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나를 자유롭게 할 거야 - 벽을 깨고 스스로 빛이 된 예술가
이소영 지음 / 블랙피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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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뱉어내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고싶어하는지, 누구보다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하는 본인임에도 그렇지 못하고 대면대면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종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보면 쉴 시간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당장 해결해야 할 일들이 눈 앞에 끝도없이 펼쳐져 있는데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궁상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도 잘 모르겠고 말이다.

나의 존재의의를 찾고 스스로를 믿고 흔들리지 않으며, 자기의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일은 그렇게 살아온 누군가의 삶을 따라 걸어보는 것이다.

#그림이나를자유롭게할거야 (#이소영 씀 #블랙피쉬 출판)은 아트 컬렉터이자 미술 에세이스트인 저자가 사랑하는 20명의 여성 예술가들을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미대출신이면 왜 그림을 그리지 않고 전시회를 하지않느냐’ 이런 질문들을 숱하게 들어왔지만 저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아픈 손가락같은 질문일 수 있지만 이 책으로 그 질문의 답을 갈음하고 있다.
그녀에게 예술 도구는 붓과 정이 아니라 펜이었고, 어떤 독특하고 특정한 색과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글로 만들어냈다. 그녀에게는 글을 쓰는 것, 세상에 존재하는 예술들을 글이라는 언어로 치환하는 것이 예술 그 자체였다. 이렇게 자신의 일과 삶을 확언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누가 뭐라하던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나간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있어야 하니까. 그런 그녀에게 닮고 싶고, 원동력이 되어 준 예술가들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예술계에서 버텨내고 여성들의 연대를 이끌어내기도 하고, 늦은 나이에 미술을 시작해 이제서야 눈부신 빛을 내고 있기도 하고, 역사상 최다 관람객을 달성하기도 하며, 유명한 남성에 업적이 가려졌으나 기어코 재발견 되기도 한다.

우리 나라의 김윤신, 나혜석은 물론, 힐마 아프 클린트, 프리다 칼로, 토베 얀손, 말로모스 등의 인생의 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180여점의 작품과 함께 그녀들의 이야기를 보다보면 눈의 즐거움은 물론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꽉 움켜쥐어져있어 빈틈 없던 마음에 한줄기 따스한 바람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 따스한 바람은 큰 변화를 지금 당장 불러일으키지는 못할 수 있지만, 무한한 가능성의 시작이 된다.
애그니스 펠턴의 <원초의 날개>를 보며 확장된 상상의 영역으로, 영적인 영역으로 깊게 가라앉아도 보고, 자신이 사랑한 거장들을 자신만의 알고리즘을 통과시켜 탄생시킨 베라 몰나르의 <잃어버린 클레를 찾아서>, <모네에게 바치는 헌사>와 같은 작품을 보며 세상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과 법칙을 세우는 것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그와 동시에 조안 스나이더의 <고통과 기쁨의 교향곡>을 보며 음악에 기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앞으로의 과정에도 고통과 기쁨이 함께 존재하며 서로를 비추는 그런 순간들이 지속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각오를 다지게도 한다.

그런 기쁨과 고통, 자신만의 법칙과 언어로 세상의 벽을 허물고 자신만의 세상을 기어코 만들어낸 이들의 작품과 그것들이 재탄생된 글들은 조금씩 읽는 우리를 재구성시킨다. 누구에게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무언가를 자신이 직접 관철시키고 싶다는 희망과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의 원동력도, 결과도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 확신과 사랑 가득한 흔들림 없는 단단한 삶.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걸아갔던 길이라고.
그러니 마음껏 꿈꾸라며 이끄는 단단하고 따스한 손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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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불안을 다루는 법 - 에피쿠로스에게 배우는 덜 두렵고 더 단단한 삶
김용하 지음 / 헤이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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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물음표로 머리 속이 복잡할 때 잠시 멈출 수 이있게 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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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불안을 다루는 법 - 에피쿠로스에게 배우는 덜 두렵고 더 단단한 삶
김용하 지음 / 헤이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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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쭙잖은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외웠던) 에피쿠로스는 쾌락이었다. 이것 말고는 자세한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으니, 쾌락이라는 단어가 주는 가벼움과 죄짓는듯한 기분 때문에 부정적으로 머리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서른의 불안을 다루는 법> (김용하 지음 / 헤이북스 출판)에서 말하는 에피쿠로스의 쾌락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자극의 쾌락이 아닌 고통과 불안이 줄어든 삶, 두려움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평온한 삶을 말하는 것이었다.

사회에 뛰어들어 뿌리내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삼십 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 얻은 하루하루이건만 매일 드는 의문은 ’이대로 괜찮은가?’이다.
오늘만 괴로우면 그나마 다행인데 당장 내일이, 앞으로도 괜찮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 깊이 흔들린다. 불안한 것이다.

