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이라서 행복하다 - 김조광수 감독의 영화와 성 소수자 인권운동
김조광수.김도혜 지음 / 알마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1. 영화를 그저 여가를 즐기는 수단 중의 하나로만 인식하고 있는 나로서는 김조광수라는 감독도, 제작자도 알지 못했다. 알았다 해도 그가 게이든 아니든 책을 읽고싶을 만큼 호기심을 느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이 한마디 때문이었다. "나는 게이라서 정말 행복하다."

정말? 정말 게이라서 행복한거 맞아? 게이가 아니었다면 더 행복하지 않았겠어? 게이라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게이라는 것을 당당히 밝힐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뜻이겠지. 골방에서 울고 있을 줄 알았겠지만, 이렇게 당당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 택한 캐치플레어겠지만, 그 호들갑이 좀 오버스럽다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을 확인하고 싶었다. 굳이 나 게이요, 밝히지 않아도 될 것을 스스로 밝혀 사회적으로 온갖 부당함을 감수하는 것처럼, 묻지도 않았는데 나 정말 행복하다라고 떠벌이며 책까지 낸 김조광수라는 사람의 자기중심성을 확인하고 싶었다고 할까.

 

2. 성적소수자를 가르키는 용어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없는 나는 게이나 호머나 트랜스잰더나 그게 그거라고 혼용해서 알고 있었음을 먼저 고백해야 겠다. 따라서 책을 읽으며, 자주 네이버 용어 사전을 검색해야 했다. 퀴어영화는 또 뭐라니.

책을 다 읽고보니, 마지막 장엔 친절하게도 '게이용어'를 정리해두었다. 분명히 목차를 살피고 읽기 시작했는데, 왜 목차에는 용어정리가 안나와 있는거야? 다시 목차를 뒤집어 보니, 헐! 페이지 수까지 명조체로 분명히 박혀있었다.

초간단게이용어사전1-287

초간단게이용어사전2-309

 

3. 게이라면서 참 인생을 순탄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김조광수 자신은 중학교 시절 이미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깊어 '버스 유랑'을 하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는데, 나로서는 그의 고민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에게 한 첫 커밍아웃이, '나 걔들하고 뽀뽀도 하고 그래!"라니 성정체성으로 고민하며 보낸 사춘기 시절 맞아?

운동권으로 지내던 대학시절도 그다지 고생되거나 힘들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로맨스가 짙었던 군대 시절은 더구나 말할 것도 없고.

흥행에 실패한 몇편의 영화 제작자 시절에도 영화인생에 변화가 생길만큼 커다란 타격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커밍아웃으로 그의 신변에 무슨 이변이 생긴일도 없었고... 이건 뭐 일반인들 보다도 더 순탄한 인생을 사는 이반인처럼 여겨졌다.

인터뷰집을 읽으며 내내 김조광수의 삶을 순탄한 인생이라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인터뷰를 진행하고 책을 정리한 김도혜의 어투가 구차하지 않고 담백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또한 김조광수라는 사람이 그만큼 경쾌하고, 열정적이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만큼 게이 김조광수는 즐거웠할 줄 알고, 기뻐할 줄 아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것은 성정체성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애착이 아닐까.

 

4. 독립영화집단을 거쳐 청년필름의 제작자로 그리고 감독으로 이어진 그의 영화인생 이야기를 통해 잘 알지 못하는 영화계의 뒷얘기가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솔직히 영화인으로서 그의 이야기보다는, 게이로 살아가는 그의 사적인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다는 것은 숨길 수 없겠다. 특히 군시절의 로맨스는 이성애자 사이의 여느 로맨스와 다를 것이 전혀 없어 조금 황당하기까지 했다. 동성애를 섹스 중심의 사랑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던 탓였으리라.

김조광수 그가 이 책을 진행한 이유는 '내세울 건 별로 없고 부끄러운 건 참 많은 사람이지만, 부족한 자신을 보고 사람들이 용기를 냈으면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게이라서 행복하다'는 김조광수의 오버액션을 확인하고 싶어서였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성적소수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전의 나는 성적소수자 그들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한마디로, 나의 일이 아니므로.

언젠가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우연히 보았다. 동성애를 증오하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거세되어 죽은 동네 사람을 역시 동성애자인 주인공이 회상하던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인간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많은 이성애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정상'이라는 말조차 그 의미를 잃을 수 있다. 아니, 잃어야 한다.

 

5. 김조광수는 성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청소년 동서애자들에게 롤 모델이 되고 싶다라고 했는데, 롤 모델 보다는 의논자, 혹은 상담자가 되어주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김조광수가 청소년들의 롤모델로 적당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청소년기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확정하기에는 불안정한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같은 여자 아이를 좋아했다. 물론 같은 여자 아이로 부터 고백을 받기도 했고. 그 시절에는 그것이 사랑인지 우정인지 따윌 구별하기 보다는 그 친구가 나하고만 친했으면 하는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것은 우정이였고, 대학에 진학한 이후로는 여자 친구와의 사랑 때문에 울거나 웃었던 적이 없다.

 

6. 그러고보니, 영화 제작자나 감독으로는 김조광수를 알지 못했지만, 해고노동자 김진숙이 85호 크레인에서 농성중이었을 때, 한진중공업 불법 정리해고 철회 투쟁을 지지하는 배우 김꽃비, 여균동 감독과 함께 김조광수를 본 기억이 있다.

대학에서의 운동이 졸업 후에도 계속 이어져, 그는 영화 제작 스탭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일에 앞장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한 운동도 자신의 몫이라 여기고 있다고 했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어디든 간다는 김조광수. 이제는 이 이름을 잊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사람과 삶을 동시에 존중하며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 내 경우 2장의 스케치 프리뷰(63쪽)을 읽으며, 책을 확 덮어버리고 싶었다. 아는 형을 따라 부모님이 여행 가시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비디오를 보는 것이 그 내용으로 비디오가 시작되고 김조광수는 온몸이 굳으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했는데... 그 뒷 이야기는 직접 확인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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