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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은 시간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7월
평점 :
(출판사의 도서제공으로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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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출판계를 씹어먹었던 #클레어키건 이 신작 #너무늦은시간 (#다산북스 출판)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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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 키건이 쓴 단편 3개가 수록되어 있는데 각 작품마다 10년 정도의 시간차가 존재한단다.
세 편, 총 20년의 세월이 쌓여있음에도 글에서 스타일이 변하지 않았고 다른 작가가 쓴 것 같은 느낌도 없었다.
중간 중간 새로운 단편이 시작될 때 제목이 적혀있지 않았다면 옴니버스식 구성의 장편 하나로 생각했을 정로도 세 편이 하고자 하는 말이 비슷했다.
표제작인 ‘너무 늦은 시간’은 평범한 남자 공무원이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이야기가 나와 살림을 합치기 까지의 순간들을 키건 특유의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보여주는데, 너무나 인색한 모습을 보여준다. 요리를 할 줄 아는 여성을 마음에 들어하면서 설거지가 많이 나온다며 싫어하고, 음식 재료값도 여성이 다 내다가 딱 한번 체리 6유로 결제한걸로 생색을 내고, 제일 대박인 것은 프로포즈링(골동품, 중고이다 이건 여성이 골랐다)의 사이즈 변경 비용이 아깝다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돈의 인색함으로 대표되는 평범한 남자의 여성에 대한 무시가 글을 진행하는 와중에 계속 등장한다.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반성의 타이밍이 있었으나 결국 여성을 폄하하는 욕을 뱉어버리며 개선되지 못함을 보여줬다. 그 대가는 외로움이었지만 말이다(여자는 정말 잘 떠나갔다. 그게 이 글의 유일한 유쾌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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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에서는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노벨 문화상을 받았던 작가의 집을 수리한 ‘뵐 하우스‘에 머무를 기회를 얻은 한 여성에게 한 남자가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싫음에도 기꺼이 그를 위해 직접만든 케이크를 준비했건만, 남자는 처음보는 그녀에게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이곳에 들어와서는 글도 쓰지않고 케이크나 만들고 낮에도 잠옷을 입고 빈둥거린다며 불평불만을 뿜어낸다. 케이크는 개걸스럽게 먹어놓고 말이다. 그래도 이 글의 여자 주인공은 ’글을 쓰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나름의 복수를 실천한다.
그로인해 남은 감정은 ’별 미친놈 다본다’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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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세번째 작품 ‘남극’은 평범한 가정의 한 주부가 문득 다른 지역에서 다른 남자와 잔다면 어떨까라는 막연한 호기심으로 시작한다. 이 계획을 실현시켜 아이처럼 보살핌을 받는 그러면서 소중히 사랑받는듯한 느낌을 주는 한 남자를 만나 불장난같은 하루를 보내지만 돌아가기전, 그의 집에 손발이 수갑에 묶인채 감금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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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지 이야기를 모두 읽으면 남성들의 여성혐오, 또는 동등하게 대우받지못하고 약자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로 여성들이 그려지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밖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성들을 대하는 태도는 한없이 어그러져있다. 욕을 하거나, 처음봤지만 대뜸 찾아와 화를 내거나, 집에 가둬버리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일들을 스스럼없이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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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키건 답게 이러한 이야기들을 보여주기만 할뿐, 자신의 입장은 밝히지 않는다.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오직 독자들의 몫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글을 쓴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같은 것을 떠올릴 것 같다는 확신에 가까운 예측이 드는 이유는 작가의 의도가 정확히 담기도록 애쓴 사실적시에 기반한 글쓰기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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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분이 사실적시인가는 책 뒤에 옮긴이의 말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로 묶어 발표하기 전 바꾼 문장들이 몇개 있는데 그 문장들을 보면 클레이 키건이 대단하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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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현실에서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마주하면 외면해버린다.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도피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클레이 키건은 여성문제라는 논란이 될 수 도 있는 것을 외면하자 않고 작가로서의 커리어가 정점에 달한 순간에 글로 적어 세상에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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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가만히 있으면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를 들은 누군가가 용기를 얻어 또 목소리를 내고 그렇게 목소리가 모여 세상이 바뀐다.
누군가가 작가는 세상의 문제를 외면하지 말아야할 의무가 있다고 하더라.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영향력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기꺼이 쓰는 작가가 참으로 멋지고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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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커리어를 건 <너무 늦은 시간>을 보고
나도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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