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감정론 현대지성 클래식 70
애덤 스미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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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스미스의 논문 한부가 실려있다.
제목은 #언어의최초생성에관한여러고려사항그리고원초적언어와혼합언어의서로다른특성에관하여 로 긴 제목방큼 방대한 40여 페이지에 달한다.
이 논문에서는 언어가 없던 시절 무언가를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해 우연히 낸 소리가 하나의 의미로 굳어져 고유명사가 생기고, 그 명사에 상응하는 다양한 대상들을 인식하면서 일반명사로 나아가고 그것들의 관계성을 나타내기 위해 형용사와 전치사와 같은 품사들이 생겨났을 것이라는 어떻게 지금과 같은 언어가 생겨났을까에 대한 이야기였다. #도덕감정론 이라는, 저자 #애덤스미스가 30여년에 걸쳐 6회에 이르는, 심지어 마지막 개정은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새로운 챕터를 적는 새로운 저작행위와 다름이없는 정성을 쏟아부은 책에 왜 언어와 관련된 논문이 수록되어 있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3차 개정이 이루어질 때 실제로 저자가 수록한 논문이기도 하고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의 시작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었음을 책을 덮을 때서야 깨달았다.

#현대지성 이 완역한 <도덕감정론>은 경제학자의 이미지가 강한(실제로 큰 족적을 남겼다. 행정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애덤스미스의 ‘보이지않는 손’을 모를리 없을 것이다)저자가 가장 공을 들인 ‘애정하는’ 책이다.

이 책은 공감이라고 번역되는 ‘Sympathy’라는 물줄기로 시작된 거대한 바다에 관한 이야기이다.
연민, 동정이라고도 번역되는 이 단어를 애덤 스미스는 ‘공감’으로 사용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기쁠땐 함께 기뻐하고 슬플땐 함께 슬퍼하는(심지어 슬픔을 공유하고 공감받고 싶어하는 경우가 기쁨을 공유하는 경우보다 훨씬 많다)이 공감으로 도덕, 윤리를 이야기한다.

이 책 시작 부분에 “인간은 타인의 행운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행복을 자신의 필요처럼 느낀다. 비록 그 행복으로부터 얻는 것이 그저 바라보는 즐거움뿐일지라도, 인간은 남들이 행복하길 바란다.”라고 적으며 이것이 공감의 정의라 말하고 있다.
적잖은 혼란이 머리에 그리고 마음에 일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바라보는 즐거움’? ‘남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것이 인간’이라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건 무슨 소리인가?

그렇다. 저 마음이, 저 상태가 바로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도덕이라는 감정이다.
그러나 300년 남짓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처럼 저 문장에 기시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않아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책에서 저자는 그 원인을 경제활동으로 인한 부의 축적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또다른 위대한 저서 <국부론>의 모티브로 <도덕감정론>을 꼽는지도 모르겠다. 위에서 언급한 ‘보이지 않는 손’은 이기적인 개인의 사사로운 영리활동이 사회 전체의 공적 이익을 증진시킨다는 것을 뜻하는 용어이다. 여기서 이기심self-love는, 스스로를 위한다는 것은, 모두에게 공감을 ‘당연히’받을 수 밖에 없는 ‘도덕적‘행동을 함을 의미한다.
결국 지금의 시장경제에서는 이론과의 괴리감이 생겨 경제학의 폭발적 성장을 일으켰지만 말이다.

애덤 스미스가 유토피아를 꿈꿨던 것일까?
우리가 타락해 버린 것일까.

애덤스미스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반복하는 입에 바른 말일까?
그렇지도 않다. 애덤 스미스는 모든 사람들의 자신의 도덕을 기꺼이 따르는 ’이기적인 인간‘이 되길 진심으로 바랬다. 마지막 개정에서 도덕으로 나아가게 하는 정의, 관용, 용기 같은 ‘미덕’의 구성요소와 그 성격에 관해 완전히 새로운 내용을 적어 포함시켰고, 그것을 실천에 이르게하는 여러 학자들의 아포리즘을 상세히 적어두고 있다.

