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가 사랑한 철학자들 - 예술은 어떻게 과학과 철학의 힘이 되는가
김종성 지음 / 비제이퍼블릭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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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전시회를 가장 잘 감상하는 방법 중 하나로는 도슨트를 이용하는 것이다. 혼자 둘러보다 괜히 눈에 밟히는 그림앞에 멍하니 오랜시간을 두는 것고 훌륭한 방법이나, 그런 경험들이 쌓이고 취향이라는 것이 생기고 나면 더 자세히 전문적으로 알고싶을 때가 생기는데 그럴 때 도슨트를 이용하면 참으로 좋다.
글로 읽는 것 보다, 전문가가 생생하게 그림을 보며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더 생생히 와닿고 기억에도 오래남는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도슨트라도 작품 하나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잘 없다. 전시회에서의 모든 그림을 설명하기도 시간이 부족해 몇 작품을 선정해서 대표작들을 설명해야하기도 하고, 하나의 그림만 설명하고 그만둘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한점의 그림만 전시해 두는 전시회가 없으니 하나의 그림만을 위한 도슨트도 없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라파엘로가사랑한철학자들 (#김종성 지음 #비제이퍼블릭 출판)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하나의 그림만을 논하는 도슨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파엘로의 유명한 작품 <아테네 학당>에 대한 도슨트인데 어떤 구도적, 회화적 가치를 지니는지, 숨어있는 알레고리가 무엇인지 우리가 익히 들어본 것들을 넘어 그림 속에 그려져 있는 학자 중 여섯명의 사상과 철학, 업적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독특한 도슨트 해설이다.

하나의 그림으로 한권짜리 도슨트라니.
이런 사치가 없을 것이고, 저자도 그만한 애정과 넓은 지식이 있어야 가능한 기획이다.
진정한 덕후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원래 덕후가 하나에 몰두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그 하나에 대해 모든 것을 낱낱이 알기 위해서는 거기에 포함된 수많은 분야들을 독파해나가야하는 번거로움이 반드시 수반되는 법이다. 그 모든 번거로움을 순수한 열정과 애정으로 이루어 내는 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덕후이다.
덕후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말도 있지 않나(없나? 분명 들었😂)
아마 김종성 작가는 과학을 사랑하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의 사상이 담긴 모든 것(과목의 철학이 아니라 아는 것을 사랑하는 'philosophy'로의 철학)의 덕후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는 60여명의 철학자들이 그러져 있는데 작가는 그 중 여섯명에 주목했다.
왜 60명 중 이 6명에 주목한 것일까?
플라톤은 서양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주석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철학을 대표하는 대학자이자 그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면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려질만큼 신이 만든 우주에 대한 목적론적 고찰의 결과인 이데아론대표로 가운데에 놓고, 제자이면서 정반대로 경험과 관찰로 확인할 수 있는 개별적 본질을 우선시 하는 행보를 보이며(그가 바티칸의 벽화에 그려져있는 것이 이미 철학이다)손바닥으로 땅을 가리키며 인간에 집중한 아리스토텔레스로 철학의 큰 틀을 중심에서 소개를 하고있다.