두려움, 불안을 우리는 왜 안고 살아가는 것일까?
행복하기 위해서? 행복은 무엇일까 성공하는 것일까?
결국 성공을 위해서 두려움을 안고 산다는 말일까?

수많은 물음표에 시원한 정답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를 불안해하지 않는 쾌락으로 인생의 방향을 수정할 수 있도록 잠깐 멈춰 숨을 고를 시간을 준다.

불안을 해체하고, 끝도 없이 솟아오르는 욕망을 정리하고 경쟁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인간관계에서 내 편, 협력, 신뢰를 발견해 불안을 줄여나가는 이야기를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당연하듯 내 안에 정립되어 있던 불안, 행복, 성공, 쾌락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은 우리 각자가 살아온 인생을 다시 돌아보는 것과 같다.
어느 정도 자라고 나서부터 우리는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쉬는 것은 약하고 도태되는 것이라 배웠고, 일단 좋은 성과를 내고 경쟁해서 이기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랬더니 결국 지금의 나는 무엇 때문인지도 정확하게 모르는 불안 덩어리가 되었다. 잘못된 길로 계속 가서는 안 된다. 멈추어야 한다. 정확한 목적지를 찾고 다시 출발해도 늦지 않다.

멈춰 숨을 고르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여유를 주는 푹신하고 몸에 딱 맞는 소파 같은 책이다.
책을 덮고도 좀 더 머무르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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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만 있다면
고사카 루카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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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하나를 정의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과정과 시간을 지나야 할까. 사전에서 단어의 뜻을 외우는 것만큼 명확하게 머리에 바로 넣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여러 현상과 사건들은 한번에 정의하기 쉽지않다. 우정, 사랑 같은 것들은 그것이 가지는 의미와 무게가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겪어보는 것이다.
시행착오라고도 불리는 이런 불규칙적임과 동시에 연속적인 경험은 어떤 현상에 대한 정의를 계속해서 수정해나가면서 하나의, 자신만의 의미로 완성되어 간다.
그러한 현상들이 모여 나라는 하나의 인간이 정의된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기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살아만있다면 (고사카 루카 지음 #오팬하우스 #모모 출판)제목이 바로 그 답이다.
무언가를 계속 경험하기 위해서는 살아있어야한다. 살아가야한다. 죽는게 더 나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하루, 며칠, 몇달, 몇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만 얻을 수 있는 피, 땀, 눈물이다.

남녀 둘 사이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완성된다는 것이 누군가에겐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냈는지에 따라 그 의미의 무게는 천차만별이다. 누군가에겐 봄과 겨울 그 사이의 서늘한 간극을 채워줄 따뜻한 사랑으로 여름과 가을이 절실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살아갈수록 끔찍해지는, 반쪽만 나눠가졌음에도 다른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엔 완전히 공유된 여름과 가을로 보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겐 절실하고 누군가에겐 끔찍하며 아릿한 무언가가 또 이제와는 다른 삶의 과정으로 또 한번 그 의미가 변해간다.

소설 속에서 봄이 저물고 있듯이, 이 책을 쓴 작가도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 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유작이라 여겨지는 이전작품도 정식출간되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 그런 작가의 이야기가 더해져 ‘살아만 있다면’이란 문장의 무게가 너무나 깊게 마음을 짓누른다.

그는 얼마나 바랬을까. 살아만 있기를.
살아만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을 책 한권을 적어낼만큼 인지하고 있던 병든 작가에게 그것은 얼마나 절실했을까.

살아만 있다면 지금 불행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행복과 사랑, 우정 등 온갖 좋은 것들을 찾아 떠날 수 있지 않은가.
꺼져가는 상황에서도 웃음과 다정한 마음을 놓지않는 하루카(봄)과 그럼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작가를 겹쳐보며 기어이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얻는다.

살아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기에 얼마나 귀한것인지 깨닫지 못했다. 도망치고 숨고 싶은 순간들이 너무나 많았다. 감담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을 주신다는데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나날들이었다.
괴대평가된 것은 지금의 고통이었다.
나라는 존재와 살아있다는 것의 가치가 너무나 과소평가되어있었다. <살아만 있다면>을 통해 비로소 제대로 저울에 달 수 있게 되었다.

