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에서 본 세계는 지금 어디쯤 왔을까?
클라우스 베르너 로보 지음, 송소민 옮김 / 알마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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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 나의 이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왼쪽인가, 왼쪽이라면 어째서 왼쪽이라고 여기는가. 일명, '가진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왼쪽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의 성장기로 말하자면, 가진자 쪽이였을 것이다. 아빠는 고소득의 전문 직업인이었고, 엄마가 돈 문제로 고민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나에게는 나만의 방과, 나만의 침대와 나만의 피아노가 있었고, 나는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하기 싫은 것이 더 많은 그런 아이였다. 철철이 여행을 다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가족행사였고, 외식은 분수가 쏟아지는 무슨무슨 가든이나 호텔 뷔페식당 등이 애용되곤 했다. 그러나 보여지는 모습에 비해 가정에서의 생활은 그다지 행복한 쪽은 아니었다. 아빠는 늘 바빴고, 외식이나 여행 때가 아니면 주말에도 집에 있는 법이 없었다. 엄마는 돈 걱정을 하지 않는 대신, 늘 히스테리컬한 모습이였다.

하고 싶은 공부가 없었던 나는 대학생활도 의무적이 였다. 최루탄이 쏟아지던 그 시절, 땀내가 진동하는 전경들 앞을 지날 때에도 꼿꼿이 걸으려고 용을 쓰던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은 내 모습은 이념이라고 할 것 조차도 없는 방관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 모습은 결혼 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나 스스로를 왼쪽이라 여기고 있는가. 그 이유는 책과 함께,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책을 읽으며 되새김질 하는 세상의 부당함에, 권력의 파렴치함에, 자본의 광포함 앞에 내 몰리는 내 아이를 상상하는 순간 나는 '왼쪽'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더불어 '가진자'였다라고 기억되는 나의 성장기가 한낱 꿈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식들에게는 히스테리를 부리다가도 돈을 가져다 주는 아빠 앞에서는 고분고분했던 엄마의 얼굴을 기억하기 때문이며, 드리는 공에 비해 성취하는 것이 적었던 나는 늘 엄마에게 골치덩어리였고, 자랑스럽지 못한 딸이였다는 것이 내 골수에 깊이 박혀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더 잘 살기 위해 해야하는 것들, 가져야 하는 것들은 나를 지치게 한다. 그 속에서 이미 행복하지 않았던 경험이 있던 나는 내 아이에게는 똑같은 경험을 되물려 주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왼쪽'이다. 세상은 원모습 그대로 충분히 풍요로우며, 경제성장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환경은 보호되어야 하고, 세상의 모든 사람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올라서기 위해 딛는 옆사람의 어깨는 내 이웃의 어깨이며, 밟히는 그 어깨는 바로 내 어깨다.

 

 

이 책에 나와있는 내용은 이미 무수히 우리가 보아온 사례이며, 알면서도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내용이다. 커피 열매와 카카오 열매를 따기 위한 노동에 12세도 되지 않은 어린이가 동원되고, 핸드폰에 꼭 필요한 탄탈이라는 광물 등 아프리카의 풍부한 자원은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 내전의 이유이며, 애플과 나이키 등 대기업은 자사 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중국이나 베트남 등의 하청공장에서 비인간적인 대우와 급여를 받는 노동자들이 생산해 내는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것, 맥도널드의 햄버거와 맥너겟에 사용되는 소와 닭의 사료인 콩을 경작하느라 지역농산물을 생산하지 못해 기아에 허덕이는 토착민들 등 그 밖에도 이미 무수한 사례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난 시절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은 착취가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했다. 그것이 꼭 과거의 일만도 아니것만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갖은 나라의 사람들인양 행세하고 있다.

보통의 중산층으로 살기 위해, 혹은 보이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들에는 눈을 감고, 대기업과 메이커에 열광하며 오늘도 사람들은 아케이드로 몰려들고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사망하고 지난 1월, 중국에 아이폰4s가 출시된 첫날 몰려든 인파 때문에 아이폰 측에서는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애플의 중국 공장에서 '다공메이'라고 불리는 처녀공들이 하루 15시간 노동에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은 액수를 받으며 생산해 낸 바로 그 아이폰은 생산과 소비에서 모두 중국인들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그 중국인들이 바로 우리다.

 

 

그렇다면 생산자와 소비자로 동시에 이용되고 있는 우리에게 다른 대안이 있는가. 물론 대안은 있다. 책에서는 챕터마다 문제 제기와, 사례를 들고 말미에 대안으로 우리가 행할 수 있는 행동들을 요점 정리하듯 정리했다. 정당한 방법으로 제품을 생산하지 않고 광고에만 열을 올리는 메이커 제품과 다국적 기업 물건에 불매 운동을 벌이고, 자사에 항의하고,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사지 않으며, 지역생산물과 공정무역을 이용할 것, 세계민들과 연대하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시민으로서 용기를 갖을 것 등이다.

한편으로는 위와 같은 대안은 너무나 모호하고, 경제적 글로벌 화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세계질서에 크게 변화를 줄 수있는 방법이 아닌 것 같아 답답한 심정이 된다. 예를 들면, 불법증여와 권력유착, 후진적 무노조 경영 등으로 문제를 일삼고 있는 삼성의 갤럭시s를 사지 않으려고 애플의 아이폰을 선택했더니, 애플 역시 노동자들의 부당한 노동력 착취로 돈을 벌어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황당함과 이어지는 자포자기 같은 심정 말이다. 새로운 제품은 날마다 쏟아지고, 사방에서 울리는 제품광고는 '물건'을 갖지않으면 나는 곧 낙오하고 말 것이라고 떠들어댄다. 낙오하지 않으려는 선택은 결국 우리를 물건의 노예, 자본의 노예로 규정되게 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갖고 싶은 핸드폰은 무수히 새로 개발되는데, 나 혼자서 꿋꿋하게 하는 불매운동 등은 무척이나 촌스럽게 여겨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갖고 싶은 그 욕망조차도 본성이 아닌, 자본에 의한 세뇌이며 훈련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이길 수 있는, 이것은 그야말로 자본과의 전쟁이다. 우리의 적은 이웃이 아니며, 우리의 적은 다른나라가 아니다. 우리의 적은 '자본'이다. 낙숫물은 언제가는 바위를 뚫는다는 믿음으로 모든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대해야 이길 수 있는 전쟁이다.

알고있지만 나의 일이 아니므로, 라는 생각으로 무심결에 이책을 지나쳐서는 안된다. 무심결에 행하는 '방관'은 결국 나와 내 아이를 삼킬 것이다. 자본과의 전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몫은 무심결에 마시는 커피 한 잔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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