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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왼손 피아니스트입니다
이훈 지음 / 오늘산책 / 2025년 9월
평점 :
예술을 좋아하는가? 나는 예술을 잘 모르지만 사랑하는 편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예술들마다 들려주는 이야기가 다르고,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도 다양해서, 예술을 감상하는 순간이 아주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나는왼손피아니스트입니다 (#오늘산책 출판)을 쓴 #이훈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를 읽어보니 스스로가 얼마나 기특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때 우연이 귓가에 들려온 젓가락 행진곡의 소리가 너무 좋아서, 그 소리를 듣고 눈앞에 그려지는 몽당연필들의 행진이 너무나 신기한 경험이라 어머니를 졸라 1년 만에 피아노 교습소에 등록해 파란 피아노학원 가방을 받게 된 것을 시작으로 독일, 미국 해외 유학의 기회까지 거머쥐며 박사과정을 순탄히 밟아가던 사람에게 갑자기 그의 앞날을 훔쳐 간 도둑이 갑자기 나타났다. 바로 뇌졸중. 머리가 풍선처럼 부풀고 대수술 후 열흘 만에 의식을 되찾은 저자는 어눌하게 뱉은 ‘안녕하세요.‘를 제외하고는 한마디의 말도, 손발도 뱉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졌다. 그때의 심정이 어떨까. 악마의 손재주로 유명했던 닥터 스트레인지가 차 사고로 양손의 신경을 모두 잃어버렸을 때의 느낌이었을까. 그렇다면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세상 모든 것을 포기했음이 맞을 텐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본인도, 그리고 놀라 한걸음에 먼 길을 날아온 어머니도 다시 몸을 쓸 수 있을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학 생활의 은사는 한술 더 떠서 좌뇌의 60퍼센트가 사라진 제자에게 피아노를 쳐보라 제안하고 그는 제자의 엉성한 연주에 맞춰 찬송가를 부른다.
그때 오히려 홀가분해졌다고, 연주자인 스스로를 내려놓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저자는 지금은 피나는 노력으로 왼손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 다시 한번 연주자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닥터 스트레인지는 그렇게 지난한 어둠 속을 헤맸었는데(비록 손을 고치겠다는 의지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그의 심정은 너무나 괴로웠다.)
물론 재활 과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었겠지만 책 속에서 그가 들려준 과정들에서 모난 감정은 찾을 수가 없었다.
피아노를 못 치게 된 것보다 다시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좌절에 빠지는 것보다는 죽지 않고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지탱해 준 것은 곁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일곱 시면 잠자리에 드시던 저자가 머물던 집주인 할머니가 그날따라 늦게까지 주무시지 않고 괜히 저자를 들여다보았다가 쓰러진 그를 발견했고, 교수의 이름을 기억해내 상황을 설명했고(재활기간 저자와 부모가 자신의 집에서 머물게 했다.) 함께 유학 생활을 한 동기, 후배학생들이 서로 보호자를 자처하며 빠른 수술을 가능하게 하였고, 한국의 가족들에게 연락하였고 어머니가 와서 그의 곁을 기도로 지켰으며(이때 유학생 후배들이 돌아가며 병원에 머물렀고 저자의 어머니를 챙겼다.)그의 첫 피아노 스승은 그에게 왼손피아니스트로, 하느님이 널 귀하게 쓰려고 하시는가보다며 다시 한번 피아노와 함께할 수 있는 삶을 손에 쥐여주었다.
더 와닿았던 것은 이런 인복은 우연이 아니었다.
다섯살때부터 엄마를 지킨다며 자기 전 문단속, 불단속을 하고 이훈 선배가 우리 처음 유학왔을 때 챙겨준거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후배들을 보며 ‘자업자득’이라는 것이 얼마나 정직하게 이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인지를 깨달았다.
아쉬울 것 없을 때, 진심으로 베푸는 선이 원하지 않아도 필요한 순간에 진심으로 다시 스스로에게 베풀어지는 것을 보며 마음이 벅차올랐다. 메이저리그에서 혼자 만화책 속에서 살아가는 ‘이도류’ 오타니 쇼헤이도 반드시 돌아온다는 마음으로 적어도 땅에 떨어진 휴지를 줍는 것 같은 선행을 매일 행하는 것을 야구훈련과 동일한 중요도로 대했다지않나.
그의 왼손에서 피어나는 연주가 그래서, 두 손의 소리보다 더 변화무쌍하고 가득 찬, 마음을 울리는 소리가 되었는가보다.
왕성한 활동을 하고있는 피아니스트 이훈은 이 모든 것에 감사해 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한결같다는 것은 나아간다는 뜻일 것이다. 제자리에 있으면 결국 뒤로 밀려나는 것으로 보일테니말이다. 그의 연주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도 감명받을만큼 아름다운 예술 그 자체였다.
이러니 예술을 좋아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