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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부제는 '스시의 세계화로 배우는 글로벌 경제' 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스시는 20세기 후반에 돈, 권력, 사람 그리고 시대의 상호연결성을 규정짓는 문화의 흐름에 따라 발명된 요리라고 정의한다. 제트비행기 덕분에 부패하기 쉬운 상품들도 대양을 건널 수 있게 되었고, 먼 바다로 나간 어부들은 위성 전화로 어획량을 보고하고, 중개인은 재빨리 제3세계 국가들의 외딴 항만으로 자본을 유입시켜 주문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세상이 점점 좁아지면서 유리 진영장 안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의 폭은 점점 넓어지고 조건도 유리해진다.

 스시 전문점에서 식사하는 것은 빠른 속도로 발전해 나가는 지구촌 교역과 동떨어진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 참여하는 일이다. 간단히 말해서 세계화란, 오랜 세월에 걸쳐 일어났지만 20세기에 가속화된 무역을 통해 지역경제들이 통합하는 과정이며,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거래가 글로벌 자본주의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지만, 바다에서 스시 전문점으로 가는 참치의 여정만큼 세계화의 복잡한 역학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재미있는 것은 붉은 살 참치가 한 세대 전쯤만 해도 오직 애완동물 사료용 시장에만 나왔었고, 미국에서는 스포츠 낚시꾼들이 거대한 참치를 잡았을 때 박제하는 것 말고는 쓸데가 없는 그것을 처리하려면 쓰레기 처리장에 비용을 지불해야 했을 정도라는 점.

저자는 참치를 수입해 보겠다는 결심으로 캐나다의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일본으로 참치를 수송하기 위한 JAL의 눈물겨운 노력과, 근대의 스시가 탄생한 도시에 스시를 공급하는 동시에 전 세계에 공급되는 스시 가격과 예측 수량을 설정하는 곳인 일본 도쿄의 쓰키지 시장, 미국 LA와 텍사스 오스틴에까지 점령한 스시라는 요리의 행보와 새로운 스타일로 세계적인 거물이 된 '노부'의 성공 스토리, 미국 글로스터의 참치에 의존한 경제 생활, 호주의 양식장, 스페인의 참치 밀거래에 이르기까지 참치의 탄생과 현재의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 준다.

원래 스시는 동남아시아에서 유래된 저장법인, 소금 간을 한 밥과 함께 보관하는 생선을 뜻했다. 스시가 다시마, 마른 가다랑어, 두부를 넣은 된장국 등 몇 가지 중요한 재료들을 중심으로 한 전국적인 요리로 발전한 것은 8세기 부터. 후나즈시는 입을 통해 내장과 아가미를 들어낸 뒤 빈 곳에 소금을 채워둔 붕어를 밥과 함께 그릇 안에 여러 층으로 쌓은 뒤 뚜껑을 덮고 나서 돌로 눌러두고 10일에서 한 달 정도 삭힌 것. 16세기쯤에 사람들은 생선을 절이는 데 사용된 쌀밥을 먹기 시작. 이 눌린 생선밥은 고등어, 연어, 붉돔, 꽁치 같은 생선이 사용되었고, 상자에 포장된 이 생선밥이 '하코즈시'.

오늘날 전 세계인들이 '스시'로 알고 있는 것은 19세기 에도의 발명품. 초밥 덩어리에 해산물을 얹고 손으로 눌러 단순하게 만든 '에도마에 니기리'를 둘러싼 창조 신화는 여러 가지. 17세기에 전진 신도 사제였던 사람이 소금으로 보존 처리한 옛날 방식의 스시를 팔았지만, 손님들에게 나중에 발효되면다시 오라고 말하기가 넌더리난 나머지 스시를 만들 대 생선과 밥을 함께 붙여 판 것이 시초라는 설과, 1657년 에도의 대해여 화재 이후 다양한 재료를 얹은 주먹밥이 이재민을 위한 응급식량으로 제공되었다는 설 등.

