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라스트 데이즈 ㅣ 제프 다이어 선집
제프 다이어 지음,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
가까운 사람들의 끝을 경험하고 배웅해주다보면
전혀 나와는 상관없을 것 같았던 것이 덜컥 현실로 다가와 마음에 묵직한 돌 하나를 돌린다.
그래도 나이별로 차이는 있다. 내 부모 생각에 묵직해 질수도, 아니면 나 본인의 일로도 묵직해 질 수 있다.
어느게 더 무거운지는 답이 없지만.
⠀
나도 뭐 적지는 않은 나이이기에 위에 예를 들었던 두가지 돌 모두 묵직하게 가슴에 얹어져있다.
그래도 오늘은 나의 끝에 대해 생각해보고싶다.
⠀
#라스트데이즈 (#제프다이어 씀 #을유문화사 출판)은 작가로서,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스스로가 말년에 들었다고 생각하고 사람의 ‘끝’에 대해 제프 다이어가 생각한 것들을 쓴 짧은 글들을 주욱 나열해 놓은 책이다.
⠀
본인의 전공인 끝을 알 수 없는 문학적 지식과, 재즈, 락, 클래식을 넘나드는 음악적 지식, 무릎, 발목, 어깨, 팔꿈치의 통증이 인생의 말년을 느끼게 하면서도 여전히 사랑함을 마다하지않는 테니스를 비롯한 운동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영감마냥 글의 한꼭지 한꼭지에 자기가 끝을 생각할 때 같이 떠오르는 것들을 적어놓았다.
⠀
그의 글을 주욱 따라가는 동안 밥딜런이나 베토벤, 로저 페더러 같은 나도 어느정도 아는 천재들도 많이 나왔지만 나보다 윗 세대의 이야기들이라 다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그럼에도 곡명이나 가사를 가져와 문장을 만들어내고 일상적이라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을 본인의 일상에 가져와 자연스럽게 붙여내면서 잘 알지 몰라도 작가가 하고자하는 말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
그리고 책을 연지 얼마되지 않는 순간부터 덮는 순간까지 계속 느껴졌던 것은 인생의 끝을 논하는 <라스트 데이즈>라는 책의
제목이 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책 속의 문장이 상당히 통통 튀는 느낌을 준다. 끝을 말하는게 맞나 싶을정도로 위트가 넘치며 생기발랄하다. 그리고 열정적이다.
⠀
분명 이 글을 쓸 때, 그리고 쓰고나서 이 책을 두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면 작가의 눈은 그 어느 십대 이십대 못지않게 반짝일 것이다.
⠀
그럼에도 악보로 적혀진 것 중 가장 슬프다는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를 보고 말하는 바그너와 전쟁을 치른 <바그너의 경우>를 쓰고도 추신과 후기까지 덧붙이는 니체 등 슬프고 꼬장꼬장한 것들도 외면하지 않고 담는 것을 보며 인생의 말년이란 인생의 전체의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인생에서 능력이 쇠퇴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인생에서 누가 뭐라해도 이것 하나만은 자신있어 내가 1등이야 했던 것이 평범해져가고, 평범보다 못해질 수 있다는 걱정은 인생을 좀먹는다. 남은 인생도 불행해질 뿐만 아니라 앞서 살아왔던 시절마저 부정당한다. 무엇하나 좋은 것이 없다.
인생의 말년보다 먼저 맞이하는 끝이 있다면 은퇴 일 것이다.
평생 나의 정체성이 되어주었고 나 스스로를, 나아가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게 해주었던 것을 더이상 하지못하게 되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은 인생을 어찌 살아야할지, 이제 본인은 쓸모없어진 사람이라는 우울감을 겪는 시기이다.
⠀
이때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보고 싶었으나 일하느라 못했던 것을 도전해보거나, 이전의 경력이 인정받아 다른 곳으로 스카웃제의가 들어오거나 못했던 여행을 배우자와 함께 떠나면서 계속 몸에 생기를 넣어준다면, 제프 다이어를 떠올렸을 때 반짝일 것 같다던 눈빛처럼 우리의 삶도 그럴 것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주변인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
그렇게 은퇴의 시기를 잘 견뎌내면 나의 생물학적 나이만 다를뿐 이십대에 첫 사회생활에 발을 내딛던 그 시절의 나와 별반 다른 차이가 없다. 새롭게 시작한 일은 익숙해 지고 더 잘하게 될 과정이 이어질 것이니 쇠락해져가는 것을 대체하여 나를 또 다시한번 생생하게 젊게 만든다.
⠀
젊음과 쇠퇴는 물리적인 현상일 수도있지만 심리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나이를 먹어 신체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하며 관리하는 방법 뿐. 하지만 왕성한 호기심으로 끝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탐구한다면 뇌와 심장만은 여전히 끝이 아닌 현역일 것이다.
⠀
라스트데이가 아니라 라스트데이즈라고 이름 붙은 이유도, 끝이라 할만큼 각오를 다진 최선의 날들이 모이고 모여 또다시 인생이 됨을 뜻하는게 아닐까. 작가의 짧은 글들이 모여 <라스트 데이즈>라는 한권의 책이 된 것처럼 말이다.
⠀
끝이라는 각오로 끝이 끝이 아니게 만드는 마법.
그것이 인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