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해피 데이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하하. 오랜만에 배실배실 웃음이 새어나오는 좋은 책을 읽었다. 역시 오쿠다 히데오. 그의 책이 늘 그렇듯 내용은 둥실둥실 떠다니듯 참 가볍다. 그렇다고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가족이라는 주제는 자칫 무거워지기 쉬운 소재이다. 생각해보면 가족은 절대 무거워서도, 진중하기만 해서도 안되는 가깝고 친근한 존재여야 할진데, 어째서 지금까지 가족을 주제로 다룬 대부분의 책들은 읽고나면 마음에 돌 하나씩을 얹어놓았을까.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멀기만 한 아버지의 모습, 어머니의 무한한 희생, 하나둘 떠나가는 무관심한 자녀들.

오 해피데이 속의 가족들에게 이런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중년 아줌마로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고, 또 누군가는 실직한 가장의 모습으로 예정에 없던 가정주부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아내의 혹은 남편의 이러저러한 모습 때문에 불평불만을 갖고 탈출구로 영업사원과 일탈을 꿈꾸거나 그 모습을 소설 속에 비꼬듯 고스란히 담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유쾌했다. 절대 이런 문제로 가정불화를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누구나 생활 속의 조그마한 일탈은 꿈꾸는 법. 그럼에도 그들은 사소한 일탈에도 가족에게 뭔가 미안해서, 고마워서, 그리고 가족을 사랑해서 슬그머니 아무도 모르게 불만을 주머니 속으로 넣어버린다. 그 모습들이 재미있으면서도 가족을 대하는 지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봤던 에피소드는 실직 가장이 나오는 <여기가 청산>이다. 주인공 유스케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14년 동안 다닌 회사가 망해버려 퇴직금 한 푼 받지 못한채 실업자가 된다. 다행히 아내가 젊은 시절 다니던 직장에 다시 취업하게 되어,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집안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왠걸. 집안일이 너무나 재미있다! 30대 중반에 자신의 적성을 찾아버린 것이다. 다른 회사의 취업 제의가 들어왔으나, 마음은 여전히 내일 아들의 도시락 반찬은 뭘로 할까, 저녁 반찬은 뭘로 할까에만 집중해 있다. 그에게 청산은 직장이 아닌 가정이었다. 현대사회에는 분명 성역할이 바뀐 채 살아가는 가정이 꽤나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다. 그래도 문제는 없다. 유스케의 가족은 지금에야 부부에게 딱 맞는 가정환경을 만들어냈다. 가정이 행복하다면, 사회의 시선쯤 가뿐히 제끼는 유스케의 가족이 부럽다.

이 책을 읽고나니, 아아. 아직 나오려면 멀었을텐데, 오쿠다 히데오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개인적으로 다음 번 책에 <아내와 현미밥>에서 나온 단편소설 <아내와 현미밥>이 실린다면 어떨까하는 재미있는 상상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시 찾은 꽃목걸이
소말리 맘 지음, 정아름 옮김 / 퍼플레인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있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말 속에 맺혀있는 무게는 묵직하다.
소말리 맘은 대한민국이라면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을 겪으며 성장했다.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직 피지도 못한 어린 나이에 그런 일들을 겪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삶을 포기하거나, 회복될 수 없을만큼 망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소말리 맘은 강했다.
매를 맞으면서도 울지 않았고, 오히려 주인을 쏘아볼 정도의 강인함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어쩌면 운이 좋게도 외국인들과 함께 할 기회를 얻었고,
지옥같은 그 곳에서 벗어남은 물론이자 같은 처지에 있는 어린 소녀들을 구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캄보디아의 매춘을 근절하기 위한 NGO단체 '아페십'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동남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서 돈이 없어 딸을 매춘업소에 판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비단 동남아시아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캄보디아의 문제는 그저 '어린아이가 매춘한다' 정도로는 설명하기 힘든
잔혹함과 끔찍함이 숨어있다.
소말리의 삶에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 나라에서 여성의 존재는 남자에게 무조건 복종해야한다.
그것이 부모든 남편이든 전혀 모르는 남자든.
소말리 맘은 가는 곳마다 성적인 학대를 당했고,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전혀 없었다.
자신을 친자식처럼 돌봐줄 양부모를 만났지만, 양부모 역시 도울 수 있는 힘은 없었다.
외부에서 누군가 힘을 보태지 않는다면 캄보디아의 잔인한 매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때로 한국의 중년층들이 무리를 지어 동남아시아로 골프 원정을 떠난다는 뉴스를 보게된다.
하지만, 숨어있는 그들의 진짜 목적은 골프가 아니라는 걸, 다 큰 뒤에 알게 되었다.
동남아시아 매춘 여성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한국의 남자들은 유독 잔인하고, 엽기적인 성관계를 요구한다고 한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나영이 사건'이 비단 그 범인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진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나영이'가 소중하듯이 그들의 아이들도 소중한 존재로 태어나긴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한국에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원정 매춘을 근절하고, 남성우위의 성적인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나중에 시간이 흘렀을 때, 캄보디아를 비롯한 외국의 수 많은 어린 소녀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 완결 편
이케다 가요코 지음, 한성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전 세계의 인구는 이미 65억을 넘어섰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솔직히 이게 어느 정도 되는건지 감도 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빈곤으로 죽는 사람이 3초에 한명, 1달러 미만으로 사는 사람이 10억명 이상, 이런 소릴 들어도 별 생각이 없나보다.

