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비룡소 클래식 21
루머 고든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조안나 자미에슨.캐롤 바커 그림 / 비룡소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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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재료, 다양한 모습 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 인형의 세계. 그 인형의 세계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닮았다. 피부색도, 생김새도 입은 옷도. 수십억명이 살아가지만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유일함. 그것은 어떤 사람이라도 모두 귀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보기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은 학습하지 않아도 아기때부터 본능적으로 느낀다. 이쁘고 잘생긴 사람에게 괜히 자기가 아끼는 간식하나 더 주는 모습에서 부모들이 허망함을 느끼는 경우를 더럿 보았다.

<인형의 집> (루머 고든 지음 / 비룡소 출판)속에서 인형의 주인인 아이들도 그런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자신들이 정성들여 만들어놓은 세상 속 나름의 규칙들을 뒤늦게 가지게 된 아름다운 인형 ‘마치페인’에게 맞춰 모조리 바꿔버린다. 집의 가장, 엄마는 마치페인의 집사와 하녀가 되어버리는 식으로. 원래 인형들의 행복은 마치페인의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아이에게 잊혀졌다.

인형들은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절실하게 바라는 것 뿐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길 바라며 간절하게 소원을 빈다.

실제 우리 세계에서도 아이들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잘 없다.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하며 도움을 받아야한다. 그런 아이들이 어깨너머로 바라본 어른의 세상의 규칙들을 인형에게, 인형의 집에 부여한다.
소꿉놀이 같은 일종의 놀이로. 그렇게 아이들은 세상을 배운다. 화려한 외면에 사로잡히는 것도 어른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하는)실수 중 하나다.
무언가에 꽂혀 애써 만들어놓은 세상의 규칙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인형의 집과 그 안의 작은 인형들은 축소된 우리 인간들의 세계였다. 결국 인형들의 절실함은 주인에게 닿았고 인형의 집은 평화를 되찾는다. 인형 하나의 희생이 있었지만.

내가 <인형의 집>을 통해 바라본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에서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첫번째로 무언가에 현혹되어 기존의 것들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모두가 각자의 존재의 이유가 있고 쓸모가 있다. 그리고 애정으로 지금까지 이룩해놓은 것을 합당한 이유없이 무너뜨리면 자신의 세상을 지탱해줄 지지대가 사라진 것과 같다.
저마다의 존재이유와, 자기의 노력이 들어간 것을 아무리 하찮게 보이더라도 소중히 여기는 것에 대해 생각해봐야겠다.

두번째는 다른 이들과의 교감이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저마다의 강도로 타인들과 관계를 맺고 우리는 살아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베풀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도움받는다. 그렇게 서로를 채우며 비로소 완전해진다. 살아간다는 것은 혼자사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겠다.

이전에 읽은 <비밀의 화원>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상실로 인한 빈자리를 채우며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였다면, <인형의 집>은 인형 놀이로 인해 실제 살아가야하는 세상을 간접체험하고 중요한 것을 깨달으며 한층 더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모두가 성장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 세계에서 다른 누군가를 만나 함께하며 자라는 것과, 간접적인 경험과 그 경험에서 느낀 감정으로 인해 성장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우리가 책을 읽으며 무언가를 느끼고 깨닫는 것도 <인형의 집>에서 주인공들이 성장하는 방식과 같다.

직접체험과 간접체험. 모두가 소중한 성장의 원동력이다.
성장에는 여러방법이 있음을. 그러니 무엇이든 마음껏 도전해보라고 이 두 책이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하는 것 같다.

아이 책, 어른 책 나눠져있지 않다는 것은 비룡소 클래식을 통해 다시한번 깨닫고 있다. 다음에 읽을 <작은 아씨들>도 많이 기대된다.

#인형의집 #루머고든 #비룡소클래식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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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이 내리는 시간
브루나 단타스 로바토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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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이내리는시간 #브루나단타스로바토
#다산책방

하나의 세상이 이전과는 다르게 확 커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않다.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자식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도 마음에 들지않고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나라는 존재를 이토록 갈망하고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존재가 또 있을까.
심지어 열달을 제 몸의 일부로 살았던 기억을 가진 엄마라면 그 아이가 딸이라면 그러한 감동과 애정은 더 하지않을까.

