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여인의 선물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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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펜을 놓지 않고 마침내 완성한 이야기들이 작가의 의지대로 토시하나 바뀌지 않고 유작이라는 이름을 걸고 세상에 나왔다.

“그 무엇도 건드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이 짧은 메모의 이유가 궁금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바다 여인의 선물> (데니스 존슨 지음 / 다산책방 출판)을 읽는 내내 생각해보았다. 솔직히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다섯개의 이야기는 주도면밀하게 하나의 길로 향하게 적확하게 나아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소 산만하게 보일 수도 있는, 각자의 삶의 한 부분을 칼이나 가위가 아닌 손으로 움켜쥐어 뜯어놓은 듯하다.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죽음 또는 죽음과 마찬가지인 인생의 내리막의 끝자락에 도달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정도다.

계속해서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물음표를 뒤로 하고 끝까지 읽고 책을 덮었을 때 죽음과 파멸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음에도 뭐랄까 부(-)의 감정에 휩쓸려있지 않았다. 누구보다 죽음에 임박한 이들의 이야기임에도 그런 감정들에 침체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상황을 평가하거나 감정이입하지 않는 문장 때문이었다.

유려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작가는 주로 두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자신의 대리인을 세워 인물들을 세심히 관찰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평가해서 글의 주제를 독자들이 쉽고 감동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작가와 세밀한 부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묘사를 하지만 그 어떤 코멘트도 달지 않고 그저 제시만 해주는, 그리하여 독자들마다 감상평과 해석이 천차만별일 가능성이 높은 작가. 쉽게 나누면 주관적과 객관적정도로 표현할 수 있으려나.

<바다 여인의 선물>은 후자에 속하는 글이다.
현재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행동, 대사를 그대로 옮겨놓을 뿐 어느 누구의 평가도 없다. 심지어 인물 스스로도 반복된 마약성분 디톡스, 환각상태, 알콜중독과 같은 상황이라 자신의 처지를 판단할 수 없다. 그저 자신의 그 순간을 나열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나열들은 그들의 삶이다.

누군가의 삶 그 자체를 다른 누군가가 멋대로 입맛에 맞게 편집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게 깔끔하게 편집된 삶은 과연 멋진 삶일까. 병으로 죽음을 앞둔 작가가 말그대로 마지막 불꽃을 태워 담아낸 삶과 죽음에 대한 이 짧은 이야기 하나하나가 작가가 남기고픈 그의 삶이 담겨있는 알레고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픈 말이 정확히 존재하기에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 놓은 알레고리가 훼손되어 사람들에게 오역되는 것을 염려한 것이 아닐까.

죽음에 임박해도 삶은 계속된다. 삶의 모든 순간이 또렷한 것만은 아니다. 고통으로 얼룩질 수도 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내리막의 순간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 속 인물들의 태도는 그냥 평범하다.
그냥 그 순간을 읊조린다. 그런 태도가 죽음과 끝에 대해 읽는 이도 덤덤하게 만든다.

제목에도 담겨있듯 누군가 바라는 것 없이 쥐어준 선물같은 삶에서 죽음이든, 실패든, 허무든 아둥바둥 거릴 필요없지 않은가 라는 초연함이 느껴졌다.

살아있는 것들 옆에 해골을 두어 죽음을 디루었던 바니타스 정물화도 을씨년 스럽다기 보다 죽음을 초연하게 바라보고 비로소 죽음에 대해 조금 더 편안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

위대한 작가의 마지막 글에서 그런 바니타스 정물화가 보였다.
이 책은 글로 그려낸 바니타스 정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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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장 밝은 밤에 헤어졌다 - 도스토옙스키 단편 백야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윌마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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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밤이 되어도 여명으로 여전히 밝은 시간.
흔히 밤과 새벽은 감성적이 된다고 한다. 밤에 쓴 글을 아침에 읽으면 이불킥을 하게된다나.
그렇다면 백야 때 사람들의 감성은 어떨까. 밤의 그것일까 낮의 그것일까.

#우리는가장밝은밤에헤어졌다 #백야 (#표도르도스토옙스키 지음 #윌마 출판)은 스물 여섯의 남자 주인공이 ‘나스텐카’를 만나 며칠동안 열병같은 사랑을 앓는 이야기다. 상대적으로 쉽지않는 남자의 사랑. 그것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나에게는 이 사랑의 시작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명확하게 보였다.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그녀의 사랑을 돕기위해 자신의 마음은 숨기고 가장 친한 ‘사랑스러운’친구로 관계를 시작하는 것. 여기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그 씁쓸함은 그것 때문에 넘기는 동성 친구와 부딪히는 소주잔의 소주보다 씁쓸하다는 것을 이미 나는(우리는)알고 있다.