그래서 나는 라파엘로가 <아테네 학당>을 그린 이유가 철학의 다양한 면모를 하나의 그림에 그려넣어서 철학의 다양성을 나타냄은 물론 그것을 통하여 철학의 진정한 모습을 알리려고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머지 학자 네명을 저자가 선택한 이유도 생각해보았다. 플라톤과 함께 그려진 그의 저서 <티마이오스>에 적혀진 현시대와 동떨어진 우주론을 프톨레마이오스의 관측 중시의 현대의 우주론과 시각을 함께하는 천문학적 사유를 보여주며 철학의 상호 보완의 가능성을, 교과서에 실릴정도로 그의 이름을 딴 수학법칙이 널리알려졌음에도 수학 뿐만아니라 숫자로 과학과 예술에 까지 미치는 피타고라스 철학으로 대변되는 국한되지않는 무한성과 가용성, 논리적 철학이 하나의 의견을 넘어 세상이라는 시스템에 새로윤 규칙들을 규정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컴퍼스의 신, 아니 기하학의 대가 유클리드, 남성위주의 수천년 속에서도 자신을 구속하는 신앙에 대한 사유로 한명의 오롯한 철학자였던 아베로에스까지.
변화무쌍하면서도 오랜시간 인류의 중심에 위치하며 다양한 변화에 큰 역할을 했던 철학을, 애정어린 라파엘로의 시선이 가득 담긴 그림을 통해 살펴보며 철학은 우리 인간의 본성과 가장닮은, 인간이 이룩한 모든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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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가 사랑한 철학자들 - 예술은 어떻게 과학과 철학의 힘이 되는가
김종성 지음 / 비제이퍼블릭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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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화가 라파엘로가 바라본 철학의 이미지.
60여명을 그려넣어야할만큼 다양하고 모두가 중요하며 유의미했다. 하나의 그림만을 위한 방대한 도슨트. 진정한 덕후란 하나를 위해 여러개를 깊게 파야하는 것임을, 세상은 덕후가 바꾸는 것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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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의 사라진 작품들 - 팔리거나 도난당하거나 파괴된 그래피티 51
윌 엘즈워스-존스 지음, 서경주 옮김 / 미술문화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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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예술의 형태는 참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장소에 국한되지도 않으며, 상상하지도 못했던 재료들을 사용하여 이것이 진정 예술작품인지도 헷갈리게한다.
작품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정도이다.

이런 캔버스를 벗어난 예술을 하는 사람 중 가장 유명하고 여러 이슈를 몰고다니며 뉴스에 자주 거론되는 예술가는 아마도 #뱅크시 일 것이다. 벵크시는 투명 필름지에 도안을 그린 후 오려내어 원하는 곳에 붙인 후 물감을 두드려 채색하는 스텐실 기법을 사용하는 작가로 폐허가 된 건물 벽, 교통 표지판, 가게 입구의 셔터, 신문 가판대 뒷 벽 등 다양한 장소에서 많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가장 적절해 보이는 장소에다 만들어냈다.

결국 그의 작품에는 그 작품이 위치하고있는 ‘장소’까지 포함해야 완전한 의미를 갖춘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유명해지고 작품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그의 작품을 ‘소유’하려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뱅크시의사라진작품들 (#윌에즈워스존스 씀 #미술문화 출판)은 그 장소의 의미가 결여된 ‘사라진’작품 51점을 소개하고 있는데, 작품을 다음세대까지 보존하기 위해서(그림을 가져간 사람의 주장에 따르면 뱅크시 작품의 80%가 소실되었단다. 과연 그 중 본인이 소실시킨 것은 몇개나 될까)라는 이름으로 그런 행위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신문 가판대 뒤의 그의 그림을 1000파운드에 팔리고 다시 25만 파운드에 되파는 것이 과연 예술을 보존하기 위함인지 스스로를 제외하고는(스스로도 알고있다는 것을 안다)다 알고 있다.

애초에 그래피티 장르는 공동체적 관점에서 봤을 때는 거리의 분위기를 해칠 수 도 있고, 다른 사람의 소유물(담장 건물 벽)들을 훼손하는 행위일 수 도 있어서 보통 익명으로 작업한다.
그래서 구획 공무원들에 의해 지워질 수도 있고, 뱅크시의 경우에는 그래피티의 대가 킹 로보와의 불화로 팀로보에게 작품이 덮어지기도한다(이건 약간 자업자득같은, 어쩌겠다 예술가란 그런 존재인데)

하지만 보존하겠다는 이유로 캔버스에 똑같이 복제되어 옮겨지기도 하고, 전기톱으로 깔끔하게(?)도난 당하기도하며 의외로 정말로 보존하겠다는 이유로 가져가서 익명으로 보존하다가 걸린 ㅋㅋ 건축하고 있다.
그 건축가에게 처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라고 묻자, 도저히 모르겠다며 그래서 자식들에게 물려주려한다며(폭탄돌리기😂)같은 유쾌하고도 진심가득한 사라짐?도 존재한다.