하지만 세계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우리가 평소 만나는 사람이 그 정도쯤 된다고 생각했을 때, 이 수는 피부로 절절하게 다가온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너무 감명받아서 친구에게 생일선물로 주기도 했었다.

이런 생각을 해냈다는 게 참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처음에는 충격, 충격, 충격.

예를 들면 이런 문장

"20명은 영양실조이고 1명은 굶어죽기 직전인데 15명은 비만" 이 문장은 빈곤이 무엇인지 처음 알게 해 주었다.

"모든 에너지 중 80%를 20명이 사용하고 20%를 80명이 나눠 사용" 아마도 이 문장을 통해서 2:8법칙을 처음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는 참 오랫동안 나 이외의 다른 것들에 대해서 잊고 지냈는데,

몇 년 전부터 자꾸 내 가슴을 두드리는 일들을 경험하고 있다.

빈곤과 매일 맞부딪치며 살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직접 만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고.

직업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하지만, 내가 달콤한 만족과 감상에 빠져있지 않도록 항상 경계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보다 나은 상황에 있는 이유는 지구가 공평하게 나눠야 할 것을 과도하게 가졌기에 앞으로 다른 이들에게 나누라는 뜻이므로.

 

이번에 읽은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 완결 편>은 처음 보았던 것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 안에 쓰인 숫자들도 조금씩 달라져 있었고,

실제 100명을 동일하게 축복받은 사람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의 노력도 함께 수록되어 있었다.

2015년에 전 세계가 함께 이뤄내야할 밀레니엄계획에 대한 내용도 나와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용과 숫자가 바뀌었어도 이 책 한권만으로도 충분히 현상황을 파악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책은 겨우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좀 더 조숙하다면 초등학생도) 읽고 내용을 이해할만큼 쉽다!

그래서 권하는 바이니, 우리 국민 모두가 이 책을 읽고 다른 사람, 특히 빈곤국가에 사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해
펄 벅 지음, 정연희 옮김 / 길산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그녀는 늘 그랬다.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동양 여성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당시에는 참 드물게도 동양문화에 편견을 갖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글로 담아내었다.

아마도 그녀 자신이 동양문화권에서 자라난 탓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영향이 분명히 크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펄벅의 소설로 가장 잘 알려진 소설은 <대지>이다.

<여인 서태후> 역시 널리 읽혀진 소설 중 하나이지만, 사실 난 펄벅의 소설을 거의 접하지 못했다.

고작해야 어렸을 때 <대지>를 읽다, 분량에 지쳐 중간에 그만둔 게 전부이다.

이번에 읽은 <새해>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내용은 복잡하지 않다.