<푸른 빛이 내리는 시간>은 꼭 함께 있어야만 하냐며 가족을 떠난 아버지의 빈자리를 가진 딸과 엄마의 이야기다. 더 넓은 세상을 배우고 그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 딸. 혼자 있을 엄마를 걱정하며 (거의)매일 영상통화를 하지만 엄마의 허전함은 쉽게 채울 수 없다. 의지하면 엄마의 엄마도 근래에 돌아가셨고, 삶의 이유와도 같았던 딸이 떠난 빈집은 너무나 넓고 고요하다.
자신이 목소리를 여전히 낼 수 있는 존재인지 긴장하면서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렇게 엄마는 이 큰 집이 쪼그라들어 자신을 가득 껴안아 주길 바란다. 외롭고, 뉴스에서 나오는 온갖 나쁜 사건에 딸이 휩쓸릴까 전전긍긍하며 마음에 병이 생긴다. 그렇게 약해지는 엄마를 보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야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며 그 순간을 대비하는 딸이지만 닭장같은 숙소에서 살아도 이 넓은 세상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미래도 (당연히)쉽게 놓지 못한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흐른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사실일까. 비로소 엄마는 혼자있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챙기기 시작한다. 연못같던 자신의 좁은 세상을 혼자라서 비로소 누릴 수 있게 된 자유를 가지고 너른 바다로 산책을 나간다.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딸을 떠올리고 바다를 만끽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비로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마음을 누르던 말못할 묵직한 무언가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또 몇 년이 지나, 엄마는 딸이 사는 뉴욕으로 스무시간 가까이 걸려 마침내 도착했다. 딸과 함께하는 일주일의 시간동안, 딸과 엄마는 다시한번 서로와 일치된다. 모든 것이 낯설었던 엄마는 이 낯선 곳에서 자기 딸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 익숙해졌고, 뉴욕의 것이 최고라고만 생각했던 딸은 엄마와 함께 했던 고향의 것들이 자신들에게 최고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관광을 여기저기 다니는 것이 아닌 딸의 일상에, 삶에 엄마가 고스란히 녹아들어갔던 일주일의 시간. 그 시간은 엄마의 연못같았던 삶을 바다같은 삶으로 바꿔주었다. 특별한 줄 잊고있었던 딸의 삶도 다시한번 바다가 되었다.

엄마와 딸로 존재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교집합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엄마의 삶, 딸의 삶 전혀 다른 두개가 그냥 합쳐지는 것이다. 겹쳐지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더해져 두배가 된 세상 그 모든 것이 소중하고 의미있는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불어넣어 한쪽을 부풀린 삶.
다시 돌아가도 분명 그렇게 할 것이지만 힘찬 날갯짓으로 자식이 떠나고 남은 둥지를 보면 겁이나고 의미를 잃는다. 비워낸만큼 더 좋은, 자신에게 꼭 맞는 것으로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더 좋은 것을 찾아내고 삶에 더해가는 과정은 또 다른 세상을 가진 딸과 함께 하게 될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아기가 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부담스럽지 않다면 그것도 괜찮다. 엄마와 딸, 부모와 자식의 역할교대. 확실한(대부분)것은 자식이 남는 장사라는 거다.

두 세계가 온전히 합해지고, 비로소 내 세계가 되어야 보이고, 느끼기 시작하는 것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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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 비룡소 클래식 27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김옥수 옮김, 찰스 로빈슨 그림 / 비룡소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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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남편은 아내가 사랑하던 화원을 걸어 잠갔다. 부모에게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걸어 잠갔다.

어릴적 읽고 마음에 들어 책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시절 내가 기억하는 <비밀의 화원>은 낯선 곳에서 자신만의 비밀이 되어준 화원 그 공간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메리와 콜린, 디콘 등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화원만큼 인상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다시 펼쳐든, 그 때 책보다 배 이상으로 두꺼운 #비밀의화원 (#프랜시스호지슨버넷 지음 #비룡소 출판)은 전혀 다른 것들이 더 크게 다가왔다.
물론 화원의 열쇠를 찾아 들어가는 장면은 다시봐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모험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문을 열기 전까지의 메리의 변화가 더 인상적이었다.

메리는 인도에서 ‘아야’들의 시중을 받으면서도 부모에게서 방치되어 적절한 교육은 물론 자식과 부모간의 사랑도 배우지 못했다. 모두가 자신의 말을 따라야했고, 그것을 어기면 ‘아야’들의 뺨을 때렸다. 시중을 받는 자신도, 시중을 드는 이도 모두 같은 사람임을 몰랐고, 같은 사람이라면 응당 존중해야할 것들이 존재함을 몰랐다.