여기에서 위에서 말했던 언어학 논문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복잡한 언어의 발달의 끝은 바로 나‘I’라고 말하고 있다. 수많은 인칭 체계를 완성시켰음에도 ’나‘에 주목하는 것은 이 글을 쓴 사람,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그 사람에게 전해 듣고 있는 사람 모두에게 해당되는 초월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애덤스미스의 도덕도, 도덕으로 나아가는 미덕도, 그것이 이르기위해 강조하는 중용도 각자의 ’나‘가 이해하고 공감하고 교환하여야 이루어 진다.
그러한 화학작용이 아포리즘에서도 작용한다.
도덕이 무엇인가에서 결국 ’우리(’나‘의 복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그의 모든 저서의 뿌리이자 우리 각자의, ‘나’의 뿌리같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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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6
위수정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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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긴 여로> 노벨문학상 수상자 유진 오닐의 희곡은 지금도 여전히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다.
아들이 죽고, 아내와도 관계가 좋지 못했던, 자신이 죽은 뒤 25년동안 출간을 금지했으나 아내가 4년만에 발표한 이 이야기는 그의 자전적 희곡으로 한가족의 하루동안의 불안과 갈등이 담겨있다.

#Fin (#위수정 씀 #현대문학 출판)은 이 <밤으로의 긴 여로>마지막 공연을 마친 두 배우와 그들의 두 매니저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온갖 스캔들에 시달리다 이 연극으로 복귀한 기옥, 영화판에서 인정받는 연극배우 출신 스타의 연극 복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태인.
기옥은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화려한 커튼콜을 올라가면서도 즐겁지 않다. 이게 사는거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무슨 말을 할지 불안해 한다. 태인도 영화의 성공으로 가정이 경제적 안정을 찾았으나 연극판에 있었을 때 불미스러운 일들로 연극으로의 복귀를 반기지 않는 아내 혜림과 아이들과 소원해졌다. 술만 먹으면 진심이 아닌데 진심과 다른 말과 행동이 주위 사람들에게 쏟아진다. 그 스스로도 진심이 아닌지도 확실치 않다. 이것이 본심인지도 모르겠다며 스스로도 혼란스럽다.

쫑파티를 끝낸 뒤 태인의 교통사고 소식이 들려온다.
매니저 상호가 운전하던 차량이 빙판에 비끄러져 불이 붙어 나오지 못했다. 상호도 많은 부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기옥은 태인의 장례식장에 가 그를 애도하지만 그럼에도 기자들에게 찍힌 자신의 사진을 열심히 살펴본다. 흘러내린 볼은 아쉽자만 선글라스는 잘 고른 것 같다.
성공스런 복귀를 했지만 불안은 여전하고 그로인해 불면증에 시달린다. 매니저 수정이 퇴근했다가도 다시 돌아와 수면제도 챙겨주며 살뜰히 챙긴다. 기옥은 그런 수정을 고마워 하지만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
수정도 많은 것을 가졌으나 그럼에도 자신이 실패했다 말하는 기옥이 밉다. 진짜 실패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의 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몸과 마음은 기옥을 챙김으로 기꺼이 나아간다.

상호도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배우가 꿈이었다.
하지만 가난한 집과 ‘지금은 아니야. 1년만 미루자.‘라는 생각이 지금까지 왔고, 용기 내어 시작한 것이 바로 태인의 매니저였다. 태인의 대본을 읽고 연습리딩의 상대방을 하며 아무도 모르게 꿈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태인의 교통사고의 ’피의자‘로 아무도 그가 운전하는 차를 타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는 것으로 그의 미래는 다시 닫힐 것임을 암시한다.

이렇게 네명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제각각의 환경에 놓여있으나 서로의 환경을 이해하지 못한다.
못하는지 하지 않는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각자의 슬픔보다 나보다 더 가진 것에 집중해 흔들리는 두명의 자기자신과 마주한다.

유명인등인 기옥과 태인은 어느곳에서도 맘편히 털어놓을 수 없다. 수정을 계속 고용하는 것도 최측근인 수정이 자신에 대해 무슨말을 할지 몰라 염려했기 때문이고, 태인은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닌‘유복한 집안의 딸이었던 혜림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

네명 모두가 그렇듯, 우리도 매번 적어도 둘 이상의 성향으로 나뉘어진 스스로와 만난다.
옛날 만화영화에서 주인공의 머리위로 천사와 악마가 날아다니며 속삭이듯이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내가 끊임없이 전쟁을 치룬다.

삶에서 어떤 하나의 일이 끝나 엔딩 크레딧에 ‘fin’이라는 단어가 떠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들이 있다.
끝은 마지막이 아니라 무언가의 새로운 시작임을, 그 시작이 진취적인 것만은 아닐수도 있다고 이 책은 말해준다.

