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이우일이 쓴 책 '콜렉터'의 소개글에 이런 말이 있더군. '일단 모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잘 나가는 CD가 읽은 책들을 모은 책이 나오더니, 이제는 자기들끼리 회의한 것을 적어 놓은 회의록까지 책으로 내놓다니... 그래 올해 피티도 많이 줄었던데, 다들 한가했구나. 그랬구나.... 부러움 반, 질투 반의 반, 걱정 반의 반....  

 잘 된 광고를 보면 저 광고 기획서는 도대체 어떻게 썼을까 하며 수소문해서 찾아 보던 것도 이젠 옛말. 요즘은 무슨 광고가 새로 온에어 됐는지도 제대로 못 챙기는 지경이지만. 그래도 기획서도 아니고 무려 회의록이라는데, 안 볼 수가 있나.  

아, 역시 광고계의 전설 박웅현 CD팀의 회의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짧으면 2주, 길면 3개월에 걸친 피티 기간을 저렇게 요약해서 정리해 놓으니, 그동안의 핍박과 분노와 피말리는 빡센 추억은 증발되고 모두들 연극같은 멋진 대사를 치면서 농업적 근면에 밤을 불사르는 정의의 용사들로 분해 있다(또 한 번 배아픈 건 그게 사실이라-고 짐작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감동적인 건 적절할 때 적절한 컨셉과 적절한 카피를 수줍게 내미시는 팀장님(AE나 사장님은 그동안 똥줄 좀 탔을 거고). 그래 역시 그들은 광고계의 행운아들이 맞다. 하지만 나는 안다. 곳곳에서 나오는 '팀장님의 얼굴이 어두워 졌다'라는 문장들이 내포하는 그 많은 의미들을. 팀원들이 겪었을 그 고통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광고 발상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교실은 회의실이다'라는 박웅현 CD의 말은 옳고 옳고 옳다. 백날 남이 만든 광고에 남이 쓴 기획서를 들여다 본들, 그런 광고를 만들 수는 없다. 흉내는 낼 수 있겠지.  

그래 흉내라도 낼 수 있으려면 그들의 회의 원칙이라도 적어 두자.  

1. 회의에 지각은 없다. 10시 3분은 10시가 아니다.   --> 처음엔 무슨 말인가 한참 생각했다. 결국 늦게 오면 죽는다는 것. 늦게 온 사람을 위해 한 얘기를 다시 하는 것만큼 기운 빠지고 회의를 늘어지게 하는 건 없다. 그렇다고 늦게 온 사람에게 그냥 알아서 따라오라고 하면 나중에 꼭 딴 소리해서 또 기운 빠지게 한다.

2. 아이디어 없이 들어오는 것은 무죄. 맑은 머리 없이 들어오는 것은 유죄. --> 하지만 아이디어 없이 맑은 머리로 들어갈 수 있을까.... 맑은 머리만큼 중요한 게 책 중간에도 나오지만, 팀원들의 고른 레벨. 아, 하면 딱 알아들을 수 있어서 사례와 개념을 설명하느라 시간 다 보내지 않게 만드는....

3. 마음을 활짝 열 것. 인턴의 아이디어에도 가능성의 씨앗은 숨어 있다.   --> 그래 똑똑한 막내를 많이 두자.... 20년 내공은 멋진 카피를 구술할 수도 있지만, 어중간한 5년~10년차들은 괜히 겉멋만 들어서 고집 많고, 덜 반짝거릴 수 있다. 아이디어에서 가능성의 씨앗을 발견해 내고, 혹은 뒤돌아와서 찾아낼 수 있는 건 팀장의 필수 능력.

4. 말을 많이 할 것. 비판과 논쟁과 토론만이 회의를 회의답게 만든다.   --> 자기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남의 얘기, 남의 아이디어에 대해 많이 얘기해야 한다. 살이 붙는... IDEO의 회의에 'but'은 금물이라지 않나... 하지만 회의하러 와서 리뷰만 하려는 분들... 아예 들어오지 마세요.

5. 회의실의 모두는 평등하다. 누가 말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말했느냐의 문제다.  --> 가장 어려운 부분. '직급이 깡패'라는 법칙을 깰 수만 있다면, 그 회의는 무조건 성공이다.  

6. 아무리 긴 회의도 한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 찔리는 기획팀장, CD들 많을 듯. 마른 수건 쥐어 짜듯 몇시간씩 붙잡아 둔다고 아이디어가 나오지는 않는다.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는 것일 뿐. 다만 훈육/벌로써의 효과는 상당하다. 부작용은 팀원의 이탈과 뒷담화.

7. 회의실에서 나갈 땐 할 일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이것은 다음 회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 회의을 위한 회의, 준비 없는 회의를 하는 사람들에게 회의는 매번 새로운 시작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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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1-12-03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콜렉터도 읽으신거에요? 전 관심도서에만 찜.ㅎㅎ
어쨌든 이 책은 관심 없었는데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관련분야와 상관 없더라도 말이지요.

hanci 2011-12-05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콜렉터는 저도 찜한 리스트에만 ^^ 광고일 하는 사람들의 실상을 알 수 있죠. 그래도 많이 미화되긴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