짜증만 가득하고 몸이 약했던 아이는 부모같지 않은 부모를 잃고 황무지에 위치한 크고 화려하지만 황무지보다 더 삭막한 저택으로 옮겨진다. 하지만 그곳에서 마사와 다른 여러 어른들과 디콘, 자연을 접하면서 건강해지고 다른 사람을 나란히 바라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그것은 메리의 몸과 마음을 살찌우고, 그렇게 생긴 여유는 다른 사람에게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게 했고,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겨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을 배우게 했다.

모든 것이 풍족했던 인도에서의 삶, 그리고 모든 것이 낯설었던 황무지에서의 삶. 외관 상으로는 인도에서의 삶이 더 행복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러지 않았다. 을씨년스로운 바람소리를 내는 모래바람만이 가득채우던 황무지는 봄이 되면 수천송이의 꽃들이 온갖 향과 색을 투트려낸다. 그 황무지를 보고 어떤 사람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메리도, 아내를 잃은 크레이븐도 엄마를 잃고 화려하지만 어두운 빙에서만 살아온 콜린도 필요한 것은 열쇠였다.
자신들이 받은 상처로, 또는 한번도 사랑을 받지 못해 자라지 못하고 아예 사라질까봐 자신도 모르게 잠가놓은 마음의 문을 열 열쇠. 그 열쇠는 스스로만 찾으려고 애쓴다고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기처럼 항상 곁에 있어 소중한지 모르는 푸르른 자연을 매일 바라보고, 그 속에서 몸을 움직여 땀을 내고, 가진 것 없어도 서로 나누고 보듬으며 사랑이 가득해 모자란 것 모르고 살아가는 타인의 관심과 애정이 있어서 비로소 마음의 자물쇠를 여는 열쇠를 찾을 수 있다.

열쇠를 찾아 연다고 바로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한 화원같은 마음일리는 없다. 오랫동안 관리해주지 않아 말라 죽은 것도,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만큼 엉켜있는 것들이 가득 할 것이다. 잘라내야 할 것들은 과감히 잘라내고, 이제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들을 위해 그 위를 걷어내어 맘껏 숨쉴 수 있게, 맘껏 볕을 쬘 수 있게 가꾸어야 한다.

그렇게 몇번의 계절을 알차게 보내고 비로소 봄이 찾아오면 그때 찬란한 온갖 색과 향으로 가득한 정원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관심이 필요하다. 그 관심은 자기 스스로가, 또 다른 누군가가 주어야하는 것으로 나뉘고, 그 두가지 모두 필요하다. 그렇게 서로를 보듬고 그것을 양분으로 스스로를 보듬고, 또 그것을 양분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그 사람들이 모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리라.

메리를 자연스럽게 성장시키는 마사의 엄마와 가족들을 보며 진정한 어른의 모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의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도 있지 않나.

몸만 커지고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일까.
나는 정말 진짜 어른인지 되물어보는 시간이었다.
나의 모습 하나하나가 제대로 되어있는지 비추어주는 거울로 가득한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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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앨런 레비 지음, 노지양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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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는게 없는, 악의없는 친절.
마치 유니콘처럼 느껴진다. 괜히 낯선사람이 친절하게 대하면 ‘나한테 바라는게 있나?’저절로 경계하게 되는 삭막한 세상이다.

요즘 결혼은 물론 연애마저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다. 그것은 사랑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 없지 않나. 사랑은 무엇일까. 처음엔 이유가 있었으나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이유 없이 호의는 물론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것이 사랑아닐까. 그런 사랑은 그 사람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있는 관심, 호기심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사회에서도 그런 사람끼리의 관심과 호기심을 필요한다. 사회도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테오 (#앨런레비 지음 #오팬하우스 출판)은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사랑을 되살릴 수 있는 하나의 작은 불꽃의 이야기다.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골든이라는 곳에 머무르게 된 86세 테오. 그곳의 한 카페의 벽에 걸린 92개의 초상화를 보게되고 그 초상화는 벽에 걸려있을 것이 아니라, 당사자 또는 당사자를 아끼는 사람에게 가있는 것이 맞다라는 생각으로 직접 초상화를 구매해 당사자에게 전달해주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낯선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테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라 그는 전해줄 사람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그 사람의 인상을, 인상 뒤에 숨어있는 그 사람의 감정을, 성격을, 아픔을 발견하며 초상화를 전해주어야만 할 것 같은 사람들을 선정해 차례차례 진행한다.

초상화 속 인물들은 낯선 편지를 받고 장난 또는 위험한 것으로 치부하지만 결국 약속장소에 나와 테오를 만나면 이제 처음 만난 노인에게 자신의 속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는 마법같은 경험을 한다.