이것은 예술의 훼손일까?
예술에 대해서 너무나 당연하게도 잘 모르지만, 예술작품은 작가의 의도가 매우 중요하긴 하다. 그래서 수많은 전문가들이 열심히 시대적, 시기적 배경들을 연구하고 평가하고 밝혀내고 책으로 써서 알려주려 하겠지.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여러 예술분야 중 그림은 의미 전달에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좋게 말하면 관람객들의 감상평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변기에 서명을 하고 작품이라 하고, 벽에 바나나를 테이프로 붙여놓고(이 바나나는 심지어 전시중에 먹혔다), 뱅크시의 그림 중 하나는 낙찰된 후 파쇄되었을만큼 기상천외하니, 그만큼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상도 더욱 중요해지지않았나 싶다.
호평이든 혹평이든, 그 작품에 대한 인지도, 인기가 되어버리니 미술상들에게는 뭔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뱅크시의 작품도 관람객들이 봐주어야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관람객들이 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 이미 뱅크시는 작품자체로도, 작품이 썰려나가는 이야기로도 이미 다음세대로 전해질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어느 누구의 작품보다 더 후세들이 오리지널을 감상할 확률이 극히 희박하다.

이 책처럼 도록으로만 감상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치 예전에는 있었다며,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멸종된 생물들 처럼 말이다.

난 우리 사람들의 마음에 상대방을 생각하는 인류애라는 거창한 이름으로도 불리는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의젓함이 있다고 믿는다.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사라질 확률이 높았던 작품들이 안전하게 보관되고 있는 것은 반길만한 일이다.
그래도 의젓함으로 충분히 장소까지 오리지널을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그 뒤에도 개인 창고가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고 맘껏 평할 수 있게 약간의 시간들을 배려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우크라이나에도 작품을 남기는데에는 돈을 넘어서는 뚜렷한 의도가 있기때문이지 않겠나. 조금이라도 더 뱅크시의 의도가 존중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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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티네 - 일본 문학의 뿌리를 찾아서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석희 옮김 / 이소노미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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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티네. 소나타의 작은형식. 피아노의 근간이자 기본.
아마 소나티네라는 제목은 나쓰메 소세키 문학의 기본이자 근간이 되는 책이라는 뜻이 담겨있겠죠? 나쓰메 소세키의 글들이 100년이 넘도록 살아남아 여전히 읽힌다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죠. 이소노미아의 올바른 번역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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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는 다정하게 씁니다 - 나의 안녕에 무심했던 날들에 보내는 첫 다정
김영숙 지음 / 브로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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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자신의 현재모습과 상태를 자각하며 끝없는 의문을 가지며 살아가는사람이 얼마나 될까?
심지어 아이둘을 키우며 방송작가라는 칼퇴근이라는 것을 실현하기 어려운 능력이 너무나 중시되는 직장에서 25년이라는 시간을 버텨내면서 말이다.

너무 지치고 힘들고, 말도 안되는 스트레스로 뇌의 전원을 내리고 그냥 좀비마냥 으어으어 하며 오늘이 날짜가 어떻게 되는지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살아갔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마 대부분 그렇게 살고있지 않을까? 그렇게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체 살다 갑자기 마를리없다는 듯이 흐르는 눈물과 우울감이 찾아오면 내가 왜이러지라며 당황스러워 할 것이다.