자기내면을 들여다보는 괴로움이 있을 수도 있고, 하기 싫지만 해야하기에 시작되는 일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
우리가 본 엔딩 크레딧은 진정한 엔딩이 아니다.
하나의 단막이 끝났을 뿐.
우리의 삶이라는 무대는 아직 절찬리 상영중이다.

귀하고 귀하지 않음은 없다.
어느 하나 필요없는 역할이란 무대에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나보다 빛나보이더라도 내가 초라한 것은 아니다.
나도 충분히 빛나는 존재로 무대위에 있음을 잊지만 않는다면 수많은 나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인생이라는 무대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게하는, 마냥 달지만은 않은 쌉싸름한맛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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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들
저스틴 토레스 지음, 송섬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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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들 (#저스틴토레스 씀 #열린책들 출판)을 펼치기 까지 내가 알고있는 것은 퀴어queer 소설이라는 것 뿐이었다.
펼치니 나를 맞이하는 것은 무언가로 검게 그어져 대부분이 지워진 문서였다. 실존하는 <성적 변종들>이라는 연구서다. 실존 연구서를 바탕으로 한 <암전들>은 떠돌이들이 살아가는 사막 한가운데의 공간 <팰리스> 그곳에서 살고있는 후안 게이를 이 이야기의 화자인 ’내‘가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어린 소년을 뜻하는 스페인어 네네nene로 표현될 뿐. 나는 후안의 비참한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그의 존엄성을 보고싶어 한다. 자신의 말로가 이렇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결국 후안은 숨을 거두고, 네네에게 온통 검은 줄이 그어진 <성적 변종들>을 건내며 검은 줄로 지워진 곳을 되찾으라며, 그리고 잰 게이를 찾아보라는 유지를 남긴다. 그렇게 네네는 ‘암전된’보고서와 ‘암전된’한사람의이름, ‘암전된’역사를 찾아간다.

<성적 변종들>이라는 연구서가 실존하듯, 잰 게이라는 인물도 실존했던 인물이다. 1930년대 퀴어 연구가이면서 본인도 레즈비언이었던 잰 게이는 수백명의 동성애자들을 연구했다. 그 연구가 바로 <성적 변종들>의 시작이다. 하지만 그때는 여성작가가 쓴 책은 아무리 잘쓰여져도 사장되던 시절이라 이 연구도 빛을 보려면 ‘권위있는 남성 의사’의 이름으로 출판되어야‘만’했다.

그렇게 자신의 연구가 세상의 빛을 보길 바라며 사회제도에게 양도했지만 그의 연구는 본질을 잃어버린다.
당연히 잰 게이라는 그의 이름은 지워졌고, 동성애자들의 말들은 권위 있는 의사들의 병리학적 진단으로 점철되었고, 동성애라는 욕망은 질병을 넘어 장애라는 낙인이 찍혀버렸다.

책 중간중간에 삽입된 빛바랜 듯 흐릿한 누드사진도 연구에 응한 동성애자들의 모습이다. <성적 변종들>에 실렸던 사진들이나 위의 저런 ‘진단’과 함께라면 혐오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계속 등장하는 검게 암전된 연구서를 지워지지 않고 남은 부분들을 읽으면 그럴싸한 시구처럼 보인다. 암전 후 남겨진 것들과 네네가 되살리려 애쓰는 암전된 부분들이 합쳐져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 책 <암전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연구서의 암전된 부분일까, 남은 부분일까. 어떤 쪽으로 받아들여지는지가 자신의 입장이 될 것이다. 사실 암전된 부분을 살려내려 하지만 그 내용들이 100% 객관적이라 할 수 없다.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있는 이 불친절한 텍스트는 사이사이의 빈틈과 연구서의 암전된 부분들로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추리물을 읽는 것 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추리물처럼 완벽한 해결은 없다. 또다른 물음표를 피워낼 뿐.

나에게 병으로, 장애로 퀴어를 대하고 있는 이 연구서가 매우 불편했다. 명징하게 한문장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그 뒤에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질문에는 느낌표나 방점을 찍을 수 없었다.

다만 앞뒤 따지지 않고 퀴어라는 것을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앞뒤’를 생각해볼 계기를 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눈부시게 발전한 아름답고 살기 좋은 이 세상에 암전된, 즉 잊혀지고 일부러 덮어버린 부분들이 분명 있다. 세상의 진실은, 세상이 발전에 눈이 멀어 놓치고 외면하고 잊어버린 중요한 것들은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암전들>은 암전된 것들, 공백에서 상상에 의존한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실제 세계에서도 빛이 차마 닿지 못한 어두운 곳에서부터 깨달아야할 진실이 있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있음을 증명한다.

