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8
이디스 워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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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는 계절은 어떤 계절일까?
나는 여름이 아주 취약한 (그래서 싫어하는) 사람이다.
땀이 많고 더위에 약하고 어릴 적 피부가 검어서 놀림받았던 기억때문에 피부가 타는 것도 싫어한다.
몸도 마음도 뜨거운 태양에 녹아 에어컨 밑에서 널부러져 있기만했다. 나의 여름은 ‘가뭄’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내 안을 살펴보며 달리고, 해보고싶다 생각이 드는 것들을 해보면서 올해 나의 ‘여름’은 달라졌다.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을 들려주면서 어떤 계절일 것 같은지 물어보면 높은 확률로 여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약간 과장해 을씨년스럽기까지만 긴박한 음들이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이 연상된단다. 하지만 살짝 다른 여름의 태풍 과 폭풍우를 음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봄에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싹을 틔운 새싹들이 이 혹독한 비바람을 견뎌내면 더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더 크고 무성한 잎을 낸다. 꽃봉오리를 맺고 꽃을 피우고 열매라는 결실을 맺기위한 큰 가능성을, 큰 에너지를 온 몸 가득 받아들이고 있는 계절인 것이다. 그래 올해 여름은 가능성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절이었다.

나에게 십수년동안 똑같던 여름이 올 한해 바뀌었듯이, #이디스워튼 의 #여름 (#민음사 출판)속 주인공 ‘채리티’에게도 열여덟의 여름은 남달았다.

이십킬로미터 넘게 떨어져있지만 너의 뿌리를 잊지말라는 듯 우뚝 솟아있는 ‘산’에서 태어나 노스도머에서 살아가고 있는 채리티는 그 작은 동네에서의 일상이 마냥 지겹고 따분하고 화가난다. 큰 도시로 나가서 살고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 그녀와 노스도머에 새로운 바람처럼 등장한 미청년 하니. 그는 건축에 푹 빠져있지만 그럼에도 채리티와 하니 사이엔 묘한 기류가 흐른다.

어린나이에, 둘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않는 한계에 대한 저항감까지 더해져 그들의 사랑은 세차게 내리는 폭우에도 꺼지지 않고 여름내내 활활타오른다.
그 사랑은 새 생명이라는 결과값까지 도달하고, 자신이 처해진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 오냈노라며 노스도머를 떠나간 하니는 돌아올 기미가 없다. 하지만 채리티는 많이 슬프지 않다. 그와의 불같은 사랑을 할 때 하니와 평생을 함께하는 미래는 그린 적 없기때문에. 하지만 새 생명은 지켜야했기에 평생동안 최선을 다해 외면했던, 자신의 엄마와 ‘식구’들이 있는 ‘산’을 향했지만 마침 그날 한번도 본 적 없던 채리티의 엄마는 죽어 언땅에 묻히고, 산사람들의 열악한 환경을 아이에게 줄 수 없다는 심정으로 뛰쳐나오다 그녀를 데리러 온 로열 변호사와 마주친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찾아온 ‘산’에서 채리티를 데려와 평생 채리티의 보호자였던 로열 변호사(로변)는 지금 채리티에게 가장 필요한 따뜻한 쉴 곳과 음식을 주며 앞으로도 이러겠노라며 자신과 결혼하자고 한다.

결혼식에서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결혼식을 마치고 그들의 집은 붉은집으로 돌아가며 이야기는 끝난다.
계절도, 채리티의 삶도 무수한 생명체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시기인 여름에 시작한 이야기.

누군가는 채리티의 여름이 한 여름밤의 꿈으로 끝나는 실패라 여길 수도 있지만 그렇지않다.
채리티는 자신도 어린와중에 일생일대의 사건을 외면하지 않고 책임진다. 자신만큼(어쩌면 자신보다 더)작은 생명을 위했다.
그렇게 한단계 성숙해진 채리티가 되었기에 그녀의 여름은 실패가 아닌 성장이었다. 성장이 원동력이 슬픔인 것은 안타깝긴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간은 안타깝게도 부의 감정에서 주로(또는 크게)성장하더라. 그래도 채리티가 여름내내 행복하기를 바라기는 했다. 지금보니 다른 누군가의 행복을 간절히 바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도 독서의 효과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렇게 채리티의 여름이 지나감과 동시에 나의 여름도 지났다.
같은 시기적 배경을 살아왔어서 그런지 유난히 채리티의 삶에 몰입해서 봤던 책인 것 같다. 이디스 워튼 특유의 자연 배경과 계절감에 대해 아주 상세하고 섬세하게 묘사가 되어있었는데 이러한 생생한 묘사가 채리티의 주변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게 해주어서 나도 노스도머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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