주인공인 스티브는 전도유망한 정치가로 주지사 선거에 뛰어들었다. 당선이 거의 확실할만큼 대중적인 지지도도 높았다.

또한 그에게는 뛰어난 미모와 학식을 갖춘 아내 로라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자식은 없다.

그러던 어느날 스티브를 '미국인 아버지'라 부르는 한국소년에게 편지가 온다.

아이는 스티브가 한국전쟁에 파견되었을 당시 수니야라는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혼혈아이다.

스티브는 고민에 휩싸이지만, 그의 아내 로라는 홀로 한국으로 떠나고 갈등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크리스토퍼를 미국으로 데려온다.

선거를 앞둔 스티브는 미국에 온 아이를 차가운 태도로 대하고, 로라와도 갈등을 빚게된다.

하지만 자신과 꼭 닮은 아이를 결국 자신의 자녀로 받아들이며, 셋은 함께 새해를 맞이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

주요 내용은 전쟁으로 인한 혼혈아들의 비애와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데서 오는 문화적 소외감이었지만,

나는 그보다 로라의 태도에 집중해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어머니를 말하는 책이다.

자녀를 낳고 키웠지만, 아버지와 너무나도 닮은 모습에 때로 자식을 미워하는 수니야의 모습은 낯설지만 시대적 배경을 생각했을 때, 이해가 되었다.

크리스토퍼를 낳진 않았지만 귀엽고 영특한 아이를 보며 조심스레 엄마를 꿈꾸는 로라의 모습은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로라의 모습은 점점 다양화되는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진정한 어머니상은 아닐지 생각하게 되었다.

로라를 통해 다른 책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어머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가족이 갖는 의미, 가족과 명예 사이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깊게 고려하는 시간이 되었다.

 

배경이 대체적으로 한국을 가리키고 있어서인지, 친근한 느낌도 많이 들었고, 한국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도 간혹 들었다.

펄벅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으볼 만 하고,

펄벅의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두꺼운 대지를 읽기전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볼 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퍼즐 - 권지예 소설
권지예 지음 / 민음사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권지예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본다. 그래서 오히려 책의 모든 내용들과 이야기의 얼개들이 일견 충격적이면서 신선함이 있었던 듯 하다. 단편집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책의 스토리를 줄줄이 나열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지만, 모든 소설마다 여자에 대한, 그것도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중년 여성들의 삶과 고뇌가 적잖이 녹아있어, 책을 읽는 내내 여자로서의 내 삶도 생각해 본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하나의 일관된 핵심을 갖고 접근하다보니 단편모음집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여기저기 섞여있는 옴니버스식 구성의 장편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조금도 우스웠거나, 짜릿한 느낌을 가진 적은 없었다. 오히려 약간의 찝찝함과 답답함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를 힘겹게했다. 때론 한숨으로 책장을 넘기고, 탄식이 절로 나오기도 했다. 아직 30대의 삶을 살아보지 않은 나로써는 이 시대의 여성들이 느낄 현실과 이상의 차이 앞에서 어떤 무게가 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혹여 모든 대한민국의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이런 모습일까...하고 생각하는 순간 약간의 섬뜩함도 느낄 수 있었다. 각 단편의 모든 주인공은 여성이고, 주인공 모두는 현실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고 그 탈출구로 때론 죽음을 또 때론 도피를 선택하기도 한다. 뭔가 비현실적인 상황 앞에서 좌절하기도 하고, 갑자기 삶이 무의미해진 것처럼 공허함을 느끼기도 한다. 한마디로 사정없이 무겁게 내리누른다.

 
앞으로 권지예의 또 다른 소설을 읽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즐겨읽을 듯 하지는 않다. 책의 맨 뒤, 작품 해설의 글을 보면 이런 글귀가 나와있다. "여성으로서의 글쓰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권지예는 지독하다." 하지만, 권지예가 바라보는 여성상이 이 세상 모든 여성상을 대변할 수 없기에 그녀와 작품은 지독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녀의 작품을 꾸준히 읽을만큼 지독해지지는 못할 것 같다. 그게 이 책을 읽은 후 나의 아쉬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