이런 동화같은 이야기가 가능했던 것은 테오의 태도이다.
테오는 절대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꺼내지 않는다. 항상 질문을 던지고 가만히 귀기울여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다. 몸은 상대방쪽으로 살짝 기울이고 시선은 상대방의 눈에 고정한다. 그만큼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깊다는 경청의 자세가 상대방의 마음을 연다.
그런 오롯한 상대에 대한 집중이 그림 속 인물의 내면을 보듯 눈 앞에 있는 사람의 내면도 바라본다.
너무나도 정중하고 다정한, 그러면서도 조심스러운 태도로 상대방의 굳게 잠긴 마음의 문을 여는 테오를 만난 사람들은 다시 테오를 만나지 않더라도 늘 테오를 기억하고 이야기한다. 바라는 것이 없는 무조건적인 관심과 사랑의 씨앗이 그렇게 그들의 인생에 뿌리내린다.

평생 음악가로 살아온 저자가 노인이 되어서야 혼자 완성한 글이고, 출판을 의도하지 않았으나 주변의 권유로 자비로 출판한 책이 100만부 넘게 팔렸다.
잘은 모르지만 음악도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한다. 악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악보와 음악가 단 둘이 마주보고 오랜시간 대화를 통해 찾아야한다. 그것을 시작으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가야한다. 그 둘의 것이자 다른 사람들이 들어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야 한다. 평생을 음악을 해오듯 글도, 테오로 분해 상대방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것도 저자는 성공했다.

평생을 살아오며 역시 사랑이 으뜸임을 깨달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임이 느껴진다.

같은 곡을 연주하는 새로운 연주자의 앨범이 끊임없이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시 찾아 듣게되는 앨범이 있다. 모두가 인정하는 연주라 그럴수도있고 나만의 취향일 수도 있고, 특별한 추억이 담겨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테오> 속 테오의 상대방을 바라보는 애정과 관찰력은 <테오>를 저마다의 이유로 다시 찾게 될 명반이자 자신만의 특별한 앨범으로 만든다.

살아갈 세상을 한층 더 아름다운 색으로 만들어줄 BGM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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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것들의 밤
정보라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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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함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이었다.
숱한 SF소설 속 이야기들이 대부분 현실화가 될만큼 발전의 속도은 눈부시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 독이 되기도 한다. 개인의, 개인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결코 해서는 안되는 선택(핵,전쟁)을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이미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름없는것들의밤 (#정보라 지음 #현대문학 출판)속 세상은 더이상 인간을 신뢰하지 않는다.
혈연 및 복잡한 이해관계따위 들어갈 틈이 없는 ‘완전무결’한 AI, 기계에게 세상의 운명이 맡겨진다.

지구의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너무 많은 인간의 수를 조절한다. 곳곳에 숨어있는 인간을 잡아낼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인간이다. 기계의 앞잡이가 된 인간들과 그들과 맞서싸울 수 있는 힘을 가졌으나 인간의 피를 마셔야 살아남을 수 있는 흡혈인. 흡혈인도, 기계쪽도 아닌 떨고있을 수 밖에 없는 나머지 인간들. 이렇게 인간들은 나뉜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체제에서 권력을 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고, 자기 몸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 남과 여로 끝없이 편을 나눈다.

하나로 똘똘 뭉쳐도 이겨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시국에 오히려 더욱 더 많은 세력으로 나눠진다.
이것이 진정한 디스토피아가 아닐까.

남과 여, 노동, 전쟁, 기술의 발달 등으로 인간의 존엄이 흔들리는 지금과 미래의 모습은 그다지 많이 다르지 않다. 모든 것이 완전무결한 유토피아. 그런 것은 꿈 속에서나 존재한다라는 것은 우리모두 알고 있다.

그럼 우리는 이 어두운 이야기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바로 저항의 계보를 잇는 것이다. 문제는 끝없이 생겨날 것이다. 그런 문제를 권력층은 숨길 것이고 강제할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스스로 생각하길 멈추고 그저 시대의 편제를 듣고, 들은 것을 진실로 받아들인다면 이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질 것이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그렇게 방치되면 결국 손쓸 수 없이 망가질 것이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사회 구성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 내야한다.

<이름 없는 것들의 밤>은 이렇게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 큰 의미가 있지 않다고 여겨지는 나를 비롯한 일반 사람들의 저항의식이 꺼지지 않고 계속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그런 저항의 목소리가 이어지는 사회. 그것이 희망이 있는 현실에서 존재가능한 유토피아의 모습일 것이다.

나도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이름 없는 것들’ 중 하나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인해, 지금 내가 무엇이 관심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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