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
김병운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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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이야기들은 옆으로 봐도 뒤집어 봐도 아 이 이야기를 하는구나 티가 난다. 아무래도 의도가 의도이다 보니 맘껏 드러내는 것이다. 퀴어를 주제로 한 책들도 그러하다. 읽다보면 아무 문제없음을 이 세상이 문제가 있음으로 입증하는 경우가 많아서 물론 동의하고 인정하는 바이지만 혼나는 기분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서 책을 덮으면 뭐랄까 개운하지 않다.

하지만 #거의사랑하는거말고 (#김병운 지음 #문학동네 출판)은 달랐다. 읽기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서야 퀴어 소설인 것을 알았고, 책을 덮은 뒤에도 마냥 따뜻하고 감동적이었다. 전면에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내는 방법이 달랐을 뿐.

이 책 속의 주인공들은 세상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다. 기꺼이 세상이 원하는, 세상이 정답이라 생각하는 모습의 가면을 쓴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한사람씩은 곁에 있으니 괜찮은 것 아니냐며. 그 한사람을 지키기위해서 이정도쯤이야라는 생각으로. 물론 마음은 편하지 않지만 한 사람의 이해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바운더리를 넓힌다.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고 받아들이려하는 노력. 남이 되어 생각하려는 노력이 스스로에게 상처가 되었음에도 바뀌지 않았다. 그런 주인공들과 함께 시선을 끄는 등장인물이 바로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너무나 완벽한 존재이다. 조상의 잘못으로 나이가 들면서 타락하는 존재랄까. 아이들의 행동이 이 세상을 대하는 정답이고 타락한 어른들을 감화시킬 수 있는 누군가의 배려라고 생각하는 나의 입장에서,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는 등장인물을 말 그대로 꼬옥 안아주는 모습이 이 소설을 보는 우리들이 알아야하는 정답이라고 확신했다.

손주가 삼촌과 같아질까 걱정하는 것을 알아채서 자신이 평생 삼촌이랑 놀거긴 한데 덜 놀게 될 것 같으니 삼촌이랑 잘 놀아줘야한다고 부탁하는 모습이나, 왜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삼촌이 함께 여행 간 사람이 남자가 아닌 여자라고 거짓말을 하는 모습에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어른과 기존사회가 어떻게 정답을 오답으로 바꿔가는지를 보여주는 이 장면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 책은 다수多數 라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우월주의 다름이 아닌 차별, 그것을 넘어서는 돌연변이, 질병으로 퀴어를 묘사하지 않는다.
보통의 사이좋은 딸과 엄마의, 평생을 함께한 동성친구끼리의, 사랑했던 연인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름답게 담겨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퀴어인지도 알아채기 쉽지않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이야기가 보통의, 평범을 노래한다.
그 노래는 자연스레 우리의 눈에 귀에 내려앉아 마음을 데운다. 데워진 땅에 촉촉한 비와 따스한 햇살이 내린다.
우리와 같은 일상의 보통의 아름다운 가능성이 싹을 틔우고 뿌리내린다. 그렇게 일대를 푸른빛으로 물들인다.

<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는 눈치를 보느라 맘껏 사랑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오히려 나를 있는그대로 받아주고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을 위해 드러내지 않음을 택한 숭고한 사랑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오롯이 나로 존재할 수 있는 큰 나무 밑 쉼터.
따가운 햇볕은 막아주고 그늘 밑 땅은 따뜻함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으며,따뜻하면서도 시원한 훈풍이 기분좋게 불어오는. 그곳을 열렬히 사랑한 것이다.

맘껏 그러내고 주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은, 우리가 그런 나무를 한그루씩 더 심는 것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나무가 빽빽한 숲이 되어 어디에서든 따가운 햇볕을 걱정하지 않고 따뜻한 시선 가득한 환경에서 맘껏 숨쉬듯 사랑하게 한다면 ‘거의’가 아닌, 자신만을 위한 ‘찐사랑’을 눈치보지않고 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세상이 만들어 주고 싶다는 그런 마음을 평범한 보통의 이야기로 말해주는 작가와 이 책이 참 마음에 들었다.

펼칠때도, 읽을때도, 덮을때도 온기가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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