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이 다해먹는 세상 - 왜 99%는 가난할 수밖에 없는가
크리스 레만 지음, 김현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날카로운 비판과 경멸의 뉘앙스가 느껴지는 <부자들이 다해먹는 세상>이라는 표현에 내가 처음 생각한 추세나 운동, 관습이 대체로 반영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우연히 시작된 칼럼의 시야를 넓혀 미국이 처해 있는 상황을 좀 더 포괄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14쪽, 서문 중)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 역시 그랬다. 부자들이 다해먹는 세상이라는 제목 속에 이미 누구나 다 알고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던 진실을 한마디로 쿨하게 폭로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저자는 자신이 하려던 방법대로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믿을수 있냐며, 가능한한 최대로 깐족거리고 있지만, 역시 미국의 정치와 경제적상황이고, 따라서 잘 알지 못하는 인물들과 사건들로 저자의 비아냥어린 조소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나로서는 머릿속이 최대한으로 꼬이는 경험을 제대로 한 책이다.

그런 중에도 아이패드와 같은 초현대적 기기들을 소유할 수 있는 부류로 분류되기 위해 분투하는 싸구려 영혼들의 가련한 분투기와, 자본의 세계에서 고통받는 대중을 어리버리한 채로 사로잡기 위한 수단으로서 악용되고 있는 프로 스포츠계의 활약상 등은 국가상황을 초월해 비교적 쉽게 이해되는 대목이기도 했다. 거기에 영광스럽게도 우리의 노태우 전 대통령과, IOC 부위원장이었던 김운용의 이름이 부패한 인물로 떡하니 인쇄되어 있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하였으니, 저자의 맹렬한 사회 비판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나에게 제대로 충격이기도 했다.

부자들이 다 해먹는 세상에서 교육 또한 다르지 않다. 자본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고이는 것이다.  교육은 경제적 차별의 동력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자본이 흐르지 않도록 막는 제방 역할 역시 수행하고 있다. 이또한 '리틀 아메리카'로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다.

결국, 세계는 국가별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부자 대 빈자로 분류되고 있다라고 봐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들의 세계에는 역시 국가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맞지 않을까. 아니 국가가 이미 부자들이 취할 수 있는 이익에 부합하는 유용한 수단으로서 존재하고 있다고 봐야는 것이 맞지 않을까.

 

돈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돈은 사랑만큼 중요합니다. 돈은 닫힌 문을 열어줍니다. 돈을 존경할 필요가 있어요. 충분한 돈을 갖지 못한 사람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많은 돈을 벌어들인 설치 미술가, 데미언 허스트. 104쪽

헉! 소리가 나도록 천박한 논리임에도, 최소한의 교양을 갖은 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임에도 특별히 반발할 만한 말이 없다. 가히 놀라운 통찰이랄 수 있을 정도다. 돈은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고, 도덕적 가치를 가리고, 결국 스스로의 양심을 가린다. 정확히 부자들이 다해먹는 세상인 것이다.

 

에세이별로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큰 맥락에서 돈이면 다되는 세상이고, 돈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안되는 세상이라는 것쯤은 이해했다. 또한, 이 책이 빈자들의 말초신경을 최대한 자극해 보자는 의도로 씌여진 것이라는 것도 이해했다. 다만, 나에게는 자양강장제와 같은 효과보다는 돈의 힘 앞에 무력해지는 경험을 또한번 하게 한 책이다. 그야말로 신분상승을 꿈꾸면서 공정을 이야기하는 가련한 열망을 가진, 싸구려 영혼이고 싶지 않은 나에게는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밀가루와 같은 책이었다.

냉소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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