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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살인법
질리언 플린 지음, 문은실 옮김 / 바벨의도서관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관심을 얻으려고 자기 자신을 아프게 만드는 것.
자기가 얼마나 친절하고 맹목적으로 헌신하는 엄마인지 보여주려고 아이를 아프게 하는 것.
사랑받기 위해 아픈 사람들.
나는 아기 적 버림받은 기억이 있다. 정확히 그것은 기억이랄 수 없다. 외부로 부터 얻은 정보에 가까운 기억.
아기 적에 거절당하고 버림받았던 기억은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있다가 불현듯 어느 순간 내 숨을 턱 멎게 만들고 극도의 슬픔으로 내 정신을 마비시킨다.
내 아이도 아기일 적에 거절당한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문득문득 그 아이에게 나타나는 자신없음, 결과를 예측하느라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머뭇거림......... 내 아이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아이가 가장 약했던 순간에 가장 고약하게 굴었던 나의 모성........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받지 못한 것을 아이에게 줄 자신이 없었다.
한편으로 억울했다. 내가 받지 못한 것을 일방적으로 줘야한다는 억울함......
카밀은 분노나 자기혐오를 정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사랑받지 못한 내면의 고통을 자신의 피부를 찢으므로서 정화시킬 것이 아니라 자신을 탓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했다. 남을 탓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자신의 고통이 스스로 못난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사랑받지 못한 '병'임을 인식하고 치료해야 했다. 엄마를 기쁘게 하지 못한 자신을 향한 분노,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한 자신을 향한 비웃음.... 그리고 억울함....
앰마는 달랐다. 앰마는 사랑받지 못한 아픔을 혼자서 삭힌것이 아니라 적어도 사랑받기 위해 애썼다. 자신을 아프게 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자신이 아플때 온전히 쏟아지는 엄마의 사랑을 끝없이 갈구했다. 그 한없는 갈구를 누군가 위해할 때 앰마는 가차없이 처벌하는 잔인함도 놓치지 않았다. 앰마는 분노나 자기혐오 따위가 자신을 해치게 하지않았다. 그녀는 누군가를 괴롭히고, 해하고, 끝내는 사라지게 함으로 사랑을 갈구했다.
나는, 사랑받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내 피부를 해하지도 않았고, 분노나 자기혐오를 타인에게 투사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잔잔하고 싶었다. 내 속이야 곪아 터지던말던... 나는 착한 아이이고 싶었다. 나는 사랑받고 싶었다. 복종하고, 기분을 풀어주고 나를 좋아하게 만들려고 갖은 애를 썼다.
나 스스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인간임을 느끼고 싶었다. 가장 행복한 표정 가장 행복한 가면을 쓴 채로 내 가슴은 울고있었다. 사랑받지 못하여..................
우연히 읽게 된 이 소설..... 섬뜩하기까지 한 소설........
리처드처럼 화려하게 태어나고 길러졌을 것 같은 사람은 공감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저 여름밤에 스릴러 한 편쯤으로 기억할 지도 모르리라.
그들은 절박한게 없었으며,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기엔 갖은것이 너무 많을테니....
'사랑받는 사람보다 무서운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안전하다.' 어쩌자고 나는 무서운 사람도 되지 못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