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를 입은 비너스 을유세계문학전집 146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지음, 김재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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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히즘.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받는 것에서 쾌락을 느끼는 용어. 학창시절에 애들이랑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M이냐 S냐 낄낄 거렸던거 같은데 그 단어의 출처를 이제서야 영접하다니.

#모피를입은비너스 (을유문화사 출판)을 쓴 작가 #레오폴트폰자허마조흐 의 이름에서 유례된 이 단어. 이 단어 그 자체, 위에서 말했던 M과 S가 이 책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굉장히 자극적이다. 하얀건 하얘서, 붉은건 붉어서, 어두운건 어두워서 그자체만으로 괜시리 책을 읽는데 꼴깍 침이 넘어간다. 책이 좋은 점이 혼자서도 볼 수 있고 다함께 볼 수도 있다는 건데 다함께 봐도 역시나 각자 따로 보는 모양세이기에 괜히 헛기침하지 않아도 된다.

영화관이었으면 너무 똑바로 쳐다보는것도, 시선을 돌리는 것도 애매해서 진땀이 나는데 말이다.
물론 그런 영화들 처럼 살색이 난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두 다 알고 있지 않나? 오히려 살색이 적어서 더 자극적인 것들을.

티치아노의 유명한 그림 ‘거울을 보는 비너스’ 속 비너스에 모피를 입힌 그림과 마조히즘적 성향을 가진 주인공 제베린을 발밑에 깔고 서있는 채찍을 들고 선 모피입은 여인을 그린 그림이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친구들을 응접하는 곳에 걸려있다.

자신의 성향을 숨기지만은 않는 성격을 뜻하는 것일까.
제베린은 자신이 원하던 이상을 이루어 줄 것만 같은 반다에게 다가가 노예계약을 권한다. 그렇게 반다에게 모피를 입히고 자신은 철저한 노예로, 학대받길 원한다.

칼같이, 완벽하게 준비된 노예계약이었으나, 실상은 계약대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애초에 사람 사이의 일들이 계약대로 착착 진행된다면 계약서는 필요 없는 것이 아닐까? 물론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행동이 스스럼이 없어야 하고 개인의 이익이 둘의 이익과 결이 같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둘의 계약은 누군가에겐 꺼림직한 것이었고 둘의 이익으로 나아가지도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학대를 받기위해 나를 사랑해 달라 나랑 결혼해 달라고 조건을 거는 것 그것은 학대 받는 것이 아니라 학대하는 것이 아닐까.

마조히즘을 원해서 하는 계약이 실은 사디즘이라는 모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위해서는 상대방의 쾌락을 위해 자신도 피, 땀, 영혼을 바쳐야 한다는 것.
결국 마조히즘이든 사디즘이든 권력을 가지고 행하는 자만이 쾌락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동등한 듯 보이나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사랑과 닮았다.

끝없이 약자는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한다. 그렇게 강자라 여겨지는(스스로는 강자라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이는 끝없이 시험에 들며 괴롭힘을 당한다.
마조히즘이라면 괴롭힘을 당했으니 즐거워야 하지않을까. 하지만 여기서 쾌락은 약자라 생각했던 사람의 몫이다. 쾌락을 얻으려면 사디즘이 되어야하는 것일까.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가까이, 가장 친밀한 관계라는 사랑에서도 태초에 원래 그랬던 것 마냥, 인간의 무의식 속 본성마냥 관계 속 권력의 역학이 존재한다.

얼마나 능숙하게, 회복될 수 있는 만큼만 괴롭힐 수 있는지(사디즘)가 마조히스트로 만족할 수 있는 꿀팁이다.

그렇게 사랑 앞에서 여성은 제베린의 생각을 빌리자면 남성에게 노예이거나 폭군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말 그 수 밖에 없다면 기꺼이 폭군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만족, 쾌락, 사랑을 위해서.
여기서 사랑은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겠지만.

스스로의 사랑 둘 사이의 사랑의 방향이 같기를.
노예와 폭군의 기질이 둘 아닌 외부에 존재하길.
그렇게 둘만의 세상은 평화롭고 핑크빛이길 문득 바라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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