤인 역삼동에서 유년시절과 청춘을 보낸 한 사람으로, 욕망의 집결지로 지칭되는 압구정동이 누군가에겐 고향일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압구정동도 누군가에겐 그저 우리 동네일 뿐이라는 너무도 지당한 사실이 그 당연함 때문에 오히려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따라서 에르메스 버킨백도 누구나에겐 그저 '백'일 뿐이고, 마놀로 블라닉도 누군가에겐 그저 '구두'일 뿐이며, 발데온 치즈를 듬뿍 넣은 크림소스 펜네도 누군가에겐 흔한 파스타의 한 종류일 뿐이다.

그랬다. 그 모든 것들이 그저 특별 날것 없는 일상이기를 바라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과거형을 굳이 쓰는 이유는 지금의 나는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해 소비되는 그런 것들을 일상으로 꿈꾸지 않아도 내 자신으로 충분히 빛 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씩 미친듯이 무엇인가를 사제끼고 싶은 본능과도 같은 욕망을 억누르느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이런류의 책을 읽는다. 조경란의 <백화점>이라던가, 오현종의 <거룩한 속물들>, 서유미의 <환타스틱 개미지옥>, 그리고 백영옥의 <스타일>과 같은 책을 읽는다.

 

이 책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느꼈다. 등장 인물들을 나와 공명시키지 않으며 마음껏 비웃어주고 싶은 기분은 '나는 다르다'는 내 자만심을 한껏 채우주고도 남았다. 나는 다르다. 프라다에 대한 속물적인 욕망과 제3세계 아이들에게 기부하고 싶은 선량한 욕망 중에 어느쪽에 더 무게를 둬야 현명한 것인지 쯤은 충분히 판단할 수 있을만큼 나는 다르다. 그러나 갑자기 궁금해진다. 프라다를 욕망하는 것은 속되고 기부는 선량하다 라는 것을 어떻게 단정할 수 있지?

백영옥의 <스타일>은 제4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이 시대의 피상성, 깊이 없음을 쿨하게 잘 형상화했다는 평을 들었다. 깊이 없는 세대, 깊이 없는 영혼, 우리는 그저 세상이 원하는 스타일대로 살아질 뿐이다.

 

여배우 정시연의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마친 날, 모처럼 마음이 맞은 이서정과 김민준의 뜨거운 밤이 제니컬로 엎어진 것에 대해 무척이나 안타깝게 생각한다. 작가 백영옥의 재기발랄함은 이 장에서 완벽하게 구사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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