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신 자유주의 시대, 복지정책의 딜레마
아스비에른 발 지음, 남인복 옮김 / 부글북스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보편적 복지에 반감을 가진 우파들은 복지시스템이 사람들을 게으르고 나태하게 해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결과, 성장과 발전은 더이상 이룰수 없게 된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전통적인 경제학에서 말하는 인간 존재는 끊임없이 자기이익만을 추구하고 보상과 처벌에 따라 행동을 달리한다는 '호모 에코노미쿠스' 이론과 맥을 같이 한다. 즉 인간은 경제적 인센티브나 경쟁에 대한 압력이 없다면 누구도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 존엄성을 인정받게 되는 보편적 복지시스템은 도덕적 해이로 인해 결국 국가경제 성장에 방해가 된다라는 뜻이다.

소위 우파라고 자칭하는 우리의 보수적 정치인들은 그리스 및 최근 일련의 유럽의 경제난은 보편적 복지시스템에 의한 국가 부도 사태와 같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러한 주장에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장 고된 노동에 자신을 투자한 결과, 최종적인 이득은 상위 1%에게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오히려 성장과 효율성 제고를 위해 열정을 쏟을 사람은 없을 것이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데, 이런 사회에서 직업이나 일은 밥벌이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기본적인 행복감 조차도 유보해야 한다.

 

북유럽의 복지국가는 자본가들이 사회주의 세력이 늘어날 것을 두려워하여 노동운동과의 합의를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확대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책은 설명하고 있다. 그 결과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은 보편적 복지 시스템 하에서 전반적 근로조건을 개선시켰고, 빈곤이 약화되었으며, 질병이나 고령이 된 사람, 한부모 가정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경제적 안전을 보장했다. 또 무상 교육과 건강 서비스는 국민의 삶의 질을 높였고, 누구나 사회속에서 보호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으며, 이러한 혜택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당당한 권리로 인정받을 수 있었고, 사람과 사람의 사이는 경쟁이 아닌 연대가 함께 했다.

국가의 역할은 국민을 통제해 국가 스스로의 권위를 높여 권력층의 권한을 넓히기 보다, 전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것에 그 큰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국가의 존속 이유를 그렇게 규정할 때 복지국가는 바로 민주주의의 보루이며, 선진적 사회 시스템임과 동시에 최종족으로 우리가 이루어야 할 고차원적 문명이라고 보여진다.

북유럽의 국가들은 2차세계대전 이후 그러한 선진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었으며, 복지 시스템 속의 북유럽 국민들은 행복감을 맛보았고, 인간으로서의 권위를 존중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공세가 시작되면서, 자본이 국가 경계를 넘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고, 사회적으로 당연한 권리였던 복지기금이 삭감되고, 공공 서비스들이 민영화 되고, 구조조정에 의해 국민의 권력이 체계적으로 약화되었다. 그 결과 북유럽의 국가 경제는 오늘날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복지국가가 약해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사회적 불평등이 만연하고, 그 격차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지고 있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경쟁 시스템 속에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노동의 강도는 더더욱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가족들이 필요로 하는 돈을 마련할 수 없는 워킹푸어가 된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빈자는 더더욱 빈자가 되는 사회가 신자유주의가 추종하는 사회의 모습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이 '평등'이라고 볼 때 신자유주의의 이념하에서는 결과적으로 '평등'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주장처럼 빈곤을 퇴치하고 사회적·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며, 모두가 다 살게 되는 복지시스템은 어떻게, 왜 붕괴되고 있는가. 그것은 '권력'의 이동과 관계가 있다. 보편적 복지 사회에서 권력은 국민, 노동자, 인민에게 있었다. 그러나 복지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경쟁과 성장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권력은 '자본'에 있다. 자본은 인간을 무너뜨리며 스스로 팽창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북반구(유럽과 북미 일본 등 선진국)의 복지국가는 남반구의 여러나라들을 착취함으로써 이룰 수 있었다는 점 또한 고백하고 있다. 서반구의 개발도상국들 중 빠른 시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내 OECD에 회원국이 된 우리나라 역시 과거 선진국에 의한 착취 대상국이었다. 때문에 우리의 역사 속에서 '복지국가'는 요원한 일이며, 한번도 도달하지 못한 미래이다. 더구나 신자유주의의 선봉에 선 미국을 추종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 복지란 빨갱이들이나 주장하는 잘못된 이념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의료서비스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4천만 내지 5천만이 의료 해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기관을 갖추고 있음에도 그 교육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를 위한 의료 서비스이고,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 우리나라가 진정 따라야 할 미래가 미국 사회라고 규정되어도 좋은 것일까.

노르웨이의 노동운동가이며, 복지국가운동가인 저자는 북유럽의 복지 시스템의 붕괴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며 잘못된 복지국가의 해석을 바로잡고자 이 책을 썼지만, 복지의 기본 이념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그조차도 무척이나 부럽게 생각되었다. 우리나라는 무상급식을 주장하고, 찬성하는 이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수준의 '미복지 국가' 혹은 '비복지 국가'이기 때문이다.

 

무상급식에 반감을 갖었던 사람들, 복지라는 글자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 복지를 구걸이나 수혜와 같은 의미로 여기는 사람들, 그리고 자칭 타칭 '우파', '꼴보수' 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싶다. 읽어도 비틀린 마음으로는 무슨말인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말이다.

보편적 복지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뤄내야 할 미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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