무지보다 인식을, 무조건적 혐오보다는 물음표를, 외면보다 응시를.

그리하여 이 세상에 암전된 것들이 조금이라도 더 사라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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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옥에서 브랜딩을 찾다
박현구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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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인생 대부분을 모르고 살아왔다. 그냥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를 나타내지만 자기만의 속도로 누군가를 따라가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일정한 속도로 자신감있게 흔들리지 않고 묵묵하게 걸어가야만 들리는 소리이다.

#도심한옥에서브랜딩을찾다 (#박현구 지음 #디자인하우스 출판)는 자기만의 속도로, 방향으로 걸어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브랜드 가치를 완성한 노스탤지어(Nostalgia)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북촌의 고즈넉한 한옥들을 생각하면 기와숲이 눈앞에 저절로 그려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지만 그 멋을 유지하며 현대의 기술을 접목시키는 것이 만만치 않을 뿐더러 많은 자본이 든다. 노스탤지어는 무려 6채의 한옥을 최상의 컨디션과 서비스로 관리, 운영하고 있는데 많은 자본이 들어간 모든 사업은 초반에 ‘오픈빨’이라 불리는 첫 영업결과를 몹시 신경쓰기 마련이다.
조바심이 나는 것도 당연하고 무리수를 두고 스스로 무너져내리는 경우도 많은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노스탤지어는 숙박플랫폼 입점, 인플루언서 홍보와 같은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지 않았다.
시스템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많은 고객들이 몰리면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렇게 고객 하나하나에게 진심으로 자신들이 지양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신념과 정말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진정성이 결국 고객들에게 와닿아 독자적인 위치를 결국 완성해냈다.

에어비앤비 프리미엄 컬렉션 럭스(LUX)에 오르고, 유명 브랜드의 쇼룸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티 클래스와 같은 전통체험 공간 운영으로 고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의 전통을 알리는 것도 잊지않고 있다.

어떤 회사의 성장기, 성공기로만 읽힐 수도 있지만 결국 하나의 회사, 브랜드도 사람이 만든 것이고 사람이 키워나가는 것이기에 회사를 키우는 브랜딩 방식도 개인에게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학업, 취업, 돈벌이 같은 성과들을 더 많이 더 빨리 얻기위해 앞만보고 달려나가는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돌아보게 되면 무언가 중요한 것들을 놓쳐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금전적 성공을 최우선 가치로 살아가는 삶.
그 사람의 인생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인간(人間)이라는 단어에도 있듯이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혼자 살 수는 없는 것. 최우선이 될 정도로 중요하지 않은 것에 집중하느라 정작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쳐서는 안된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해야하는 것을 하는 것 보다 해서는 안되는 것을 하지않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솔직히 우리가 생을 살아오면서 바랬던 것들 중 상당수의 것들이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지 방법은 알았던 것 같다. 정도(正道)라 불리는 것을 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덜 힘든것, 더 빨리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다녔다. 느리더라도 정도로 걸었으면 이루었을지도 모른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것만 신경쓰는 것.
달릴 때도 자신의 발소리, 호흡에만 신경쓰면 무사히 목표시간, 목표거리를 채울 수 있지 않은가.

자신의 것만 묵묵히 해나가는 것.
다른 것은 신경쓰지않고 하지않는 것.
그것이 브랜딩이자 나를 나아가게 하는 과정임을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곱씹어보게 되었다.

하지않아야 할 것, 가지말아야 할 길을 하지않고 걷지않는 것이 어려운 것임을 우리 모두가 안다.
단단히 마음먹을, 결심하게 해줄 작은 동기하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도심 한옥에서 브랜딩을 찾다>가 기꺼이 그 동기가 되어 줄 것이다.
나를 톧아보게도, 멋진 성공의 비결을 깨닫게도, 그리고 북촌을 걷고싶게도 하는 멋진 책이다.
나의 삶도, 북촌도 뚜벅뚜벅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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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가을 에디션)
고다 아야 지음, 차주연 옮김 / 책사람집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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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보지말고 숲을 보라.
정답이라고 생각할만큼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행하려고 하는 구절이다.
한발자국 떨어져서 전체를 보라는 말이겠지만 그것은 재미없는 일이다. 숲이라는 단어 하나에 너무나 많은 개별적인 무언가들이 놓쳐진다. 편백나무 소나무, 가문비나무, 삼나무, 버드나무, 녹나무 등 수많은 서로다른 무언가들이 각각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그 이야기도 계절에 따라 다르다. 한 그루당 적어도 4개의 이야기, 숲으로 따진다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숲이라는 단어하나에 가려지는 것이다.