에도마에 니기리를 사업화하여 성공한 최초의 사람은 요헤이 하나야. '하야즈시', '속성 스시'로 불리게 된 '니기리 하야쓰케'라는 과정을 개발해 내어 현장에서 즉시 스시를 만들어 손님에게 내주었다. 1858년 무렵에 스시는 배달 전문점이나 길거리 노점 어디에서도 사 먹을 수 있는 간식 거리가 되었고, 생긴 지 40~50년 만에 니기리 스시는 우동이나 소바보다 인기 있는 음식이 되었다. 길에서 먹는 노점 형태의 스시 매대가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둔 것. 1958년 컨베이어 벨트를 사용하여 그 위에 스시를 올려 놓고 회전하게 하여 손님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 번에 2개씩 집을 수 있도록 설계한 회전 스시, '가이텐즈시'를 발명한 사람은 시라이시 요시아키.

20세기 중반, 일본에 외국산 수산물들이 넘쳐나게 되면서 참치는 스시 재료의 제왕이 됨. 메이지 시대까지만 해도 최고급 스시 전문점은 청새치를 선호, 참치는 기름기 많은 고등어, 꽁치, 전어, 정어리 등과 함께 저급 생선으로 분류. 참치가 처음 스시 재료로 사용되었던 19세기 중반에는 일반적으로 참치를 간장에 절여서 사용. 사실 '도로'라는 용어는 1920년대 전까지만 해도 사용되지 않던 말. 그 전에는 기름지다는 뜻의 '아부'라는 이름으로 불림. 미 점령군이 일본에 들어온 이후 일본인들은 기름진 스테이크를 알게 되고, 그때부터 기름진 음식에 맛을 들이게 됨.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스시 전문점들은 '도로케루'의 준말이며 현재는 '도로'로 알려진 참치 뱃살 부위를 붉은 속살인 아카미 보다 더 위로 올려 놓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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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의 실용 외교 : 소 1만 마리 매매 요구 사건

    세종 14년 요동도사의 소 1만 마리 매매 요구. 태조에서 태종까지 명나라와의 신뢰 관계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 평소 중국 사신들의 지저분한 요구를 잘 들어 줌으로써 중국 사신들의 환심을 사서, 조선에 유리한 로비스트로 활용하는 한편, 한결같이 정성스런 사대 외교로 중국 황제의 마음을 움직여 사신들의 과도한 요구를 줄이고 소도 그간 준비된 양만 교역하는데 그치도록 함. 세종 중반기에 형성된 돈독한 조-명 관계는 세종 말년까지 지속, 일본 및 여진족과의 관계도 교린의 원칙에 따라 일관되게 유지.

- 세종의 북방 정책 : 온정행차와 파저강 토벌

  여진족들이 압록강변의 여연 지역을 약탈하자 여진족을 토벌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기만술과 정보 통제를 위해 온정행차를 감행. 세종의 지성 외교로 명나라의 묵인, 여진족에 대한 정보 수집, 조정 신료들의 설득, 여진족의 경계 태세 완화 등 산적한 문제를 해결한 방식은 숙의의 정치를 펴는 리더쉽과 고도의 기만책을 편 군사전략가의 면모를 보여줌.

- 세종의 지식 경영

  경연을 통해 말을 맡은 언관(시독관, 검토관), 일을 주관하는 정승, 그리고 말과 일을 함께 담당하는 승지가 참여, 말과 일을 엮어 냄. 숙의와 좋은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특유의 회의 방식 구사. 인재 등용에 있어서는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는 것, 공적으로 허물을 덮게 하는 방법 필요. 인재를 뛰어난 인재와 물리쳐야 할 인재로 분류. 그 외의 사람들은 모두 교화 대상. 정적을 등용해 나라의 저울추가 된 황희, 문벌과 신분 고하를 초월한 등용의 예인 최윤덕.

