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 머묾 세계문학 사랑 3부작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정지현 옮김 / 머묾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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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스콧 피츠제럴드의 모습은 영화 속 모습으로 강렬하게 박혀있다. 젤다와 함께 낭만의 도시 파리의 밤을 파티 이곳저곳을 다니며 즐기는 늘씬하고 세련된 모습.
그 모습에 반해 그제서야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영화를 보며 함께 잔을 들었었다.
그래서 그는 고생따위 없는 구김살없는 작가인줄 알았더랬다. 하지만 그는 생계형 작가였고 단편을 이십년동안 백이십여편을 써냈다. 길게 쓰는 것 보다 짧게 쓰는 것이 어렵다며 쓴 글을 또 손보고 손보기를 반복하는 완벽추구형 작가가 그렇게 많은 글을 써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을까.

<위대한 개츠비>도 줄일 수 있을만큼 줄였더라면 지금의 절반도 되지 않았을 거라고 고백하는 서신도 있었다.
절반 분량의 개츠비도 물론 훌륭했을 것이다.
그의 단편들을 읽어보고 확신했다.

#사랑에관한짧은이야기 (#F스콧피츠제럴드 씀 #머묾 출판)은 피츠제럴드의 단편 중에서 ‘사랑’에 관한 작품들을 추려 만든 단편선이다.
단편을 왕성하게 써내려갔던 20년대 작품이 주를 이루고, 그가 갑작스래 세상을 떠나고 나서 발표된 40년대 작품까지 작가가 생각했던 사랑이 흡입력 있으며 군더더기없는 문체로 다뤄지고 있다.

<위대한 개츠비>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겨울 꿈’을 비롯해 주인공의 인생이 급진적으로 한순간에 바뀌는 ‘개츠비’계열 이야기들이 다루고 있는 사랑은 낭만적이지 않다. 성공한 후에 멋진 결혼을 하려고 타지로 떠났다가 타이밍을 놓치기도 하고, 능력은 뛰어나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상대방 부모가 반대하기도 하고, 수없이 남자를 바꿔가며 변덕을 부리지만 그럼에도 헤어나올 수 없는 여자에게 빠져 결혼식을 취소하기도 한다.(그리고 물론 그 마성의 여성은 너무나 당연히 그를 떠나간다.)
사후에 발표된 작품에서는 수십년 전 사랑을 전화번호부를 뒤져 찾아가서 야릇한 분위기를 피워내지만 기억의 오류로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식어버린다.

이렇게 피츠제럴드의 단편 속 사랑은 뜨거우나 허망하고 아련하나 생생하다. 그러나 해피엔딩은 없다. 내가 있어야할 곳은 여전히 그녀의 옆임을 깨달으면서 한번 더 이별하고, 결혼까지 파투내면서까지 매달렸던 여성에게 또 버림받고 독신으로 살아가면서도 이제 더이상 그녀가 ‘아름답지’않다라는 것을 깨닫고는 더이상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은 이세상에 없다며 이별보다 더 쓸쓸해한다.

모두가 어찌보면 뻔한 사랑을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 뻔한 사랑이 평생 잊지못할 진짜 사랑이었다. 희극보다 비극에서 더 무언가를 깨닫고 성숙해진다던가. 사랑에 실패한 주인공들이 그래도 언젠가는 결국 좋은 사랑을 만날거라는 응원을 하게 된다. 사랑은 실패했지만 그 실패가 그들의 인생의, 사랑의 끝은 아님을 알지만 그럼에도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열렬히 진심으로 했던 사랑은 평생 잔향이 남으니까.

솔직히 인생에서 우리는 어찌보면 결과적으로 딱 한번 사랑의 성공(결혼)을 이룬다. 그 당시에는 성공이었던 사랑들도 결국엔 실패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마음 찢어지는 사랑을 기꺼이 다시한다.
오랜 시간을 들여 그 사람을 만나고 대화가 끊기는 어색한 시간을 버텨내고 썸을 타고 연인이 되어 영원한 미래를 약속한다.

대부분 아픈 경험이 됨에도, 우리는 다시 기꺼이 사랑한다. 인생을 말할 때 사랑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원래 우리는 둘이서 하나였다는 신화가 사실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또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다.

실제로 가난해서 거절당하고, 직업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파혼했다 다시만나 결혼하고 결혼하고 나서도 아내의 정신건강문제로 고통스러워했던 피츠제럴드가 생계를 위해 글을 씀에도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이토록 많이 써낸 것은 특별하면서도 보통의 평범한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루어진 사랑이 없지만 그래도 마음에서 사랑이 샘솟는다. 꺼져버린 줄 알았던 재 속에서 잔불이 남아 다시 불을 키우듯이 삭막한 우리 마음 속에서 다시 사랑을 불피우게 하는 짧지만 그것으로 완벽한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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