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물리학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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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동안 글과 내 눈 사이가 뿌옇다.
내 안으로 들어오는 책 속 정보와 나의 인식사이도 마찬가지로 뿌옇다. 새로운 것들을 마냥 새롭게, 뚜렷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글 속에서, 내 안에서 표류한다.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슬픔의물리학 (#게오르기거스포디노프 지음 #문학동네 출판)에서 만난 오래된 신화 속에서 부터 주욱 미궁에 갖혀져있는 미노타우르스가 낯설지 않다. 오히려 동질감을 느꼈다. 그는 괴물이 아니다. 자신이 행한 죄는 아무것도 없으나 자신이 지은 죄로 한창 엄마가 필요한 나이에 갖혀진 가엾은 인간 아이일 뿐이다.

책 속의 소년 ‘게오르기’도 미궁 속 길을 잃은 인간 아이이다. 그의 미궁은 타인의 기억이다. 타인에게 자신이 삽입되어 그 사람이 숨겨놓은, 심지어 그 사람조차 이제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들을 고스란히 경험하고 공감한다. 공감의 방식은 슬픔에 감화되는 것이다.
자신의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나를 버리고 슬픔이라는 통로로 다른 사람에게 삽입되는 과정을 할아버지에게도, 민달팽이에게도, 개미에게도 겪으면서 종착지를 알 수 없는 여행을 떠나고 있는 소년은 어디까지가 자신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소년은 확장되고 있을까 미궁 속에 갖혀있는 미노타우르스인가.

소년의 끝없는 확산은 공기 중에 기체가 확산되는 것처럼 은은하게 퍼져나가 전체를 공감한 슬픔으로 가득 채운다.
그렇게 결국 소년도, 독자도 하나의 깨달음에 도달한다.
이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 모든 것이 ‘나’이면서 그와 동시에 세상 그 자체라고.

신화 속 마노타우르스는 괴물도 아니고 지성이 없는 동물도 아니었다. 소를 닮은 얼굴 아래에는 여린 살이, 심장이 펄떡이고 있는 어린 인간이었다.
엄마를 잃고 인생을 잃고, 미궁 속에서 길을 잃고, 살아갈 이유를 잃고, 오로지 손에 잡힐듯 그의 안을 그의 주변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슬픔만이 지금 이것이 현실이라는 따끔거리는 자극만이 유일한 동행자로 남은 채.

소년 ‘게오르기’가 신화 속 미노타우르스에 병적으로 공감하듯이 이 책을 읽는 우리도 이 안의 모든 생명체의 슬픔을 공감한다. 아마 어떤 종 일지라도 슬픔이 기압을 가진 공기처럼 나를 짓누르는 것은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들숨으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산소가 그러하듯 슬픔도 우리를 움직이고 나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슬픔이 우리에게 필요없고 제거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기 위해 끌어안고 가야하는 것이라면, 나뿐만이 아니라 내 곁의 소중한 이들의 슬픔도 함께 감당하는 것이 응당 당연한 것일테다. 슬픔이 아무리 우리를 살아가게 하더라도 아프다는 것만큼 여전하니까, 나눠 부담한다면 슬픔이 우리를 억누르는 물리력이 조금은 약해질 것이고, 좀 더 견딜만해지겠지.

그렇게 슬픔이 만연한 이 세상에서 함께 나누는 이가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쁨도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뚜렷한 증거가 될 것이다.
눈에는 눈물이 맺히지만 입꼬리와 화학작용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큰 충만함이 내 안을 채우는 경험. 글 속 주인공이 슬픔을 공감하듯 우리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다.

슬픔이 세상 한 쪽에 놓여있다면 같은 선상에 기쁨도 분명히 놓여있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슬픔의 물리학은 기쁨의 물리학도 될 수 있다.

슬픔이 도처에 있듯이, 기쁨도 도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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