그런 자신의 진실된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는 것도 공감이 간다. 비겁한 변명일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은 알지만 이런 관계로라도 그 사람 곁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 너무나 잘 안다. <백야>에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있다면 ‘나’가 진짜 마음을 나스텐카에게 털어놓고 난 이후의 이야기였다.
1년 뒤에 만나러 오겠다던 정인이 이곳으로 돌아오고 며칠이 지나도 나타나지도, 편지로 연락도 주지 않아 실연의 상처를 절감하고 있는 나스텐카에게 진짜 마음을 고백한 ‘나’에게 이제 당신을 사랑하겠노라 말하는 나스텐카의 목소리가 얼마나 아름답게 들렸을까.
이렇게 초심자의 행운처럼 해피엔딩을 바랬지만 역시나 소설에서도 사랑에서 이런 결말을 쉽게 따라주지 않는다.

매일 만나던 밤이 아니라 드디어 내일 ‘아침’을 약속한 순간 나스텐카의 정인은 거짓말처럼 그 둘 앞에 나타났고 그녀는 나의 품에서 벗어나 그에게 뛰어든다.
완벽한 추락을 위해 더 높은 곳으로 올리는 잔인한 클리셰. 소설에 대해 고민하던 이십대의 젋은 대문호는 극적인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극적인 장치로 사랑을 고른 것일까.

기어코 밝아온 아침.
그의 일상은 고요하다. 모든 것이 바뀌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없는 고요한 일상. 그 일상을 깨는 것은 결혼소식을 알리는 나스텐카의 영원한 사랑이라는 이름의 우정을 바라는 편지이다. 화가 날 법도 하지만 ‘나’의 태도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어딘가에서 러시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소녀의 표정을 띄고 품에 <백야>를 소중히 안고 있던 옆자리 승객 이야기를 듣고나서 그때 처음 <백야>를 읽어보았었다.

아마 이십대 후반 즈음이었을까. 책을 덮었을 때는 왜 이 책을 그토록 사랑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강산이 변할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백야>는 첫사랑의 풋풋함, 사랑의 간질간질함은 물론 진정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는 단단한 마음이 보였다.

이 책이 170여년이 지나 젊은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혼자 지내다 잿빛 세상을 총천연색으로 물들이는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을 그들의 퍽퍽한 삶에서도 바라는 것인지, 그런 단단한 마음을 갖고 싶은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어떤 상황 속에 있더라도 갖고 싶은 이상향을 발견할 수 있을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도 등장인물도 독자도 모두 이십대인 책이니 분명 통하는게 있겠지.

청년물이 이제는 조금 낯간지러운 아저씨에게도 어떤 개운한 뒷맛을 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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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나를 자유롭게 할 거야 - 벽을 깨고 스스로 빛이 된 예술가
이소영 지음 / 블랙피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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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뱉어내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고싶어하는지, 누구보다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하는 본인임에도 그렇지 못하고 대면대면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종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보면 쉴 시간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당장 해결해야 할 일들이 눈 앞에 끝도없이 펼쳐져 있는데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궁상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도 잘 모르겠고 말이다.

나의 존재의의를 찾고 스스로를 믿고 흔들리지 않으며, 자기의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일은 그렇게 살아온 누군가의 삶을 따라 걸어보는 것이다.

#그림이나를자유롭게할거야 (#이소영 씀 #블랙피쉬 출판)은 아트 컬렉터이자 미술 에세이스트인 저자가 사랑하는 20명의 여성 예술가들을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미대출신이면 왜 그림을 그리지 않고 전시회를 하지않느냐’ 이런 질문들을 숱하게 들어왔지만 저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아픈 손가락같은 질문일 수 있지만 이 책으로 그 질문의 답을 갈음하고 있다.
그녀에게 예술 도구는 붓과 정이 아니라 펜이었고, 어떤 독특하고 특정한 색과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글로 만들어냈다. 그녀에게는 글을 쓰는 것, 세상에 존재하는 예술들을 글이라는 언어로 치환하는 것이 예술 그 자체였다. 이렇게 자신의 일과 삶을 확언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누가 뭐라하던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나간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있어야 하니까. 그런 그녀에게 닮고 싶고, 원동력이 되어 준 예술가들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예술계에서 버텨내고 여성들의 연대를 이끌어내기도 하고, 늦은 나이에 미술을 시작해 이제서야 눈부신 빛을 내고 있기도 하고, 역사상 최다 관람객을 달성하기도 하며, 유명한 남성에 업적이 가려졌으나 기어코 재발견 되기도 한다.

