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와인 이렌 네미롭스키 선집 7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하진화 옮김 / 레모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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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은 굉장히 중요하다.
기억이 아주 오래 남기도 하고, 당시의 경험과 자꾸만 떠오르는 기억이 평생 가져갈 성격과 태도, 가치관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고독의와인 (#이렌네미롭스키 지음 #레모 출판)은 그 중요한 시기를 지나가는 열 살짜리 엘렌의 이야기이다. 열두 살, 열다섯 살을 지나 완연한 성인이 되기까지 엘렌의 순간순간을 따라가는데, 어른(나이를 좀 더 먹은)의 입장에서 보면 참 안타깝다. 엄마는 자식을 돌보지 않고 정부들을 만나러 다니며 집을 비우고, 아빠는 가정을 지키고 싶어 하지만 돈을 모으는 것에 더 가치를 두고 마찬가지로 집을 비운다. 아빠를 사랑하는 딸 엘렌은 엄마의 부정을 눈치채고 엄마의 씀씀이를 감당하느라 큰 돈을 벌러 아빠가 집에 있지 않다는 생각에 엄마를, ‘그 여자’를 미워한다. 살림살이는 전쟁 특수를 누리며 떵떵거릴 수 있는 부자가 되었지만 엘렌의 삶은 나아진 것이 없다.
‘그 여자’와 아빠는 각자의 이유로 오히려 더 겉돈다.

어린 엘렌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신기하게도 미래의 엘렌이 갑작스럽게 등장해서 ‘과거의’ 엘렌의 감정과 생각들을 수정한다. 단순한 소설의 형식이 아닌, 미래의(현재의 엘렌)이 과거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그 기록한 것을 한 번 더 읽으면서 수정하는 느낌이랄까.
자신의 일기를 정독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미래의 엘렌은 과거 자신의 일기를 정독하고 수정까지 한다.

그런 엘렌의 수정 부분들을 보면 과거의 어린 엘렌의 생각의 시야가 좁았다고 느껴진다. 뭐랄까, 너무나 부정적인 생각에 갇혀있다고 해야 할까. 한편으로는 살아가면서 모난 부분들이 둥글게 깎여 나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삶에 수긍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것도 정답 또는 오답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이 걸어 나가는 길. 인생에서는 정답도 오답도 없으니까. 하지만 부정하고 복수하겠다는 마음으로 가득 찬 삶은 불행할 것이라는 것만은 확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좀 더 넓어진 시야로 바라보는 미래의 엘렌의 시선에는 부정, 복수, 심지어 수긍뿐만이 아닌 단단한 긍지 같은 것이 엿보인다. 그것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궁리해낸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훈장과도 같은 것이다.

결국 현실이 된 미래는 조촐하다.
하지만 그 조촐함을 손에 쥐고 엘렌은 마침내 무언가에 휩쓸리지 않는 완전히 자유로운 첫발을 내딛는다.
부모의 방치로 고독의 시간을 겪었던 엘렌이 마침내 스스로 걸어내는 그 순간도 고독하지만 이 두 고독은 같은 단어로 담아낼 수 없을 만큼 다르다.
둘 중 하나는 삶의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을 만큼 고요하고, 차분하며, 단단하다.

갓 코르크 마개를 연 와인은 떫다. 단단히 닫혀 있어 아직 그 안에 숨겨진 아름다움들이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공기라는 이 세상과 어느 정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엘렌의 고독도 그러했다.
삶을 살아내며 고독은 세상과 적절히 반응하여 아름답고 향긋한 빛과 향을 내는 인생의 약이 되었다.
물론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과하면 독이 되지만 이제 갓 아름다움을 뽐내기 시작한 엘렌이 또 살아내면서 적당함을 찾아낼 것이다.

그럴 수 있게 누구보다 먼저, 일찍 떫은 고독을 그토록 맛보았으니 말이다.

와인과 같은 삶을 따라가며 외면하지 않고 마주해 낸 시간의 힘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향긋한 향이 어디선가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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