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맷하시겠습니까? - 꿈꿀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여덟 가지 이야기
김미월.김사과.김애란.손아람.손홍규.염승숙.조해진.최진영 지음, 민족문학연구소 기획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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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고 감상을 남기는 일은 매번 힘에 부친다.  그 책이 단편집이며, 여러 작가들의 작품일때는 더더욱.

단편은 이야기가 짧기 때문에 몰입 또한 짧다. 매번 한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허탈해지고, 허탈해진 마음으로 새로운 이야기에 빠져들기는 쉽지 않다. 채워지지 않은 공허한 마음을 뒤로 하고 새로운 이야기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배회하는 동안, 무언가 내 의식을 확 잡아끄는 어떤 사건이나 상황, 하다못해 뒷골이 쭈뼛해지는 단어 하나라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눈은 글자들을 읽고 있으되, 의식은 분열에 분열을 거듭해 몇번씩 되돌려 읽기를 해야 작가의 의도는 둘째치고 스토리라도 대충 이해한 척 할 수 있게된다. 더구나 작가 자신의 작위적 언어들을 이심전심으로 독자가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 정도가 깊은 한국 소설들은 장편 단편 할 것 없이 몰입에 이르기까지가 쉽지않다. 해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결국 나는 한국 소설, 특히나 단편은 좋아하지 않아, 라고 믿어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책은 제목부터 나를 확 잡아끄는 무엇인가 있었다. 포맷하시겠습니까? 물론 포맷하고 싶지요. 존재의 시작부터 깨끗이 포맷할 수 있다면.

 

아는 작가라고는 김애란 뿐이였다. <침이 고인다>, <달려라 아비>를 밤새 읽으며 몇번이고 무릎을 쳤던 기억이 있다. 그외 김사과 김미월의 이름은 알지만 책을 읽지는 않았다. 말했듯이 국내 소설을 즐기지 않으니까. 손아람 이라는 작가는 이 책에 실린 <문학의 새로운 세대>에서 문학상 수상작을 뽑기 위한 작가들과 평론가 사이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데, 정작 수상작으로 뽑힌 차세대 작가는 한국의 작가들 중 누구를 좋아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국소설은 별로 안 읽었다' 라고 대답한다. 그렇다고 내가 문학의 새로운 세대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한국 소설을 즐기지 않는다는 고백에 용기가 났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한국문학에서 가장 젊은 세대이며,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읽는 동안, 숨이 턱 막히는 절망을 느낀다. '좋은 문학작품은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삶의 방식을 고민케 하는 힘을 지녔다'라고 기획의 말에 쓰여 있는데, 그 고민의 방향이 앞으로의 '삶'에 대한 당혹감을 넘어 무의미로  까지 이어져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자유주의의 직격탄을 맞은 세대의 작가들답게 타락한 세대의 비정상적인 삶을 그만큼 리얼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소비를 통해서만 내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는, 그렇기에 더욱 소비를 갈망해야 하는 처절한 현대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김애란의 <큐티클>이 가장 공감되었고, 왕따가 되지 않기위해 대신누군가를 왕따시키는 치열한, 혹은 치졸한 사회의 매커니즘을 이야기하는 최진영의 <창>은 읽는내내 소름이 돋았다. 김사과의 <더 나쁜쪽으로>는 몰입이 쉽지 않았지만, 책을 덮은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다. 현대사회인의 고독을 간명하지만 빽빽하게, 지루하지만 가장 적절한 언어들로 나열했기 때문이다.

꿈꿀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여덟 가지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이 기획 의도대로 앞을 향해서 달리느라 옆도, 뒤도 볼 틈이 없는 우리 모두에게 절망을 넘어 희망을 생각하는 질문의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는 질문일지라도 누군가 그것을 쓸모있게 만들어줄 답을 찾기 위해 애쓴다면, 그 곡진한 기운들이 모여 결국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시대의 얼굴을 바꾸고 나아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것 아니겠는가.(김미월의 질문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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