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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펄 벅 지음, 정연희 옮김 / 길산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그녀는 늘 그랬다.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동양 여성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당시에는 참 드물게도 동양문화에 편견을 갖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글로 담아내었다.
아마도 그녀 자신이 동양문화권에서 자라난 탓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영향이 분명히 크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펄벅의 소설로 가장 잘 알려진 소설은 <대지>이다.
<여인 서태후> 역시 널리 읽혀진 소설 중 하나이지만, 사실 난 펄벅의 소설을 거의 접하지 못했다.
고작해야 어렸을 때 <대지>를 읽다, 분량에 지쳐 중간에 그만둔 게 전부이다.
이번에 읽은 <새해>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내용은 복잡하지 않다.
주인공인 스티브는 전도유망한 정치가로 주지사 선거에 뛰어들었다. 당선이 거의 확실할만큼 대중적인 지지도도 높았다.
또한 그에게는 뛰어난 미모와 학식을 갖춘 아내 로라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자식은 없다.
그러던 어느날 스티브를 '미국인 아버지'라 부르는 한국소년에게 편지가 온다.
아이는 스티브가 한국전쟁에 파견되었을 당시 수니야라는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혼혈아이다.
스티브는 고민에 휩싸이지만, 그의 아내 로라는 홀로 한국으로 떠나고 갈등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크리스토퍼를 미국으로 데려온다.
선거를 앞둔 스티브는 미국에 온 아이를 차가운 태도로 대하고, 로라와도 갈등을 빚게된다.
하지만 자신과 꼭 닮은 아이를 결국 자신의 자녀로 받아들이며, 셋은 함께 새해를 맞이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
주요 내용은 전쟁으로 인한 혼혈아들의 비애와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데서 오는 문화적 소외감이었지만,
나는 그보다 로라의 태도에 집중해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어머니를 말하는 책이다.
자녀를 낳고 키웠지만, 아버지와 너무나도 닮은 모습에 때로 자식을 미워하는 수니야의 모습은 낯설지만 시대적 배경을 생각했을 때, 이해가 되었다.
크리스토퍼를 낳진 않았지만 귀엽고 영특한 아이를 보며 조심스레 엄마를 꿈꾸는 로라의 모습은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로라의 모습은 점점 다양화되는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진정한 어머니상은 아닐지 생각하게 되었다.
로라를 통해 다른 책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어머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가족이 갖는 의미, 가족과 명예 사이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깊게 고려하는 시간이 되었다.
배경이 대체적으로 한국을 가리키고 있어서인지, 친근한 느낌도 많이 들었고, 한국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도 간혹 들었다.
펄벅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으볼 만 하고,
펄벅의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두꺼운 대지를 읽기전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볼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