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먼 여행 아시아 문학선 2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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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대학교재보다 더 두터웠던 로힌턴 미스트리의 <적절한 균형>을 읽으며 몇날 밤을 밝혔던 일을 기억한다. 무슨 할 이야기가 이토록 많았을까, <적절한 균형>을 펼치기 전에 기부터 질리게 했던 끝이 없을 것 같던 로힌턴 미스트리의 이야기는 책을 덮고난 후에도 오랫동안 시린 가슴을 남겼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적절한 균형'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한채, 이렇게 절망적인 삶이라면 살아 뭐할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명확히는 로힌터 미스트리의 장편 삼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라는 <그토록 먼 여행>이 <적절한 균형>의 전작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적절한 균형>이 먼저 소개되었고, <적절한 균형>을 가슴 시리게 읽었던 나는 이제서야 출판된 미스트리의 첫번째 작품을 격한 마음으로 덮썩 받아쥐었다. 미스트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행여 절망뿐일지라도, 반갑게 달려들 만큼 묘한 끌림이 있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이번 책도 역시 글의 양은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미 전작을 읽어 알고 있는 로힌터 미스트리의 이야기는 지루할 틈이 없을 것이기에 그다지 걱정되진 않았다. 그러나 이번 책의 시작은 내 생각과 달랐다. 한꺼번에 등장하는 여러 등장인물들의 인도식 이름과 조로아스터교를 비롯한 종교 용어들의 익숙하지 않은 낯설음이 주인공 구스타드를 둘러싼 잔잔한 일상과 함께 나열되면서 지루했던 것이다. 때문에 첫번째 작품이기에 전개에 미숙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으며, 한방이면 훅하고 로힌터 미스트리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것을 알기에 사건이 금방 일어나주지 않는 것에 초조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루함과 초조함 속에서도 책을 내려놓을 수 없는 묘한 힘은 여전했다. 마치 풍선이 빵빵해질 수록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기대감으로 바람넣기를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미스트리는 두 작품 다 인도의 종교적, 정치적 상황을 배경으로 개인의 평범한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인도의 역사나 배경을 잘 모르는 나로써는 개인에 초점을 두고 책을 읽었다. 때문에 '그토록 먼 여행'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품안을 떠나 멀어지는 아들을 잡으려는 부모의 절망, 형제처럼 사랑했던 친구의 배신, 이기심으로 일그러지는 우정, 그리고 그 속에서 맞게 되는 세사람의 죽음은 얼마나 많은 일들이 편협한 오해로 인해 진실이 곡해되고 있는지를 말한다. 결국 온전히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는 '그토록 먼 여행'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두 친구의 죽음 앞에 생각 외로 담담한 구스타드가 너무도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울타리안의 비극이 아니라면, 얼마쯤의 방관은 어쩔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에, 또한 그것이 바로 내 모습이기도 하기에 구스타드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바보 테물이 피를 흘리고 죽었을때 보여준 구스타드의 모습에서 나는 그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구스타드를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곡해하고 있었던 것이였다. 결국 인간에 대한 연민만이 그토록 먼 여행을 끝낼 수 있는 열쇠이다.

 

영혼을 하늘로 올려보내는 의식이라는 침묵의 탑에서의 조로아스터교 장례식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관찰자인 나조차도 딘쇼지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오래전 눈여겨 봐둔 티벳의 장례의식을 사진으로 담은 박하선의 <천장天葬>이 떠올랐다. 문명이라고 일컫어지는 눈으로는 '미개'라고 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죽음문화를 담은 책인데, 나는 그 책을 오래도록 탐했지만, 차마 용기를 내지 못하고 눈여겨 봐두기만 했었다. 그러나 딘쇼지의 장례 장면을 보면서 이제야 말로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덧씌워진 왜곡의 틀을 벗고 가슴으로 그들의 의식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서구인의 눈을 바른것으로 여겨 우리의 눈이 그러하길 바라던 착각을 벗어나게 해줄 출판사 '아시아'의 '아시아 문학선'이 무척 고맙다는 생각도 든다.

오래도록 가슴이 시렸던 <적절한 균형>, 연민의 마음이 드는 <그토록 먼여행>을 지나 로힌턴 미스트리의 장편 삼부작 중 세번째 장편이라는 <가족 문제>가 우리나라에서도 어서 소개되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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