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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ㅣ 현대지성 클래식 71
찰스 디킨스 지음, 정회성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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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법.
21세기 지금에도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이 두가지가 지금의 모습을 갖게된 격변의 사건. 프랑스 대혁명.
영국이 있는 곳엔 프랑스가 있고, 프랑스가 있는 곳엔 영국이 있었던, 그 당시 세계의 패권을 다투던, 영국과 프랑스. 그 두 나라의 수도, 런던과 파리. 그 두도시에서 벌아지는, 아니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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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도시이야기 (#찰스디킨스 지음 #현대지성 출판)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무방비 상태에서 읽어서그런지 모든 이들의 삶이 생생히 그리고 잔인하게 내 안에 아직도 박혀있다. 귀족층은 부패했고 법은 아이러니 하게도 정의보다 그 부패를 보호한다. 양심이 있는 귀족들은 염증을 느껴 파리를 떠나 런던으로 향하기도 한다. 부패를 지키는 법은 시민들을 지키지 않는 것을 넘어 숨통을 죄어온다.
하지만 또 아이러니 하게도 상황이 급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당시에는 보편적인 삶의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도 주인공들은 사랑하고 복수하고 사회에서 부야받은 자신의 일을 수행하며 ‘보통’의 나날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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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계층사이의 너무나도 다른 ‘보통’의 나날들이 하루하루 쌓이다보면 어느새 격변의 날은 다가온다.
하지만 그 격변의 날에도 찰스 디킨스는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닌 그 순간에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집중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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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인생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주목되는 하나의 삶이 있다면 해서는 안될 사랑을 하는 변호사. 시드니 칼튼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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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 대변되는 이전의 삶에서 신념을 지키지 못한 시드니 칼튼은 살았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사랑을 만나 신념을 지킨남자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신념을 지켰기에 죽었으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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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 예수님이 보여준 기적으로도 유명함과 동시에 불로장생을 원하는 인간의 또다른 욕심이기도 하다. 인생 2회차와 부활의 차이점은 부활한 예수의 몸에 남아있는 못자국, 스키드마이다.
이 스키드마는 죽음을 기억하고 그것으로부터 다시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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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죽음과도 같은 삶에서 신념을 지키지 못했다는 흉터를 잊지않고 간직한 채 사랑에서 죽음과도 같은 생으로 부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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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이 아니다.
그의 죽음은 그의 사랑이 향한 그녀는 물론, 인물네 매료되어 잠시 잊고있던 대혁명 상황에 떨고있던 보통의 농민들에게도 평온한 하루를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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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을 지킨 것이 나아가 의도치 않은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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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부활로 많은 백성들이 환희에 빠진 것과 비슷해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몸뚱아리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자기의 신념,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느냐, 그것이 살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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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살아간다는 행위는 이때껏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던 신념을 지키지 못한 ‘죽은’ 사람이 용기를 내 실천으로 옮겼을 때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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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건 그 자체보다 인물들에 집중했던 이 이야기는 한사람의 ‘부활’로 대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의의를 그 어떤 역사서보다도 더 우리들의 가슴에 와닿게 전달하고 있다.
부당함에도 권위에, 삶의 힘듦에 무릎꿇고 죽은듯 살아가던 사람들이 악과 타협했다라는 스키드마를 잊지 않고 목숨을 걸고 타협하지 않음으로 모두가 진정한 삶을 살아가는 당당한 사람으로 ‘부활’한 사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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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프랑스를 깊게 겪어보지 못한 영국인이 역사서를 탐독하며 사람들에게 주목하여 천부적인 공감과 이해능력으로 참고한 역사서를 쓴 역사가보다 그 당시 프랑스를 더 잘 이해하고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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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얼룩진 역사이나 그의 삶은 마냥 처절하지 않았다.
타협하고 신념을 지키지 못한 모습이 더 처절했다.
위협을 무릅쓴 그 행위가 그에게는 살아있음을 느끼는 그 어떤 순간보다 환희에 찬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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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모습으로 그 때 혁명에 함께 했던 사람들의 환희를 보여주었다. 그들의 환희가 지금 우리에게는 숨쉬듯 , 해가 비추듯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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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50년 동안,
<두 도시 이야기>도 우리 곁에 환희의 순간을 여전히 들려주며 그렇게 우리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