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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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19세기말 뉴욕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필사를 하는 바틀비는 고용주의 어떠한 요구에도 한결같이 답한다.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하지 않겠습니다, 또는 하고싶지 않습니다, 가 아닌 '안하는 편을 택하겠다'는 바틀비의 대답은 본인 스스로의 의지를 좀더 강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

자신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의지가 있고, 시키대로 움직이는 인형이 아니라는, 때문에 고용주라 해도 자신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라는 항의가 아니였을까.

바틀비를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사람이라고 믿는 변호사는 '악한'이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기위해, 바틀비에게 연민의 마음을 품기도 하고, 실제로 바틀비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줄 것을 제안하지만, 바틀비는 변호사의 아량에도 한결같이 대답한다.

"지금은 좀 더 합리적인 사람이 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울컥 눈물이 솟았다. 어째서 거부하는 거야, 어째서 너는 늘 다른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선택을 하는 거야.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최고의 덕목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바틀비는 최고로 남을 불편하게 하는 종류의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함으로써, 자신이 불편해지는 그런 경우는 바틀비에게는 없는 것 같다.

타인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우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용주와 고용자의 관계가 있겠고,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있을 것이며, 그보다는 단순히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의지에서의 무조건적 수용이 있을 것이다.

바틀비는 이 세가지를 모두 무시 또는 거부하고 있는 것인데, 도대체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결국에 그는 자신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편을 택했고, 다만 우리는 그 사실을 수용할 뿐이다.

 

좀더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바틀비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던 것은 그저,

출근길 전철 안의 빽빽한 공기에 숨이 막힐 것 같아서 였기 때문이며, 숨이 막힐 정도로 밀착된 중에도 모두들 한결같이 귀에는 이어폰을, 쾡한 시선은 스마트기기에 꽂은채로 어디로 달려가는지 관심이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의지로 자유롭고 싶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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