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과 나의 사막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3
천선란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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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세기.
상상도 할 수 없는.
인류가 살아온 것만큼의 시간이 더 지난 아주 먼 미래.
지구는 미생물마저 살아낼 수 없는 바싹 마른 사막이 되었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인간들이 있었다.
조, 랑, 지카. 그리고 20세기 전에 만들어진 로봇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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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속에서 얼굴의 1/4만 나와 있던 로봇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꺼내어 고치고 전원을 켜 고고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던, 고고의 삶의 목적이었던 랑이 죽으면서 #랑과나의사막 (#천선란 지음 #현대문학 출판)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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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고고는 목적을 되찾기 위해, 과거로 갈 수 있는 땅이 있다는 검은 폭풍 너머로의 여행을 떠나는 고고. 고고의 여정은 또 다른 인간과 로봇, 외계인을 만나면서 자기 스스로의 존재와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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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인간 고유의 영역일까? 정말 몸에 존재하지 않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일까? 호르몬과 화학물질에 의한 반응이 아닐까? 그렇다면 로봇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감정은 학습될 수 없을까? 또 다른 누군가를 보고 이해하고, 깨우치고, 주고받고, 공감하는 것이 감정 아닌가? 그렇다면 뇌와 심장이 없어도 소중한 사람을 바라보고 따라 하고 표현해내는 로봇의 그것은 감정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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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은 감정이 없다라는 말을 <랑과 나의 사막>에서 가장 진리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애석하게도 고고 본인이다. 애석하다, 침통하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라고 ‘생각’하고, 오류처럼 예고 없이 밀려오는 랑과의 기억에 욕을 뱉어낸다. 그것들이 이미 감정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살리와의 대화를 통해 고고는 모든 것을 깨닫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미지의 그곳으로 이제는 잘 움직이지도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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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의 여정과 49세기의 49라는 숫자에서 49재가 떠올랐다. 사람이 내세로 떠나 다시 왕생하기 위해 걸리는 49일 동안 극락왕생을 빈다.
죽은 이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남은 자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잘 보내주는 것은 잘 매듭짓는 것이다. 잘 매듭짓는다는 것은 다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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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인류가 유지되었지만 완연한 죽음, 멸망으로의 길이 49세기가 걸렸다. 이제 49일이 끝난 것이다.
앞으로 인류의 앞에 새로운 시작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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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 이끌려 생각해 본 것이지만, 솔직히 인류 전체보다 랑과 고고 둘의 서사에 더 주목이 되긴 했다. 죽은 랑을 의지와 상관없이 떠올리며 그 기억들을 안고 나아간 고고의 여정은 기간과 관계없이 49재 같았다. 기리고, 잘 보내고, 잘 정리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치유와 재탄생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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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누가 로봇이고 외계인이고 인간인가.
똑같이 ‘감정’을 나눌 수 있다면 함께 더불어 살 수 있지 않을까. 점점 내 편, 네 편 사이의 선이 뚜렷해지는 요즘에 필요한 이야기였다.
구분 짓지 않고 더불어 사는 것, 자신을 인정하는 것, 누군가를 위하고, 애도하고, 다시 일어나 걸어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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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마른 것은 사막 못지않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느 것 하나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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