하지만 #에필로그는다정하게씁니다 ( #브로북스 출판)의 저자 #김영숙 작가는 그 지난한 세월을 처절하게 살아냄과 동시에 너무 늦기전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삶을 살았고, 살아왔고, 살아오고 있다. <에필로그는 다정하게 씁니다>는 그런 작가의 하나의 일기장같은 책이었다.
이십년 동안의 일기장을 넘겨보는 것처럼, 악으로 깡으로 버티던 시절부터 무엇이 잘 못되었다를 인지하는 시기, 그리고 고쳐나가고 깨달은 지금까지, 작가는 이래라 저래라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을 내리지 않고 그냥 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내는 소리처럼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귓바퀴에 부딪혀 들었으면 다행이고~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청자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작가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아마 작가는 이 책을 쓰면서도 끊임없이 자기가 대화하며 격려하고 치하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김영숙 작가의 삶에 감정이입을 했을 워킹맘들이 아주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자연인이다’의 메인작가이라는 일반적일수고 특별할 수 도 있는 커리어가 다를뿐, 일하고 애키우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다 같았을 것이다. 늦게 퇴근해 가슴이 아플만큼 젖이 부풀어오른 부분을 읽을때는 우리 어머니도 떠오르고(나는 분유먹고 컸댄다 tmi)사회에서 만난 워킹맘들이 생각났다.

그렇지 않아도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자식들을 최우선순위에 놓고 하나라도 더 해주고 하려고 하는, 그럼에도 겨우 몇시간 나는 그 짬을 자기자신을 위해 독서와 같은 취미로 보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분들을 독서모임에서 알게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드는 요즘인데, 참 대단하고 멋지고 존경스러운 것 같다.

물론 나는 아이를 키우지않으니 감히 안다고 말을 못하지만,
김영숙 작가가 ‘자연인’들을 보며 자기를 성찰했듯이, 독서, 필사, 운동, 러닝, 사진, 미술전시관람과 같은 자기 자신과 조용하게 대화할 수 있는 어떤 외부의 자극을 수용하는 시간을 갖고있다라는 것이 참 멋졌다.
정말 어른을 보는 느낌이랄까?
회사에서 라떼는 말이야~ , 회사에 애정이 없어~ 라며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는 ‘윗분’이라는 이름의 어른들과는 차원이 다른 어른이었달까. 덕분에 스스로에게는 무뚝뚝한 나 스스로도 나와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K맞이로써 응당해야하는 부분이 있고, 사회에서도 나에게 요구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 부분들을 모두 해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에게는 다정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어르고 달래기 위해 쉬거나, 미루거나 하면 마음은 잠시 나아졌지만 꼭 무언가 문제가 벌어지곤 했다.
물론 나의 그 ‘셀프 어르고달램’때문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다른 원인은 떠오르지않았고 떠올릴틈도 없었다. 그러니 나를 다시 옥죌 수 밖에.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왔던 자연인들도 잘나가던 영광과 가정을 버리고 자연을 선택한 이유가 남들의 목소리를 듣기만 바빴던 지난날을 후회하기 때문이라 한다.
거기에 특별히 ‘자연’에 감화된 것은 위에 잠시 나왔던 ‘충조평판’을 하지않고 그냥 묵묵히 옆에 있어주는 것에 큰 위안을 받았다는 것이었고.

나 스스로도 위로가 필요한 존재이다.
하지만 그럴때 아무리 친한 누군가를 만나도 나를 위해서 할수 있는 말은 충조평판 뿐이다. 그 마음은 고맙지만 그런것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혼자만의 대화가 중요하다.
혼자만의 대화는 자연의 그것처럼 조용하고 묵직하다.
그냥 가만히 관조하고 옆에 ‘내’가 있음을 느끼게 해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꼭 산 속에서만 살아야 자연인인가, 그렇게 묵묵하게 자연스래 나 스스로의 곁에 자연스레 자리를 지켜주면 그것도 자연인 아닐까?

글로, 내 귀에 눈에 코에 피부에 묵묵하게 와닿은 자연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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