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와 카유보트는 왜 트루빌로 갔을까? - 시인의 언어로 다시 만나는 명화 속 바다
김경미 지음 / 토트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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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 바다 가자!”
“산책갈까?”를 듣는 강아지들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각박한 세상이 나에게 부여한 온갖 의무와 부담,스트레스(이음동의어들이다)들을 머리 뜨끈해질 때까지 견디다보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는 활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순간이 온다.

그럴 때 화산은 말그대로 우뢰와 같은 굉음을 내고, 나는 “바다 가고싶다!”라는 소리가 터져나온다.

굽이치는 물결, 부서지는 파도, 반짝이는 윤슬, 그 이상의 백색소음은 없을 바닷물과 바위가 부딪히는 소리, 갈매기소리, 바람소리, 시원하면서 괜히 짭짤하고 비릿한 듯한 내 몸을 관통하는 것 같은 바닷바람까지. 대폭발의 순간마다 바다를 떠올리는 것은 합당한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바다는 마냥 친절하지 않다.
용왕에게 각종 굿과 제를 지내는 것은 아낌없이 내어주는 듯 하지만 동시에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분이 산뜻해지는 에메랄드 빛 바다도 십미터만 그 속으로 들어가면 빛이 들어오지 않는, 기분나쁜 물소리만 들리는 위험천만한 곳이 되니까 말이다.

그런 이중성 때문인지 화가들은 바다를 사랑했다.
평생 바다만 6000여점을 그린 화가도 있고 신화의 한장면을 그리면서 뒷배경에 수평선이 길게 펼쳐진 바다를 그려 우리 삶의 한 장면같은 현실에 두 발을 붙이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빛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상주의 화가들에겐 더할나위 없는 소재다. 자연에 의해 부서지는 파도와 요트경기로 부서지는 인위적인 파도에서 매순간 빛에 부딪혀 반사되는 빛의 색은 몇번을 그려도 똑같은 색을 보이지 않을 것이기에.

#모네와카유보트는왜트루빌로갔을까 (#김경미 씀 #토트 출판)은 시인인 저자가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그림들로부터 시적 자극을 받거나 고통과 좌절에서 마음 건져 올린 적이 아주 많았다고 고백하며 그 고마움을 갚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그림들을 하나 둘씩 모으다 보니 바다와 해변이라는 주제와 풍경으로 그림들이 집중되기 시작했다고. 김경미 시인은 바다는 단단히 두발을 붙이고 있을 수 없어서 두려워했다. 그래서 배도 당연히 싫어했고. 하지만 자신이 모아놓은 그림들의 배경이 된 바다를 최대한 많이 가보기로 결심을 하고, 그 장소에 가서 정말 그림과 똑같은 풍경을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바다, 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여행의 참 맛을 알아간다. 그렇게 그녀가 모은 바다의 화가들은 54명이나 된다.

뜻하지 않은 인파나 변덕스런 날씨, 낯선 곳이라 길을 잃어버리는 등의 의외성에서 당시에는 몰랐지만 알고보니 의미있는 곳이었던 장소를 가보기고 하고, 명화에 자신만의 스토리를 글로 적어나가며 저자는 화가들이 어떤 생각으로 이곳을 그림에 담아냈을지 생각하며 그 과정에서 이 책을 읽는 우리도 공감하여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자아성찰을 한다.
결국 여행이란 낯선 곳을 찾아가는 동안 낯선 나를 발견하고, 그런 낯선 나의 모습에 익숙해져가는 것인가보다.
그곳이 바다라는 장소로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모네, 고갱, 라울 뒤피, 샤갈, 마티스, 고흐, 모딜리아니, 소로야 등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화가들고 많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처음 들어본 러시아 화가 아이바좁스키가 가장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다.

러시아에서는 영하20도던, 30도던 전시회에 아침부터 줄을 선다는 인기작가라는데 그의 <아홉 번째 파도>작품이 책에 수록되어있다. 러시아에서 가장 높고, 위험한 파도라는 뜻을 가진 아홉 번짜 파도는 구조요청을 절실히하는 사람들과 완파직전의 배가 생생하게 담겨있는데, 이 그림에는 이런 위험뿐만이 아니라 난파선 위의 상황은 절망적으로 보이지만 위쪽 하늘로는 화폭의 3분의 2를 차지할 만큼의 거대하고 눈부신 빛이 몰려오고 있다. 그 빛은 예고한다. 하늘은 곧 눈부시게 맑아지고 파도는 곧 잠잠해질 것이며 그대들은 곧 무사히 구조될 것이라고. 아홉 번씩 목숨을 위협하는 파도에도 열 번이라도 구해주는 빛은 있는 법이라고 희망예찬의 의미로 볼 수도 있어(하늘, 바다, 파도의 묘사가 아름다운 것도 당연한 이유이다)러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꼽힌다고 한다.

이렇게 하나의 대상에도 정반대의 무언가가 담길 수 있는 것이 예술이고, 인생이다.
어느 쪽으로 받아들일 것인지에 따라 우리 삶도 바뀌는 것임을, 작가들의 바다 그림과 저자의 글로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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