#고다아야 의 #나무 (#책사람집 출판)을 보면 그 나무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해진다.
지금보다 세상이 조금 더 초록초록했던 20세기를 살아온 저자는 노년에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일본 각지의 나무들을 관찰하며 다닌다. 우리가 단풍놀이, 꽃놀이 가는 여유로움과는 사뭇다르다. 무언가 하나를 안다고 말하려면 1년은 보아야한다는 작가 평생의 신조때문인지, 사계절 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나무의 특징때문인지 삶을 정리하는 순간의 나무 탐방은 생이 끝나기 전에 ‘알고’끝마치고 싶어 조바심이 담겨있다.

앞으로 남은 날동안 평안함만을 빌며 무탈하게 살아가는 다른 노년들과 달리 조바심을 내며, 무더운 8월 한여름의 편백이 내뿜어 내는 그 에너지처럼 열정적으로 넓은 일본을 돌아다니는 백발의 저자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다짐하게 하지만 그 조바심이 이는 와중에 쓴 글들은 정갈하고 고요하다.
마치 여름에 더 커질것이다라는 의지를 뿜어낸 나무가 자기가 아니라는 듯이 하늘을 찌를듯 웅장하게, 두껍게 자랐으나 부담스럽지 않고 조용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가을의 편백나무 같은 저자의 글이 알게모르게 요동치고 있던 내 마음을 잔잔하게 가라앉힌 후에 그럼에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문호였던 아버지의 독특한 교육아래(세자매에게 각자의 나무를 주고 돌보도록하고 관리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잊지말라 당부하는 등 식물과 가까운 삶을 살도록 가르쳤다)가진 식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 일찍 세상을 떠난 언니에 대한 질투심이 원동력이 되어 평생을 식물을 곁에 뒀던 저자가 노쇠한 몸을 이끌고 또 나무를 보러 다녔던 것은 왜때문일까.

저자의 마음을 알지는 못하겠지만 삶을 제대로 알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나무>를 읽으며 들었다.
저자의 삶과 함께해온 나무. 그 나무를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마음을 다해 관찰한 내용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추억, 또는 지나온 일상, 평생을 당연하게 행동하게 했던 말로 꺼낸적 없는 신념, 생각들을 함께 엮어냈다.
결국 나무를 보면서 자기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톧아본 것이다.

그렇게 나는 어떤 삶을 살았나, 내 생은 어땠나를 의식적인 행동으로 무의식적으로 깨닫는 과정이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도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게 해주지 않았을까. 긴 세월동안 이어져온 15편의 이야기가 저자의 유작으로 발표 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시간을 들이고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여름의 태동을 겨울의 버팀을 보아야 가을이 휴식임을 알 수 있듯이, 인생도 살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음을 적당한 열광이라는 산문에 더할나위 없이 걸맞은 토양에 정성껏 심어놓았다.

어떤 사람은 마지막에 자서전, 회고록을 남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역사를 따라가며 그 사람과 공명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지만 이렇게 비에 젖은 나무둥치 아래에서 맡을 수 있는 향이 가득한 수필들로 시대를 초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진하게 뇌리에 남았다.

시각적, 후각적 감각이 동시에 쓰인 공감각적 심상이라 그럴까. 내가 본 그 어떤 자서전보다 더 와닿는, 그럼에도고요한. 그로인해 책을 덮은 나의 마음도 평온한 그런 책이었다.

매년 봄에는 좋아하는 매화를 찾아다니고, 지천에 핀 벚꽃길을 달리며 여름에는 뜨거운 햇살을 투영하는 연두빛 어린 잎들을 감상했더랬다. 올해는 거기에다 단풍을 만끽했다. 늦은 휴가 덕분에 시기가 그랬던 이유도 있겠지만 단풍에서도 무언가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기가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가을을 만끽한 지금 <나무>를 만나서 참 다행이었다.
열정적으로, 그러면서 일상적이고 차분하게.
나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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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1-11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다양성이 참 놀랍기도 하지요. 계절별로 다른 나무들의 매력을 보여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