 지식경영 : 중요한 판단을 내리고 효과적인 정책을 수행하는 경세의 능력 및 경영 방침과 결정 내용을 구성원들이 권위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능력. 세종의 이러한 지식경영 능력은 싱크탱크인 집현전과 밀접한 관계. 인재를 모아서 기르고, 서적 수집과 보관, 편찬. 경연 등에서 국왕과 함께 학문적 토론을 하고 정책적 자문. 소를 뒤에서 모는 세종은 과제를 집현적 학사들에게 던져놓고 기다리는 스타일. 소를 앞에서 끄는 스타일의 정조는 자신이 저면에 나서서 규장각신이나 초계문신들을 가르침.

- 세종의 위민 정치 : 훈민정음 창제

  훈민정음이라는 비밀 프로젝트. 창제 동기는 민중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정책적 고려, 백성의 자의식이 성장한 결과, 언어/문자의 분리로 인한 사회 계층 분리를 극복하려는 의도 등 다양한 견해 존재. '백성들이 알지 못해 죄를 범하게 하면 안 됨, 백성들도 큰 죄의 조항만이라도 알아서 스스로 두려워 피하게 함이 좋겠다'는 것이 세종의 생각.

조선의 풍토와 조선 사람의 처지에 맞는 글이 필요하다는 세종의 자아준거적인 문명관, 사대부는 물론 일반 백성에게도 조선왕조 개창의 의미와 역사적 정통성을 널리 알리려는 의도, 고려왕조와 대비, 마상의 정치에서 문화의 정치로의 전환을 통해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의 결과 

- 세종의 개혁 방식 : 공법(貢法) 도입

  공법 도입을 위한 17년간의 긴 토론 과정. 전국적인 여론 조사, 관인들의 숙의 단계, 최종 논의와 지역별 실시 단계 등 3단계를 거쳐 실시. 숙의 정치와 공론 정치를 통한 개혁.

  이해가 대립되는 사안을 경정,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론 정치를 효과적으로 활용. 현재의 민감한 사항에도 적용 가능.  찬반 의향을 폭넓게 물어보는 수량적인 여론 조사 후, 선별된 식견을 가진 사람들의 실제적인 근거에 입각한 찬반 토론을 하는 질적인 공론 조사, 정치 세계의 우연성을 고려한 가운데 신중하고 책임 있는 국무위원들이 최종 결정 하는 방식

- 세종의 수성의 리더쉽

세종의 시대는 '창업-수성-경장-쇠퇴'라는 동양 사상의 체계순환론에서 두 번째의 守成의 단계로 혁명과 건국이라는 창업의 어수선한 시기를 지나 정치 및 사회 운영 메커니즘이 안정화되고 제도화되어가는 시기. 수성의 지도자는 조직에 자기 지속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지속석을 지니면서도 (守)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거듭하여 발전해가는 (成) 생명체와 같은 조직. 자기 지속적인 성장 시스템 구축 필요.

'권도(權道)의 정치' 에서 '경도(經道)의 정치로의 전환 : 하위 체계 간의 내적 일관성 유지, 내부적 긴장을 처리하는 방식의 세련화, 구성원들의 가치와 동기를 활성화 등을 통해 시스템에 의해 국가가 돌아가도록 해야 함. 제도화를 통해 누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조직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함. 인재를 기르고 고르게 사용. 가능한 한 이질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등용하여 국민 통합을 이루어내고 신민들의 뜻을 묶어내야 함. 정도를 지켜 국맥을 배양하고 그 세대를 영구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 사람을 뽑아 적합한 자리에 기용해 인재로 키우고, 적당한 일을 맡겨 능력을 길러야 함. 큰 일을 꾀하기 보다는 조종의 왕업을 안존 시키고 민심을 가라앉히는 중용의 리더쉽 필요.

세종의 리더쉽의 원천 : 초인적인 자기 통제력. 인재를 기르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리더쉽.숙의의 정책 결정 방식. 실용적 사대외교를 통한 국익의 확보.

'백성들의 평범한 생활을 위한 비범한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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