우리 나라의 김윤신, 나혜석은 물론, 힐마 아프 클린트, 프리다 칼로, 토베 얀손, 말로모스 등의 인생의 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180여점의 작품과 함께 그녀들의 이야기를 보다보면 눈의 즐거움은 물론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꽉 움켜쥐어져있어 빈틈 없던 마음에 한줄기 따스한 바람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 따스한 바람은 큰 변화를 지금 당장 불러일으키지는 못할 수 있지만, 무한한 가능성의 시작이 된다.
애그니스 펠턴의 <원초의 날개>를 보며 확장된 상상의 영역으로, 영적인 영역으로 깊게 가라앉아도 보고, 자신이 사랑한 거장들을 자신만의 알고리즘을 통과시켜 탄생시킨 베라 몰나르의 <잃어버린 클레를 찾아서>, <모네에게 바치는 헌사>와 같은 작품을 보며 세상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과 법칙을 세우는 것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그와 동시에 조안 스나이더의 <고통과 기쁨의 교향곡>을 보며 음악에 기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앞으로의 과정에도 고통과 기쁨이 함께 존재하며 서로를 비추는 그런 순간들이 지속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각오를 다지게도 한다.

그런 기쁨과 고통, 자신만의 법칙과 언어로 세상의 벽을 허물고 자신만의 세상을 기어코 만들어낸 이들의 작품과 그것들이 재탄생된 글들은 조금씩 읽는 우리를 재구성시킨다. 누구에게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무언가를 자신이 직접 관철시키고 싶다는 희망과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의 원동력도, 결과도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 확신과 사랑 가득한 흔들림 없는 단단한 삶.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걸아갔던 길이라고.
그러니 마음껏 꿈꾸라며 이끄는 단단하고 따스한 손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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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불안을 다루는 법 - 에피쿠로스에게 배우는 덜 두렵고 더 단단한 삶
김용하 지음 / 헤이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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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물음표로 머리 속이 복잡할 때 잠시 멈출 수 이있게 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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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불안을 다루는 법 - 에피쿠로스에게 배우는 덜 두렵고 더 단단한 삶
김용하 지음 / 헤이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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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쭙잖은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외웠던) 에피쿠로스는 쾌락이었다. 이것 말고는 자세한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으니, 쾌락이라는 단어가 주는 가벼움과 죄짓는듯한 기분 때문에 부정적으로 머리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서른의 불안을 다루는 법> (김용하 지음 / 헤이북스 출판)에서 말하는 에피쿠로스의 쾌락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자극의 쾌락이 아닌 고통과 불안이 줄어든 삶, 두려움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평온한 삶을 말하는 것이었다.

사회에 뛰어들어 뿌리내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삼십 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 얻은 하루하루이건만 매일 드는 의문은 ’이대로 괜찮은가?’이다.
오늘만 괴로우면 그나마 다행인데 당장 내일이, 앞으로도 괜찮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 깊이 흔들린다. 불안한 것이다.

두려움, 불안을 우리는 왜 안고 살아가는 것일까?
행복하기 위해서? 행복은 무엇일까 성공하는 것일까?
결국 성공을 위해서 두려움을 안고 산다는 말일까?

수많은 물음표에 시원한 정답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를 불안해하지 않는 쾌락으로 인생의 방향을 수정할 수 있도록 잠깐 멈춰 숨을 고를 시간을 준다.

불안을 해체하고, 끝도 없이 솟아오르는 욕망을 정리하고 경쟁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인간관계에서 내 편, 협력, 신뢰를 발견해 불안을 줄여나가는 이야기를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당연하듯 내 안에 정립되어 있던 불안, 행복, 성공, 쾌락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은 우리 각자가 살아온 인생을 다시 돌아보는 것과 같다.
어느 정도 자라고 나서부터 우리는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쉬는 것은 약하고 도태되는 것이라 배웠고, 일단 좋은 성과를 내고 경쟁해서 이기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랬더니 결국 지금의 나는 무엇 때문인지도 정확하게 모르는 불안 덩어리가 되었다. 잘못된 길로 계속 가서는 안 된다. 멈추어야 한다. 정확한 목적지를 찾고 다시 출발해도 늦지 않다.

멈춰 숨을 고르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여유를 주는 푹신하고 몸에 딱 맞는 소파 같은 책이다.
책을 덮고도 좀 더 머무르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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