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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평점 :
몰입도 90%
하진의 광인을 보고 이어서 보게 된 중국 소설 혹은 중국인 망명자의 소설. 배경은 문화대혁명 시기의 산골 마을. 재교육을 위해 이 곳에 보내진 두 주인공이 발자크 등 금지된 서양 소설들을 읽으며 사랑에 눈 뜨고 또 다른 세상에 눈 뜨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어둡고 암울한 시기에 집에 다시 돌아갈 확률은 3퍼밀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산골 마을에 도착하면서부터 벌어지는 일들은 마치 찰리 채플린의 영화나 김유정의 소설을 보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준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 상황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미안하게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오직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는 애국주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운동만이 존재하던 시절. 읽을 거리라고는 마오쩌둥의 어록밖에 없던 시대에, 그들은 용기, 기사도, 사랑, 로망 같은 서구의 금지된 신세계를 접한다. 그리고 그러한 신세계의 존재-그것이 실재하든 안하든 간에-에 대한 깨달음은, 그들의 마돈나인 바느질하는 소녀로 하여금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을 만큼 소중한 보물이라는, 이데올로기의 무게를 가뿐히 넘어서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깨닫게 만든다.
광인의 주인공이 미칠 것 같은 현실의 벽을 넘기 위해 국경을 넘기로 결심하는 것처럼, 우리의 소녀는 세상과 단절된 산골 마을을 떠나 도시로 향한다. 그 혹은 그들의 희망대로 그녀는 눈을 뜬 것. 사랑에, 그리고 -바라진 않았지만- 세상에. 남겨진 이 두 남자만이 슬퍼할 뿐이다.
그리고 작가의 말처럼, 이제는 책이 누군가의 눈을 뜨게 하는 시대는 지난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