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평등 - 어떻게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 것인가
대니얼 챈들러 지음, 홍기빈 옮김 / 교양인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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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롤스. 20세기 철학자. 1971년 ‘정의론’, 모든 사람이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는다(제 1원칙 기회 균등의 원칙), 최소 수혜자의 몫이 극대화 되도록 (제 2원칙 차등의 원칙)내 머리에 들어있던 존 롤스에 대한 모든 것이다.

달달 외우기만 했지 그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그 자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마 취업준비의 목적이나 전공이 아니라면 이 정도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우리나라가 의대지상주의로 자녀의 20년 가까운 세월을 몰아붙이는 동안, 중국은 과학, 공학에 집중하여 미국를 긴장시키는 열강이 되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내가 학생일때부터 아무 쓸모없다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왔던 순수(자연)과학에 투자한 것이 그렇게 큰 성과로 돌아온 것이다.

존 롤스도 그런 정치철학저였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정립해나갔던 것들은 말그대오 기초개념이었다. 그 자체로 정책에 바로 써먹거나 하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실제 정치판에서는 그의 명성이 제 빛을 발하지 못했다.

기본적인 틀도 없이 응용과 실천으로 넘어가면, 싱크홀처럼 무너져내려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지금 우리가 정치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기피하며, 정치색을 가지는 것을 비정상으로 인식하는 것과 같은, 그런 커다란 구멍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방법은 하나, 기초부터 다시 그 구멍을 차근차근 채워나가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뉴스에서 보고 듣는 진보, 보수, 자유주의는 처음 그 단어가 만들어졌을 때의 본래의미를 잃은 상태다. 빨갛고, 파랗고, 시장자유주의를 완전히 인용할 것이냐, 완전히 거부할 것이냐. 모든 것이 이분법적으로 나눠지다보니 오해가 생기고 그 오해는 왜곡을 낳는다.

오해와 왜곡이 가득한 것을 누가 좋아하고 관심을 갖겠나. 국민의 관심이 사라지니 대변자의 권리를 받은 정치인들은 국민의 뜻이라며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다.
과연 그들도 진보, 보수, 자유, 평등의 진짜 의미를 알고있는 것인지 의아할 정도이다.

#자유와평등 (#대니얼챌든러 씀 #교양인 출판)은 그 어느때보다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목소리가 큰, 그러나 그 어느때보다 불평등한 현실을 바로잡을 방법으로 존 롤스를 가져왔다.
위에서 언급한 롤스의 개념들을 가져와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고 있다.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평범한 사람의 목소리를 확대시키는 ‘정치적 평등’, 부의 재분배가 아닌 수익이 발생하기 전 부와 기회를 분배하는‘사전분배’, 기업의 소유자에게 권한이 몰려있는 것이 아닌 노동자의 존엄을 위하는 일터에서의 권력 재분배가 대니얼 챌들러가 존 롤스에게서 길어올린 해결책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 대부분은 이미 학문적으로 완성돠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새로운 학문을 만들어내기 위해 애를 쓰는 것보다 학계에서만 계루되고 있는 이미 존재하는 정답을 우리 세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렇게 켜켜이 인류의 문제와 해결책들이 쌓여 역사가 되었다. 역사와 고전에서 여전히 우리가 깨달음을 얻는 것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는 증거이다.

우리가 오늘과 미래를 위해 힘을 쏟아야하는 방향성을 잡아주는 나침반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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