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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빙하기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양억관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사과는 꼭 빨갛기만 한걸까.
코끼리는 꼭 회색이어야 만 할까.
하늘을 빨갛게 칠한 이유는 노을 때문이라는 말을 사람들은 왜 믿지 못할까...
그것은 뿌리를 알 수 없는 저 깊은 고정관념 탓이다.
하늘은 때때로 빨갛기도 하지만 노랗기도 하고 푸르딩딩하기도 하다.
나비를 나비로 부르는 것은 우리 인간들 마음이지만 나비는 나비로 불리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 본질엔 변함이 없다.
자신을 보통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한 소년이 있다.
그 소년은 네살 무렵 자신에게 무등을 태워줄 아빠라는 존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뻥뚫린 가슴을 메우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 건.....
자신이 보통의 아이들과 다른 종류라는 걸 알게 된것도 그 무렵이다.
다르다는 것은 때때로 공포스럽다. 소외된 느낌이고 마치 불량품이 된듯한 느낌... 다같은 행렬에서 다르다는 것은 몹시 잘못된 느낌으로 각인된다. 그래서 우리는 기를 쓰고 같아지고자 한다. 소외되지 않기 위해...
엄마가 출근하고 없는 각진 방안에서 보통과 다른 종류의 와타루는 자신을 크로마뇽인의 아들이라고 믿었다. 어린 와타루의 고독과 외로움은 크로마뇽인 아빠를 상상하고 믿으며 채울 수 있었다. 크로마뇽인의 아들이기 때문에 자신은 특별할 수 밖에 없다는 믿음이 와타루를 고독속에서도 건강하게 했다. 그것은 어린 와타루가 본능적으로 자신을 살리고자 한 믿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믿지 않았다면 뚫린 어린 가슴을 채울 그 무엇도 없었기 때문에.
또 와타루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다른 와타루를 과잉행동장애아로 낙인 찍고 치료를 요할때 엄마는 와타루를 믿었다. 다만 조금 다를 뿐이라는 엄마의 확신이 와타루에게 따뜻한 언덕이 되어주었다.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은 일반적인 우리가 갖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양부모와 함께 사는 가정이 정상적이듯 편모 편부 가정도 정상적이다. 다르다고 해서 비정상은 아닌것이다.
어쩌면 아이는 태어나면서 부터 자기 몫의 삶을 지고 나온다. 와타루의 몫을 와타루가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성장했듯이.
엄마의 죽음 이후 와타루는 러시아에서 별로 다를 것 없는 평범하고 소시민적인 또는 배신감이 느껴지는 생부를 만난다.
특별할 것 같았던 생부의 모습은 그렇고 그런 통속적인 인물일 뿐이며 자신 또한 전혀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와타루는 성장했다.
내게만 있는 것 같은 고통... 모두가 행복한데 나만 불행하다는 느낌을 내려놓을 때.. 그 느낌은 가벼움일까. 허전함일까.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 되어 버린 와타루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