눈이 부시게 살아가세요.
아니 살아만 있다면 결국 눈이 부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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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 - 돌봄과 상실 너머, 다시 시작된 사랑의 모험
천희란 지음 / 김영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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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녀석이 어떤 심정인지 정확하게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하나의 현상이 주말에 널부러져있는 나를 한심학 쳐다보고 있는 눈과 마주칠때는 다행이었다 싶다가도 치료가 필요한 순간이 찾아오면 그 무엇보다 더 큰 아쉬움이자 벌로 느껴진다.
무리에서 도태되지 않겠다는 야생의 습성때문에 아픈 티를 내지않는 녀석들에게 아프면 아프다고 티를 내라며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을 꾸짖는 소리를 할 때부터, 조금씩 병이 악화되면서 더 이상의 치료가 정말 얘가 원하는 것인지 나의 욕심인지 매마르지도 않는 퉁퉁 부은 눈으로 뜬밤을 지새울 때 속시원히 말해달라고 아픈 애를 붙잡고 애원할 때의 그 심정이란.

#고양이가두고간세계 (#천희란 씀 #김영사 출판)는 어엿한 성채로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뿌듯함과 기쁨보다 어쩌다보니 늙고 병든 고양이를 돌보며 하나 하나씩 고양이별로 떠나보내는 것을 먼저 겪은 집사의 이야기다.

남편의 회사 사무실에 살던 비슷한 나이의 고양이 세마리. 제대로 돌보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부담감때문에 집에 들이는 것을 고민하다가 열살이 넘어 마침내 그 세녀석을 집으로 들이고 최선을 다해 돌본 집사(작가).

그런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킨 것일까. 고양이치고 제법 긴 시간을(사람 나이로 치면 80이 넘는) 세마리 모두 살아냈지만 이별의 순간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위안도 되지않는다. 병 간호를 각오한 것이 무색하게 병원에 갔다 사흘만에 떠나기도 하고, 몇 개월 동안 할 수 있는 한 시간과 돈 모든 것을 쏟아부었으나 결국 떠나고. 그 상실의 아픔을 말없이 엉덩이를 내어주며 위로해주던 마지막 고양이는 식도에서 넘어온 무언가가 기도를 막아 쓰러진지 5분만에 무엇이 그리 급한지 훌쩍 떠났다.

짧은 시간동안 세 번의 이별을 겪으면 어떤 심정일까.
나도 강아지 동생과 고양이 동생을 뒀었고 이 둘을 2년이 채 되지않는 기간동안 강아지별과 고양이별로 보냈다.
나는 이십대를 지나 여전히 건강한 삼십대인데 생긴 것은 여전히 애기인 동생들이 십년남짓한 세월동안 인간의 평생을 겪고 떠나는 것이 너무나 아픔이 아팠다.
다시는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할정도로.

하지만 그 아이들이 처음 내 무릎에 올라왔을 때, 촉촉한 코를 내 손에 부딪힐 때, 나에게 기대어 같이 낮잠을 자던 때, 늦게 들어와 불이 모두 꺼진 집에 살며시 들어올 때 눈도 다 못뜬 상태로 나와서 나를 반기던(꾸짓던) 그 순간들을 떠올리면 그 아이들이 만들어준 찌그러진 곳 하나 없이 매끄럽게 다듬어진 내 세상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소중하다.

세상에 이들처럼 누군가를 이유없이 전적으로 믿을 수 있을까. 그런 전적인 믿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 것도 나도 그런 믿음과 사랑을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 것도 이 비인간적 동물들이다.

작가도 그렇게 또다시 새로운 묘연을 만났다.
떠나보낸 고양이와 너무 닮아서 이게 옳은 일인지 한참을 고민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나 다른 캣초딩.
생김새가 아무리 비슷해도 성격과 표정과 살아온 묘생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것. 부서질까 살포시 안게되는 저 작은 몸에 담겨있는 무한할만큼 거대한 세계는 그 슬픔을 기꺼이 다시한번 받아들일 각오를 다지게 한다.
물론 아픔은 익숙해지지않는다. 그 무한한 가능성 만큼 아픔도 제각각의 통증으로 찾아올거란걸 알고있다.

그럼에도 나는 눈을 감으면 여전히 생생하게 떠오른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라는 진심어린 감탄과 감동을 안겨주었던 우리 고양이의 둥글고 투명한 눈동자를. 그 안에 담겨있던 빛을.

그 빛은 십년, 길게는 이십년(제발)동안 뭉클함으로, 따뜻한 위로로, 나라는 존재의 유의미함을, 아낌없이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믿음이라는 온갖 형태로 나를 완전하게 만들고 단 한번의 이별로 산산조각낸다. 그리고 그 조각조각난 것을 보수하면서 더 크고 완전한 세상을 만들게 한다. 다름아닌 나와 다른 종의 생명체가.

작가의 말처럼, 고양이가 존재하는 세상의 가능성을 나는 믿는다.
모든 이들에게 묘연猫緣 이 찾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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